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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May 26. 2022

마돈나

거짓말

누드사진으로 본 마돈나(Madonna)의 몸은 둥글 둥굴 한 버터 덩어리 같았다. 사진 속 마돈나의 피부는 유난히 하얀빛을 띠었고 부드러운 굴곡의 몸매는 12살의 어린 나를 숨이 막히게 만들었다. 마돈나의 누드사진을 구한 곳은 고물상이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고 나면 이리저리 마을을 돌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마을에는 마땅한 놀이터가 없었고 떠돌며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는 장소 중 한 곳은 고물상이었다. 인심이 후하셨던 고물상 사장님은 우리가 그곳에서 해가 지도록 시간을 보내도 넉넉하게 배려해 주셨다. 우리는 파지 더미를 쌓아 올린 곳에 오르며 놀기도 했고 올라갔던 곳에서 아래 파지 더미로 뛰어내리며 활기찬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때로는 파지 더미를 뒤적이다가 재미있는 만화책을 발견하면 그곳을 도서관 삼아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그렇게 책을 보다 잠이 오면 파지에 기대에 잠을 청하기도 했다. 햇볕이 내려 쬐는 고물상의 파지 더미는 그렇게 여유롭고 한가로울 수 없었다. 그곳은 우리 동네 아이들의 최고의 안식처이자 놀이터였다.

 

마돈나의 누드사진을 발견한 것은 그때 즈음이었다. 당시 일요 주간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파격적인 소식을 많이 싣곤 했는데 마돈나의 누드사진 여러 장이 그 신문에 실렸다. 그 일요 주간지는 고물상에 파지로 버려져 있었고 나는 그 사진을 친구들 몰래 구석진 곳으로 가져와 한 장 한 장 유심이 살펴보았다. 설탕이 묻은 도넛의 맛은 본 적이 없어 달콤함은 알지 못했지만 정말 달다는 사실은 머리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순간 그 좋은 것을 나 혼자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누드 사진이 있는 종이만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렇게 누드 사진을 몸 어딘가에 소지한 채로 집으로 돌아와 떨리는 마음으로 가방 속에 챙겨 넣었다. 내가 사진을 챙긴 이유는 반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 스티븐(Steven)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당시 스티븐과 나는 만나기만 하면 여자의 육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구조는 어떻게 생겼으며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정확하지 않은 지식을 서로에게 이해시키느라고 논쟁을 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묘함 우월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사진을 스티븐에게 보여주며 ‘이제는 내가 너보다 한 수 위’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학교로 향하며 으슥한 골목으로 가서 다시 한번 누드사진을 탐닉을 하고 싶었지만 혼자서 그런다는 것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스티븐의 우정을 배신하는 것 같은 묘한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날 오전 수업이 끝난 뒤 스티븐과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말했다.

 

“있다가 학교 마친 다음에 교실 청소 끝나고 나랑 같이 가... 보여 줄 게 있어...”

 

“뭔데?”

 

밥과 반찬을 우물거리며 스티븐이 말했다.

 

“가보면 알아! 말하자면 우리가 진정한 남자가 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지...”

 

나는 그렇게 넌지시 말하고 식사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그날의 모든 수업을 마치고 교실 청소를 끝낸 뒤, 나와 스티븐은 가을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같이 걸었다. 길을 가다가 으슥한 골목이 보이자 내가 얼른 그 골목으로 뛰어 들어가 손짓으로 스티븐을 불렀다. 스티븐은 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의아해했고 이내 우리들의 비행을 눈치나 챈 듯 주위를 살피며 외진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늘이 짙게 드리운 골목으로 더 깊이 들어간 나는 가방의 지퍼를 열고 여러 번 접은 마돈나의 누드사진을 꺼냈다. 내가 조금씩 신문지를 펼쳐 나가자 스티븐은 의혹의 눈빛을 보냈고 이내 종이를 다 펼쳐 사진을 보이자 스티븐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진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앞으로 여성의 육체를 가지고 스티븐과 더 이상 논쟁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의 스티븐은 그곳에서 행복해하고 또 행복해했다.

 


 

우리의 자그마한 일탈이 끝난 후,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나의 마돈나를 가방 속에 다시 보관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나를 다시 만날 때까지 안식을 취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듯 그 비행을 저지른 주말에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같이 살던 우리 이모가 선심을 베풀어 더러워진 나의 책가방을 세탁을 하려 했고 그곳에 나를 다신 만날 날을 기다리며 곱게 쉬고 있던 마돈나를 만나버린 것이었다. 그 사실은 순식간에 엄마에게 통보가 되었고 엄마는 자초지종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파리채로 나를 찜질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내 온몸을 파리채는 훑고 지나갔고 나는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나는 생각하고 생각했다. 이 범죄를 인정하는 순간 나는 천하의 몹쓸 놈으로 낙인이 찍히고 만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부정하고 부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치 범죄를 저지르다가 걸린 당시의 정치인들 마냥 말이다.

내가 그 가방에 마돈나를 넣는 일을 본 사람은 없었고 그냥 마돈나가 내 가방 안에 들어있었으니 어른들을 향해서는 누군가 나에게 골탕을 먹이려고 장난을 친 거라고 우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른들로부터 내려오는 그 단죄의 마음을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엄마로부터의 매타작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자 나를 기다리던 우리 이모와 마주했다. 나를 짐승 보는 듯한  이모의 눈빛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거짓말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내 안에 내재해 있는 명배우들을 소환해 냈다.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제라드 빠르디유, 그렇게 그들을 연상하며 나는 혼신의 연기로 처녀였던 우리 이모를 진정시키고 또 진정시켰다.

 

그때 나는 알았다. 거짓이라는 힘이 하나의 권력이요.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12살의 나는 살고싶은 욕망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 지금의 나는 12살의 나를 너그러이 용서하고 품어 주기로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거짓을 의존하여 그때의 상황을 모면한 , 거짓이라는 세력을  이상 의지하지 않게 되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마돈나가 주었던 기쁨을 누리고 오는 후회보다 거짓으로 상황이 마무리되었을 때의 죄책감이 더욱 컸기에 그랬던  같다. 마돈나와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의 죄책감보다 거짓 이후의 죄책감이  배는  컸다는 사실 말이다.  비참함은 엄마나 이모가 보내던 환멸의 눈빛보다  배나  컸다. 누군가를 속였다는  상황속에서 내가 안심한다는 사실...

 

어른이 되면서 점점 더 거짓말을 잘하지 않게 된다. 도덕을 사랑해서도 아니고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도 아니다. 마돈나가 가져다준 죄책감보다 몇 배나 큰 죄책감을 마주할 힘이 자라면서 점점 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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