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참파노 Aug 04. 2021

지느러미 달린 여자

아가페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속도가 무척이나 빠르다. 여자의 몸이었지만 물고기의 몸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의 몸에는 물고기의 꼬리와 지느러미가 달려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꼬리와 지느러미로 바닷속의 물살을 가르고  갈랐다. 물속에서 거침없는 유영을  적에 그녀는 정말 행복했다. 피부에 와닿는 물결들이 그녀를 간지럽게  때면 그녀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깊고  넓은 바닷속으로 달려들었다. 그렇게 그녀가 바다 물살을 가르고 찾아가는 곳은 뭍이었다. 뭍으로 나아가서  밖의 세상을 보노라면 그렇게 행복할  없었다. 자신이 사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밖의 세상을 보고 있으면 그녀 자신 또한 그곳의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그곳에는 크고 멋지고 아름다운 성이 있었다.  성에는 언제나 불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고 사람들은 감출  없는 행복을 소리 내었으며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광경을  때면 그녀의 가슴은 언제라도 뛰고 뛰었다.  성안에는 멋진 남자  명이 살고 있었다. 신하로 보이는 사람들은 언제고 그에게 예를 갖추었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렇지만  남자는 절대 그들에게 군림하거나 억압으로 다가가질 않았다. 온화한 미소로 그들을 바라보고 섬겼다. 그녀는 간절했다.  남자를 눈앞에 서서   있다면  좋을  같았다. 그녀도  남자의 온화한 미소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없는 것을 알았기에 그녀는 몸을 돌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바닷속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그렇지만  앞에 다가갈  없음이 불행으로 다가오질 않았다. 멀리서 그의 세상을 바라볼  있음도 그녀에게는  행복이었다. 그녀가 꿈꾸는 뭍의 세상 속에 그가 있었고 그것으로 그녀는 만족했다.

 

마녀는 자기와 같이 지느러미를 가진 그녀가 눈에 가시였다. 자신의 폭력적인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해 언제고 작은 물고기들을 괴롭혔다. 바위틈에 머물고 있는 물고기들을 지팡이로 찌르거나 껍데기를 닫으려는 조개들의 몸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몸들을 쿡쿡 눌러댔다. 그렇게 바닷속 세상에서 폭군으로 군림하며 모든 것들을 괴롭혔다. 그것이 마녀의 존재 이유였다. 그렇지만 지느러미를 가진 그녀가 나타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무엇보다도 빠른 그녀는 언제든지 마녀의 손에서 작고 큰 물고기들과 생명체들을 구해냈다. 너무 빨라 마녀조차도 손쓸 수 없이 당해야만 했다. 그것이 언제나 마녀를 화나게 만들었고 그녀를 향해 분노의 마음을 가지게 되는 이유였다. 착한 그녀가 싫었다. 그리고 또한 마녀도 바깥을 늘 꿈꿨다. 언젠가 바다를 떠나 저 세상에서 꼬리가 아닌 두 발로 서서 미운 세상의 인간들을 마음껏 괴롭혀 주고 싶었다. 마녀도 언제나 뭍으로 가서 그녀가 보던 그들의 세상을 엿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바라는 그도 역시 엿보았다. 그녀가 그의 세상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좋아했다면 마녀는 그와 그의 세상을 손에 간절히 넣고 싶은 탐욕이 있었다. 그리고 탐욕을 실현해줄 구체적인 계획도 마녀는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녀는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 했다. 그리고 가능할 것이다. 지느러미를 가진 그녀의 방해만 없다면 말이다.

 

왕자의 세상 속에서 진정한 의미는 공주였다. 자신이 다스리는 이 풍요로운 터전의 아름다움과 평화 그리고 백성들의 미소 그 중심의 의미는 공주였다. 그녀가 곧 그의 세상이었다. 곧 있으면 그녀와의 결혼으로 그의 세상이 완성될 것이다. 그는 종종 성 밖의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공주와의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했다. 그렇게 상상이 끝날 때쯤 바닷속에서 그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곤 했다. 그 시선은 때로는 포근함을 주었고 때로는 불안을 주곤 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거기에 실제로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투영을 바다의 파도 속에서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더없이 행복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백성들이 있었고 해가 질 때의 성안의 모습은 어느 곳보다 평화로웠다. 마을은 풍요로웠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어디서든 들을 수 있었다. 이제 이곳에 공주만 오면 그의 세상은 더 빛나게 될 것이다.

