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참파노 Sep 03. 2021

이소룡 키드의 생애

슬픈 얼굴의 기사

20살의 나는 이소룡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되는 이소룡의 작품 중에서 특히나 좋아했던 영화는 용쟁호투였다. 영화 속에서 이소룡은  유순해 보이는 청년이었지만 절대적인  앞에서는 강자 중의 강자였다.  약자의 편해서 악한 자들과 쟁투를 벌이는 이소룡의 모습은 20살이라는 어른이 되어도 유약하기 그지없는 나에게는 한줄기 빛과 다름없었다. 특히나 악한 자들을 향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선의의 분노를 표출하는 이소룡은 그토록 내가 되고 싶었던 강한 남자의 모습을 대신이나마 만족시켜 주었다.

 

나는 겁이 많았다. 20살이 되어서도 불량한 고등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피해 다녔고 겁을 먹었고 주눅 들어있었다. 20살을 맞이하면 20살의 됨과 동시에 막강한 용맹함이  마음에 찾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20살에도 여전히 겁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에 더욱 낙망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소룡의 모습을 VHS 테이프로 확인할 적에는 설명할  없는 용기가  순간만큼은  올랐다. 나의 작고 작은 방에서 이소룡과 함께 발차기를 하며 세상의   없는 원한들과 악들을 향해 나의 분노도 뿜어내곤 했다. 나도 이소룡처럼 강력한 분노의 주먹으로 누군가를 응징하고 싶었고 맺힌 분을 풀어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20살의 나는 유아와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여전히 어머니의 눈에는 철없는 대학생이었고 젊은 날을 깎아 먹으며 미래를 담보로 오늘을 살아가는 철없는 아이  자체였다. 그렇지만 자존심은 있어서 큰소리를   있는 사람들은 가족이 유일했다. 친구들이나 지인들 앞에서는 그냥 유약하기 그지없는 청년에 불과한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니  눈에 비친 이소룡의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이었겠는가? 영화  이소룡의 주변 인물들은 알아서 이소룡을 존중했고 나아가 존경했다. 이소룡은 자기주장을 강력하게 피력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으며 그의 속에 내재되어 있는 절대적인 선에 도전하는 악들은 무참히도 일망타진당했다. 그렇게  이소룡에 빠져 지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나의  내면에 맺힌 에너지를 내보낼  있는 출구를 발견했다. 그것은 짝사랑이었다. 자주   서점에 카운터에서 일하던 여자였는데  또래쯤으로 보였고 짝사랑의 환상이  그렇듯  여자도  예뻤다.  여자를 발견한 후로 매일 서점으로 향했다. 일부러 카운터 근처의 책들을 둘러보며  여자를 계속 훔쳐봤다. 잡지 근처에서 서성였고 초등학교 저학년의 흥미를 위한 책에서 서성였다.  곳에 너무 머물러 있다는 것을  내지 않기 위해 가끔은 위층에도 올라가서 소설이나 전문서적들도 뒤적였다. 하릴없이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많았다. 이유는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이 전부였다. 욕심이 자꾸 커져  여자와 대화하고 싶었고 그렇게 꼬박  달을 보낸  그렇게 주위만 맴도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여겨져서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달의 시간 동안  여자와 대화를  것이라고는 사고 싶지도 않은 책을 억지로 사며 없는 살림에 돈을 써버린 상황이 전부였다. 이제는  이상 돈을 쓰지 않고  여자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용기도 없이 주위를 맴도는  돌아가신 이소룡 형도 기뻐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편지를 썼다. 그리고 서점이 문을 닫을 시간에 맞춰 나는 두근거리다 못해 두려운 마음으로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 앞에 다다르자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편지를 주며 하고 싶은 말들을 연습했지만 막상 편지를 주려고 눈이 마주치자 냅다 편지만 주고 내뺐다. 얼른 서점을 빠져나와 서점에서 몇십 미터 떨어진 전봇대 뒤에서 그녀가 나오기 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잠시  서점에서 나온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동료 직원이었다. 나와서 주위를 둘러보다 전봇대 뒤에 숨어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다시 서점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멀리서 지만 그녀의 동료직원의 눈빛을 확인할  있었다.  눈빛은 분명 나를 괴한을 경계하듯 경계하고 있었다. 서점이 닫히는 시간은 10시였지만 10시가 넘어도 서점은 닫히질 않았다. 아마도 안에서 내가  때까지 시간을 지연하는  같았다. 나는   있었다. 그녀는 나의 편지를 기뻐하지도 않을뿐더러 나를 거절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마음속으로 짐작한 뒤에야 나는 집으로 발길을 돌릴  있었다. 소금을  줌이나 씹어 삼키는 기분이었다. 살면서 많은 거절감을 경험했지만 역시 거절 감은 고통스러웠다.

