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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Jul 14. 2021

맷집

눈물의 이유

윌슨은 뚱뚱했다. 그리고 윌슨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덩치도 컸다. 하지만 윌슨의 살은 물렁거렸다. 그 말 인즉 아이들이 한 대만 때려도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지르며 울었다는 말이다. 윌슨은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학급에서 까불거리며 급우들을 괴롭히던 아이들의 괴롭힘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초등학교 4학 때 우리 반의 윌슨에게는 참으로 많은 녀석들이 달려들며 못살게 굴었다. 그런 윌슨과 나는 제법 친한 사이였다. 가끔 사이가 토라져 서로 주먹다짐을 할 적에도 윌슨은 나의 연약한 주먹에도 울곤 했다. 나 역시 면봉처럼 마르고 말라 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아이였지만 윌슨은 그런 힘마저 없던 아이였다.

 

윌슨과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학급에서 주목과 관심을 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늘 변두리를 맴돌며 사랑과 관심을 받는 아이들을 구경하며 마음의 허기를 달래곤 했다. 그리고 관심과 사랑 대신 받는 것은 언제나 경멸하는 듯 한 눈길과 냉소 혹은 살기 어린 말들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랑받을 법한 아이들의 몸에서는 늘 좋은 비누냄새와 로션 냄새가 났지만 우리에게서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윌슨의 몸에서는 언제나 역한 침 냄새 같은 것이 나곤 했다. 나는 정말 윌슨을 사랑했지만 때로는 그 사랑의 마음으로 윌슨의 침 냄새마저 용납하는 것은 꽤나 무리가 있었다.

 

윌슨에게는 소박한 야망이 있었다. 바로 언젠가는 자신도 여자 아이 남자아이 상관없이 반 아이들 모두에게 쏟아지는 사랑과 관심을 받아보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윌슨의 그 소박한 야망을 존중했다. 윌슨과 나는 언제나 초대장 같은 것을 받을 수 없었다. 내가 한참 어린아이였고 자라던 시절에 반에서는 생일이 돌아오는 아이가 직접 생일 초대장을 만들어 친한 아이들을 초대하며 집으로 불러들여 그들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곤 했다. 그들은 주류였고 또한 다른 아이들을 집에 직접 초대할 만큼 삶들은 유복했다. 윌슨과 나는 그 초대장을 받아 본적이 한 번도 없다. 그 초대장을 받는다는 것은 생일선물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스스로의 학용품을 감당하기도 힘들었던 가정형편으로 인해 고맙게도 생일을 맞은 아이들은 우리에게는 초대장을 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윌슨은 항상 꿈을 꾸었다.

 

‘나도 언젠가는 저 초대장을 들고 당당히 생일을 맞은 아이의 집으로 준비한 선물과 함께 당당히 들어가리라!’

 

그런 윌슨을 내가 경멸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음악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준비물로 리코더를 준비해야 했는데 나는 리코더를 준비하지 않았다. 게으름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윌슨에게는 왜인지는 모르지만 리코더가 2개나 있었다. 나는 준비물을 준비하지 않아도 윌슨이 나를 구원해주겠구나!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바보 같은 나의 착각이었고 윌슨은 100원짜리 동전 한 닢을 받고 준비물을 준비하지 않은 다른 아이에게 빌려주었다. 윌슨의 침 냄새가 역하게 베긴 그 리코더를 다른 아이는 수돗가에서 깨끗이 씻어서 음악시간을 무사히 넘겼고 나는 준비물을 준비하지 않은 대가로 손바닥을 얼얼하도록 얻어맞았다. 그 아픔만큼 난 배신감에 윌슨을 경멸했다. 음악시간이 끝나고 윌슨은 미안함을 감추며 떨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랬어!”

 


그 말이 대못이 되어서 분노를 넘어선 감정으로 내 마음에 박혔다. 그렇게 윌슨과 갈라지고 나서도 윌슨은 사랑과 관심을 받는 꿈을 여전히 소유했다. 언제고 틈만 나면 주류가 되어버린 아이들의 무리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곤 했으니 말이다. 나는 그런 윌슨이 점점 싫어졌다. 어쩌다가 윌슨이 힘이 센 아이들에게 얻어터져 우는 날에는 마음이 시원하게까지 했다. 단 돈 백 원에 친구를 버린 녀석이 당하는 고통이 나에겐 정말 달콤했다. 시간이 점점 지나 그 미움도 희석되어 갈 때 즈음 나는 윌슨의 또 다른 눈물을 보고야 말았다. 백 원으로 나와의 관계마저 단절되어 버리고 외로움이 극에 달한 윌슨이 생각하고 결정한 행동은 정말 어리석기가 그지없는 것이었다. 주류 아이들이 ‘비틀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만의 세상을 누리는 곳으로 윌슨이 비집고 들어가 외쳤다.

 

“나는 배에 힘이 강해! 어느 누가 내 배를 주먹으로 쳐도 난 견딜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아니 끄떡없어! “

 

“그래?”

 

주류를 이끌던 남자아이가 히죽 거리며 되물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윌슨이 그 무리로 들어가 그렇게 소리친 이유는 더 이상은 스스로의 욕구를 물리칠 수 없었을뿐더러 마지막 하나 남은 친구마저 버리고 오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 윌슨이 곧이어 말했다.

 

“당연하지! 내 배의 힘은 엄청 강해! 누구라도 한번 때려 봐도 좋아!”

 

윌슨의 계획은 성공했다. 주류의 여자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과 영악한 눈으로 윌슨을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주류를 이끄는 남자아이가 뛰쳐나와 윌슨을 때려보길 자처했다.

 

“내가 한번 때려 볼 거야! 얼마나 강한지 보자고!”

 

윌슨이 뒷짐을 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리를 이룬 주류 아이들의 공기는 호기심이 가득한 공기로 변했고 윌슨은 꼿꼿이 서있었다. 주류를 이끄는 아이가 주먹을 말아 쥐고 윌슨의 배를 힘껏 쳤다. 나는 순간 윌슨의 짧은 숨소리를 들었다. 고통에 겨운 짧은 숨소리임을 나는 알았다. 순간의 정적이 흐르고 여자아이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그중에 어떤 아이가 말했다.

 

“정말 윌슨은 배가 단단한 가봐!”

 

“진짜야?”

 

여자 아이들이 입을 모아 웅성거렸다. 윌슨의 관심받기 작전은 성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주류를 이끄는 아이의 매정한 말이 이어졌다.

 

“진짜 단단한데! 그래 이제 알겠으니까 너 하던 거 나 해!”

 


짧은 불꽃놀이처럼 윌슨의 관심 끌기는 거기에서 끝이나 버렸다. 윌슨의 의도와는 다르게 윌슨은 그리 오래 그 무리에 머물 수 없었다. 윌슨은 발걸음을 옮겨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왠지 따라가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먼발치에서 윌슨을 따라갔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니 윌슨이 흐느끼며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애써 윌슨의 눈물이 흐르는 눈을 바라보았다. 윌슨의 눈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윌슨이 우는 이유가 잠시뿐이었지만 주류 아이들의 관심과 시선을 끌었다는 만족과 감격의 눈물이었는지 얻어맞은 배가 너무 아프고 그 용기를 낸 가운데서도 비참하고도 통렬하게 소외감을 느껴야만 했던 서러운 슬픔의 눈물이었는지 난 아직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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