 


 

공주는 왕자의 손을 용기 내어 잡았다. 왕자 역시 자신의 손을 잡는 그녀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고 부드러이 맞아 주었다. 그리고는 둘은 해변을 같이 걸었다. 모든 완벽한 세상이 그들이 마주 잡은 손안에 있었다. 왕자는 공주에게 말했다. 가끔은 해변의 파도 속에서 희망과 불안의 눈빛을 마주하곤 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공주는 왕자의 눈빛 속에서 이전에 보지 못한 희망과 불안을 보았다. 하지만 맞잡은 따뜻한 그의 손길로 인해 불안감은 멀리 떠나가 버렸다. 그렇게 나란히 걷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마녀는 파도 속에서 몰래 바라보고 있었다. 마녀는 탐욕스럽게 소망했다. 공주 대신 왕자의 손을 자신이 잡는다면 마녀는 자신이 세상을 소유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도 마녀는 왕자와 그의 세상을 갈망했다.

 

그녀는 해가 넘어가는 시간에 맞춰 다시 한번 왕자가 있는 뭍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탐욕스러운 눈빛을 띄고 있는 마녀를 마주했다. 그녀가 보기에 마녀의 눈빛은 무언가를 간절히 탐욕스럽게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마녀가 무엇을 원하고 갈망하는지 이내 알 수 있었다. 그것을 알기까지 찰나의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그녀도 왕자의 옆자리에서 나란히 걷는 것을 꿈꾸곤 했다. 하지만 왕자의 옆에는 늘 공주가 있었기에 그녀는 계속해서 그 꿈을 꿀 수 없었다. 그렇지만 마녀의 눈빛은 금방이라도 공주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빛을 읽은 마녀가 그녀를 달콤한 말로 유혹했다. 자신의 계획을 모른 척해준다면 마녀가 가진 물약으로 그녀에게 두 다리를 선물해 줄 것이라고 말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두 다리만 있으면 왕자를 멀리서만 바라보지 않을 수 있다고 말이다. 좀 더 가까이 왕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그녀는 그 달콤한 생각에 흔들렸다. 그렇게 흔들리는 사이 그녀의 손에 마녀는 물약을 쥐어주고는 노쇠한 유영으로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공주는 이른 아침 해변을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혼자였다. 곧 자신이 왕자와 이루어 가게 될 세상을 그리고 또 그렸다. 모든 곳이 공주의 눈에는 그림 같았다. 그곳의 모든 곳은 왕자와 함께 채워가게 될 곳이었다. 아름다웠다. 그렇게 그곳의 아름다움에 취해갈 때 즈음 공주는 노랫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아름다움과 잘 어울리는 노랫소리였다. 그리고 그 노랫소리는 아름다운 광경과 어우러져 공주를 유혹하고 혼미하게 했다. 공주는 아름다운 배경을 벗어나 노래가 흐르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파도가 치는 해변이었고 그 험한 파도 속에서는 마녀가 공주를 홀리듯 노래를 부리고 있었다. 공주는 저항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바다로 끌려갔다. 마녀는 계속해서 유혹의 노래를 불렀고 공주는 곧 있으면 마녀의 품이 가까웠다.