 


 

집에 돌아와서 멍하니 다시 이소룡의 영화를 보았다. ‘브라운관속 이소룡은 이리도 멋지고 근사한데 나는 왜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더운 여름날의 밤이었다. 바느질을 하고 계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내 앞으로 검은 무언가를 던지셨다. 옷이었고 반팔이었다. 옷을 펼쳐 뒤를 돌려보니 이소룡의 얼굴이 여러 가지 표정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 티셔츠를 손아 받아 들자마자 그날의 패배감이 씻은 듯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늘 시장에 가서 하나 사 왔어! 너 이소룡 좋아하잖아!”

 

어머니의 말씀이었다. 내가 용기를 가장한 큰소리를 치는 대상들은 가족이 유일했는데 그런 가족들은 여전히 나를 사랑했나 보다. 이소룡이 주는 용기와 어머니가 주는 따뜻한 사랑의 용기... 그리고 자신감이 마음속에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에게서 거절감이 느껴졌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다음날 서점 문 닫는 시간에 맞춰서 다시 한번 더 그녀를 방문하기로 다짐을 했다. 편지에 답장을 써달라고 했기에 이번에는 그 답장을 핑계로 서점을 방문하기로 했다. 없었던 이소룡 티셔츠까지 입었으니 더 근사해 보일 것이 확실했다. 나를 의식해서 문을 더 늦게 닫을지도 모르지 정각보다 몇 분 더 늦은 시간에 서점을 방문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길을 걸었다. 그런데 서점으로 향하는 어둔 거리를 들어섰을 때 즈음 불량한 고등학생들을 발견했다. 오금이 저리며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이소룡의 패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런데 그 무리들 가운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그녀였고 그녀는 겁에 질려있었다.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쳤다. 불량배들이 그녀를 둘러싸며 희롱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계산들이 머릿속에 들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그녀를 구해주거나 그녀를 위해 몸을 날리면 의외의 승산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야! 이 개새끼들아! 안 떨어져!”

 

오줌이    같았지만 나는 소리쳤다. 그리고 오랜 계산 없이 말아  주먹으로 다가가서 가장 가까운 녀석의 볼을 내리쳤다. 주먹에서  녀석의 치아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번의 주먹질이 전부였다. 나는 곧장  학생에게 뺨을 얻어맞고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또한 다른 녀석들이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으며 무참히 나를 향해 폭력을 행사했다. 나는 이소룡의 티셔츠와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도망가라는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알아서 도망을 갔다. 내가 생각한 그림은 그들을 모두 일망타진한  그녀에게 안전한 거냐며 다가가는 것이었는데  가장 이상적인 계산은 뒤로 하고서라도 그녀는 나에게 일말의 동정의 눈빛이라도 보낼  알았다. 하지만 그런 것도 없이 그녀는 일찌감치 도망쳤다. 폭력을 끌어안고 그녀의 동정을 얻는 방법으로 그녀를 얻으려 했지만 그것나의 계산에 불과했다. 다행히도 바닥에 일찍 나뒹구는 바람에 학생들은 나를 포기하고 일찍 돌아갔다. 그렇지만 나는 바닥에 누워서도 왠지 모를 승리감에 도취되어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건을 나는 패배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위해 용기를  비췬 인생 최초이자 마지막인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명을 귀에서 들으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묘한 소망이 마음속에서 생겨났다. 사건이 있은 다음  서점을 방문하게 되면 그녀가 나를 맞이해줄 거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이내 동정과 감사의 눈빛을 보낼 것이고 그것은 우리 관계의  단추가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소룡처럼 용기를 냈더니 이소룡이 얻었던 결과가 나를 기다릴 거라 생각했다. 다음  나는 늦은 오후, 해가 저물어   즈음 다시 서점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여유까지 부리며 얼굴에 미소를 만연한  서점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녀가 보이질 않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카운터에 있어야  그녀가 보이질 않았다. 주위 직원에게 물어보니 오늘 갑자기 이른 아침에 연락이 와서 사정이 생겨 그만두겠노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여직원은 무언가를 안다는 듯이 부담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크고 아픈 거절감이 손짓을 하며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재미있었다.  거절감이 아파야 하는 것이 맞았고 불량배들에게 얻어맞은 자리도 아파야 하는 것이 맞는데도 나는 아프지 않았다.  날부터 있었던 묘한 승리의 도취감이 여전히  속에서 떠나질 않고 있었다. 나는  이상 이소룡이  곳의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날 나는 비록 거절당하고 얻어맞았지만 내가 뿜어낸 용기를 통해 이소룡을 영원히 얻었고 쟁취해냈다. 사랑을 얻고  얻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프고  아프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 나는  속에 영원히 사라져 버린  알았던 사나이의 용기를 발견하고는 며칠이 지나도록 웃었던 기억이 난다.

작가의 이전글 참회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