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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Dec 03. 2020

Drunken bike

소박한 이기심

5살 어린이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손끝에서부터 찌릿하며 발현하여 올라오기 시작한 불안감은 이내 어린이의 마음속까지 쥐어 싸기 시작한다. 이내 마음은 경직되고 만다. 어린이의 아버지는 술을 먹고 있었다. 기분은 흥이 한참 올라보였고 얼굴은 발그레했다. 기분 좋은 말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쏟아 내고 있었다. 말의 문장이 끝날 때마다 어린이의 아버지는 벌컥거리며 1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긴 맑고 투명한 소주를 들이켰다. 주체할 수 없이 소주를 마실 적마다 그것을 바라보는 어린이의 마음은 더 불안해졌다. 어린이는 알고 있었다. 소주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지만 저 기분 좋은 마음 안에 커지는 분노도 같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린이의 아버지는 항상 어딘가 먼 거리를 이동할 적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어린이도 그 자전거에 항상 아버지와 붙어 있었다. 어린이의 머릿속에는 계산이 서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잔뜩 술에 취해 운전하는 자전거를 나도 타겠구나!’
 
그래서 불안했었다. 어린이는 생각했다. 누군가 나타나서 이 불안한 상황에서 구해주길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어린이의 기억에는 몇 번이고 겁에 질려 곡예를 하듯 그 자전거를 얻어 탔던 기억이 있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갈수록 해는 기울었고 해가 기울수록 아버지는 온전한 걸음을 걸을 수 없었다. 때때로 어린이는 불안감을 달래보고 위로하려고 어른들의 안주를 집어 먹긴 했지만 너무 큰 불안감에 사로 잡혀 그것을 먹을 식욕조차 없었다. 이럴 바에야 아침이 오도록 어른들의 술자리가 끝나지 않길 바랐다.
 
술자리의 뜨거웠던 온기가 다 식어버리고 어른들이 서로 헤어질 때쯤, 어린이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아버지는 극도로 비틀거리며 겨우 걷는 걸음으로 자전거를 잡았다. 술에 가득히 취했는지 곧장 운전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힘겹게 걷기 시작했다. 멀찍이 어린이도 따라 걸었다. 아버지도 휘청거렸고 자전거도 따라 휘청거렸다.
 
‘내가 저기 올라타야 하는구나!’
 
어린이는 생각했다. 부정하거나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다만 바라기는 아버지가 취한 걸음으로 집에 까지 가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걷기에는 집이 너무 멀었다. 마을 어귀를 벗어 나와 신작로에 이르렀다. 초겨울이라 바람이 찼고 해가 노을을 지었다. 애석하게도 신작로에 이르자 바람을 가르며 쌩쌩 거리는 차가 많아졌다. 두려웠다. 아버지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몸을 비틀거리며 땅바닥을 물끄러미 오랫동안 바라본다. 그러더니 고개를 휙! 들며 어린이를 쳐다보았다.
 
“앞으로 타!”
 
아버지의 말이 떨어졌다. 어린이의 자리는 정해져 있었다. 자전거의 핸들 쪽에 있는 앞자리였다. 그곳엔 어린이 전용 안장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안장은 제법 앙증맞았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앙증맞은 자전거 안장은 어린이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어린이는 두려웠고 또한 망설였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붙들고 몸을 못 가누며 비틀거렸다.
 
 

“얼른 타!”
 
별안간 인상을 쓰며 아버지가 취기에 소리쳤다. 어린이는 겁에 질려 자전거로 다가갔다. 그 순간만큼은 자전거보다 아버지의 고함이 더 무서웠다. 겁에 질려 오만 인상을 쓰며 자전거에 올라타려 했지만 겁에 질려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고 더욱이 키가 작아 안장에 오를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어린이를 안아서 안장에 앉혔다. 공중으로 번쩍 들리는 순간 공포가 온몸을 감쌌다. 공포로 내던져지는 순간이었다. 자전거에 바람에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온몸에 느껴졌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끌기 시작했다. 휘청거리는 느낌이 그 작은 어린이의 온몸으로 들어왔다. 이내 아버지가 자전거에 오르며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가 갈 (之) 자를 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린이는 고작 5살에 불과했지만 이대로 가다간 자기는 물론 아버지도 죽는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옆으로는 덤프트럭이 빵! 소리를 내며 달렸다. 어린이는 더 이상 공포를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버지! 이러다 죽어!”
 
살고 싶어 어린이는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그러나 자전거는 멈추지 않았다. 매정한 건지 고집이 강했던 건지 몰랐지만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자전거를 몰았다. 죽음의 공포가 매 순간 몰려왔다. 그렇게 얼마를 가지 못하고 자전거는 담벼락을 들이받으며 큰 충격을 어린이의 몸에 안긴 채로 멈췄다. 어린이의 고사리 같은 손... 그 손가락에는 벽에 부딪히며 자전거 쇳덩이 끼어 손톱에 피 멍이 들고 말았다. 어린이는 손가락이 너무 아팠다. 비명을 내지르며 울고 소리쳤다. 손가락이 아파서도였지만 그런 아버지... 술에 취해 어린이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사불성이 되어 자식을 돌볼 줄 모르는 아버지가 너무 미웠고 그런 자신이 5살이라는 것이 너무 슬펐다. 어린이는 그 날 알았다. 5살의 어린이도 그런 슬픈 모양의 신세한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 어린이의 기억을 빌려보자면 자꾸만 나는 웃음이 난다. 이것을 감정적 실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슬픔과 안타까움, 그리고 분노가 극에 달해 나오는 웃음 말이다. 자신을 돌볼 줄 모르는 아버지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자전거를 타고 차들이 달리는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 그것이 휘청거릴 때 느껴지는 공포가 애석하지만 나는 자꾸 웃음이 난다. 심지어 웃음을 멈출 수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렇게 커버리고 또 커버린 내가 어느 순간부터 그 날의 아버지를 보기 시작했다. 5살 난 아들을 자전거에 왜 그렇게 악착같이 태우고 싶어 했을까? 아버지의 이기심을 이해하려고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다. 이기심이라고 딱히 말할 수밖에 없는 그 아버지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 이해는 이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아들과 함께 있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라도 자신이 아버지라는 기분을 크게 한 번 내보고 싶었나 보다!”
 
“삶은 힘들지만 오늘은 친구들과 기분 좋게 술을 먹었고... 돌아갈 집이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들 녀석이 내 자전거에 같이 타고 있으니 이 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는가?”
 

이렇게 자신의 소박한 이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아버지를 이해하려 한다. 왜냐하면 나도 언젠가 아버지가 되었을 때 나의 사랑하는 누군가를 향해 소박한 이기심을 부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젠 나는 그만큼 커버렸다. 사랑하는 누군가의 소박한 이기심을 이해할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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