 

그녀는 갈등하는 자신이 너무 미웠다. 이 물약만 있으면 자신도 두 다리로 서서 왕자를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마녀를 돕는다면 왕자는 큰 슬픔에 빠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스스로의 기쁨을 위해 왕자를 슬프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퍼져나가는 유혹의 마음을 단칼에 베어내고 물약을 든 채 다시 마녀를 향해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마녀의 장소에 마녀는 없었다. 불안하고 불길했다. 얼른 뭍으로 향했다. 불안감이 몸을 휘감아서 몸이 더 빠르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불안감에 손이 저렸다. 이내 뭍에 다다랐을 때 마녀의 품 안에 있는 공주를 보았다. 마녀에 품에 안긴 채 물속으로 들어간다면 공주는 죽고 만다는 생각에 자신이 미운 마음이 다시 한번 깊은 후회를 일으켰다. 후회는 그녀에게 사치였다. 마녀의 품 안에서 공주를 구해야만 했다. 죽을힘을 다해 마녀에게로 나아갔다. 있는 힘을 다해 마녀를 밀쳐내고 공주를 낚아채 끌어안았다. 정신을 잃은 공주가 숨을 쉬게 하려면 수면 위로 헤엄을 치는 수밖에 없었다. 물속으로 마녀가 사력을 다해 따라붙었다. 그녀는 공주를 끌어안은 채 달아나고 또 달아났다. 더 이상 속도가 붙지 않았고 더 이상 공주를 끌어안을 힘이 나질 않았다. 승부를 봐야만 했다. 공주를 물 위에 띄워 놓은 채로 마녀에게 달려들었다. 마녀에게 엉겨 붙어 마녀가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사력을 다해 붙잡았다. 아직은 이런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번뜩 물약이 생각났다. 재빨리 물약의 뚜껑을 열고 마녀의 입에 찔러 넣었다. 콜록거리며 물약이 마녀의 입으로 넘어갔다. 몸부림치던 마녀의 몸이 조금씩 변했다. 꼬리의 비늘이 벗겨지며 사람의 다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인간의 몸이 되어가는 마녀는 인어의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마녀는 더 이상 물속에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몸부림을 쳤고 이내 눈이 풀리며 몸이 힘이 빠졌다. 사지를 뻗은 채 물 안에 떠있었다. 그리고는 마녀는 물보라와 함께 그 몸이 거품으로 바뀌었다. 마녀는 그렇게 물거품이 되었다.

 


 

그녀는 공주를 끌어안았다. 숨을 쉬지 않았다.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마지막 힘을 내어 뭍으로 향했다. 이제는 자신의 모습을 왕자에게 숨길 수 없었다. 공주를 왕자의 품에 돌려놓아야만 했다. 뭍에 이르자 왕자는 두려움 표정으로 바다로 향하고 있었고 이내 그녀와 공주를 발견했다. 놀란 표정으로 서서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내 아무 표정 없이 그녀를 왕자는 바라보았다. 애써 놀람을 숨기는 왕자였다. 돌아온 공주의 모습에 그리고 인어의 모습을 한 그녀의 모습에 왕자는 놀랐음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려지지 않는 꼬리를 왕자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물속에 숨기고 또 숨겼다. 부끄러웠다.

 

“여기 공주님이 있어요!”

 

애써 침착하며 그녀는 말했다. 왕자에게 건넨 처음이자 마지막 그녀의 말이었다. 왕자는 얼른 그녀의 품에서 공주를 건네받았고 공주와 입을 맞춰 공주의 몸 안으로 호흡을 불어넣었다. 그녀의 간절한 바람대로 공주는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이 슬프지만 슬프지 않아야 했기에 그녀는 의지적으로 왕자에게 미소를 보여야만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렇게 그녀는 왕자와 공주를 등 뒤로 한 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물속에서 유영을 하여 바닷속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그녀는 외로울 때면 뭍으로 다녔다. 왕자의 옆에 공주가 있었고 뭍의 세상은 이전보다 훨씬 밝아 보였다. 성 안의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행복해 보였고 웃음소리도 이전보다 컸다. 더 이상 다가갈 수도 누릴 수도 없는 세상이지만 그녀는 자주 꿈을 꾸었다. 해변의 경계가 그 세상을 영원히 그녀에게 줄 수 없지만 그녀는 뭍의 세상을 바라보며 오늘도 미소 지었다. 왕자 또한 성안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왕자는 해변의 파도 속에서 더 이상 불안의 눈빛을 발견하지 않았다. 그는 늘 파도 속에서 행복의 눈빛만 발견할 뿐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맷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