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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Oct 14. 2021

줄리(Julie)의 꿈

특별함과 평범함

1989년의 봄은 줄리(Julie)에게는  따뜻했다. 줄리는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학원에서 해야 만하는 짐과 같은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그곳에서 특별한 구성원을 이룬다는 것이 줄리에게는 매우 의미가 컸다. 그렇게도 줄리는 학원이 다니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줄리가 부러워했던 것은 속셈학원에서 나누어 주는 학원용 가방이었다.  가방은 등에 메는 가방은 아니었다. 한두 권의 책과 필통만 들어갈  있는 손잡이가 달린 그런 가방이었다. 방과 후에  가방을 손에 들고 학원의 특별한 구성원이 되려고 학원으로 가는 아이들은 줄리는 매우 부러워했다. 그리고 줄리가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부러워했던 이유는 조금은 슬펐지만 학원에 다니면 왜인지 모르지만 부잣집 아이처럼 보일  같아서였다. 그랬다. 1989년의 봄에 학원을 간다는 것은 입에 풀칠이나 집에서는 다소 어려운 일이었다. 줄리의 집안 구성원들을 입에 풀칠 겨우 하게 만드는 사람은 줄리의 아버지였고  가정의 구성원은 줄리의 아버지와 줄리가 전부였다. 줄리의 사는 집은 외갓집이었다. 줄리는 아버지와 가정의 구성원을 이루긴 했지만 살고 있는 곳은 허름한 외할머니의 집이었다. 다소 복잡한 가정의 모습이었다. 외할머니의 집에서 구성된 아버지와 줄리라는 가정이었다. 그러한 가정의 형태에서 유복한 중산층들의 전유물인 속셈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줄리에게 뜬구름을 손아귀에 쥐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줄리가 차선의 소망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학습지였다. 학습지만 하면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만큼은 아니지만 줄리를 휘어잡고 있는 슬픈 마음이 사라질 것 같았다. 1989년... 그 해의 봄은... 그 봄의 따뜻함은 줄리의 마음을 꽤나 서럽게 만들었다. 3월에 따스한 봄바람을 맞으며 학교의 정문 앞을 나서는데 그곳에는 키가 큰 어른 한 명이 서있었고 아이들이 그 어른을 둘러쌓고 있었다. 그때 그 시절에는 학교 앞으로 잡상인들이 꽤나 오던 시절이었다. 장난감도 팔았고 영화표 같은 것들이나 아이들의 호감을 끌만한 물건들을 팔곤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아이들의 마음을 현혹하던 것은 바로 학습지였다. 기억을 의존해 보자면 아이템플이라는 학습지를 하면 겸하여 주는 사은품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정말로 달콤하게 했다. 연간 회원을 끊으면 중국산 라디오나 카세트 플레이어 같은 것을 주곤 했다. 당장의 공부의 의지를 발현시키기보다는 그런 물건들로 아이들의 마음을 유혹해 학습지의 연간 회원권을 끊도록 유도했다. 아이들은 그 물건을 보고 마음을 빼앗겨 집으로 달려가 부모님들을 조르곤 했다.

 

줄리도 집에서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아버지라는 골칫덩이는 잠시 있고 달콤한 마음으로 그 어른 앞에 섰다. 어른의 말은 그랬다. 공부를 줄리처럼 지지리 못하는 아이들도 이 학습지만 열심히 하면 반에서 일등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성적을 바꾼 아이들의 좋은 사례를 그 어른은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줄리는 그 말에 여과 없이 빠져들었다.

 

‘저 학습지만 하면 나도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처럼 특별해질 수 있어!’

 

이런 강한 의지가 줄리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줄리는 특별해지고 싶었다. 줄리가 되고 싶던 특별함은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그런 평범한 가정의 평범함을 특별한 것이라 여겨 간절히도 소망했다. 그렇게 줄리는 학습지가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일등이 하고 싶었다. 그러면 나도 특별하다 여겨지는 평범함을 소유할 것만 같았다. 학습지의 설명이 끝나자 좋은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들고 그 어른은 그 물건에 대한 소개를 이어 나갔다. 라디오 기능이며 오토 리버스까지 온갖 최신 기능이 탑재된 중국산 카세트 플레이어였다. 줄리는 그 물건도 가지고 싶었다. 그러면 자신 또한 부유한 가정의 한 일원이 된 듯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줄리는 생각을 얼른 고쳐먹었다. 아버지에게 학습지 연간 회원 이야기를 하면 술기운에 화를 낼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머리를 굴려 생각한 것이 학습지는 줄리가 하고 플레이어는 아버지의 소유로 돌리자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지혜를 짜내서 이야기하면 아버지가 왜인지 모르지만 학습지를 시켜 줄 것 만 같았다. 모든 학습지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줄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공중전화 박스로 향했다. 까치발을 들어 수화기를 들고 그날의 간식을 사 먹을 귀중한 동전 한 닢을 전화기 안으로 넣고 밀어 넣었다. 그리고 외할머니 집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갔다. 오랜 신호가 갔다. 줄리의 손에서는 땀이 났고 또 줄리는 겁이 났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긴 신호 뒤에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역시나 술에 취해 잠들었다 이제 막 일어난 목소리였다.

 


 

“아빠! 나야! 지금 학교 앞에서 학습지 가입하면 카세트 플레이어 준데! 근데 아빠! 난 카세트 플레이어는 갖기 싫고 학습지가 하고 싶어! 그래서 일등 하고 싶어! 카세트 플레이어는 아빠 가져! 나 학습지 시켜 주면 안 될까?”

 

겁을 먹은 줄리는 머릿속으로 연습한 말을 쉴 새 없이 쏟아 냈다.

 

“그거! 애들한테 팔아 처먹으려고 그 새끼들이 장난질하는 거야! 그런 거 길에 서서 듣지 말고 얼른 집에나 와!”

 

작은 희망을 가졌지만 예상과 다름없이 술에 취한 아버지는 윽박을 지르며 줄리가 가진 소망을 무참히 짓밟았다. 1989년 3월의 따뜻한 봄은 그래서 줄리에게 더없이 서러웠다. 자신은 특별하지고 평범하지도 않은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뻣뻣했던 줄리의 희망은 또 부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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