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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May 30. 2022

음란물 보는 날

용서보다 큰 용납

우리가 원하던 음란물은 제목이 직설적인 성인용 비디오가 아니었다. 비디오테이프의 모양을 보자면 제목이 없는 공테이프의 모양이거나 영어로 적혀있는 VHS 테이프를 원했다.  시절 나와  친구들은  테이프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테이프가 돌고  때면 극비에 부쳐졌기 때문에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만  사실을   보안이 철저히 유지가 되곤 했다. 만약이  사실이 학교 전체로 널리 퍼지면 테이프는 이곳저곳으로 돌기 마련이고 결국에는 선생님에게 꼬리가 밟혀 그것을 소지하고 있던 학우는 선생님에 의해 갖은 고초를 겪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벗인 앨런(Alan)의 부모님이 가정 냉장고 위에 숨겨두고서 그 존재 여부를 잊어버리시는 사건이 벌어졌다. 앨런은 긴 시간을 두고 부모님이 그 테이프를 회수하는지 여부를 판단한 다음, 부모님이 완전히 잊어버렸다고 판단한 뒤, 그 테이프를 손에 넣었다. 그 사실은 앨런을 비롯한 나와 내 친구들이 알게 되었고 우리는 약속하지 않아도 약속이나 한 듯 거사를 치르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관람 장소였다. 간단힌 영화쯤이야 아무 친구의 집에서 관람할 수 있었지만 그때 우리가 소지한 테이프의 제목은 “On dark side"라는 원색적인 제목의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때를 두고 기다리면 즐거움의 시간은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축산업을 하시던 친구의 집이 비는 날이 생겼다. 부모님이 제주도로 여행을 가셨고 그 친구는 다 같이 가서 축사를 간단하게 청소 한 뒤, 친구 자신이 젖소의 젖만 짜내고 남는 시간에 마음 놓고 관람을 하면 된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었다. 우리의 마음속에 광명한 빛이 찾아들었다.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을 완성했을 때 우리의 마음의 환희를 느꼈을 것이다. 앨런은 주기적으로 부모님의 동태를 우리에게 알렸고 상황은 순탄하게 돌아갔다.

 

역사적인 거사의 날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선생님들이 해주는 성교육은 고리타분했으며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형식적으로 반복해서 이야기해줄 뿐 아무 의미도 쓸모(?)도 없었다. 우리는 다짐했다. 사람에게 유용하지 못한 지식을 언제고 남발하는 저 선생님들의 의미 없는 굳어버린 체제들을 거부하고 우리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고 발견하여 자생적으로 성교육을 해주기로 말이다. 학교가 끝나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긴장된 마음으로 축산업을 하는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가서 친구의 부탁대로 청소를 시작했다. 한 시 바삐 스스로 성교육을 하고 싶은 마음에 쏜살같이 축사 청소를 끝냈다. 친구가 유축기로 젖소의 젖을 짜내자 우리는 친구를 들들 볶아 작업에 속도를 올렸고 이내 모든 작업이 완료된 후, 우리는 그 집 안방으로 향했다. 커튼을 치고 리모컨으로 TV를 켠 뒤, 비디오 재생기에 전원을 넣었다. ‘웅’하는 소리와 함께 전원이 들어왔고 TV는 외부 입력 기능으로 바뀌며 화면이 파랗게 변했다.  매 순간순간이 한 시간처럼 느꼈다. 긴장감으로 인해 손에 땀이 쥐어졌다. 찰나였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숨소리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였다. TV 속 여배우의 행동이 낯설었는지 웃겼는지 몰랐지만 갑자기 한 녀석이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우리는 상황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 녀석을 주먹으로 한 대쳤다. 그렇지만 그 녀석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좀 더 몰입감 있게 집중하고 싶었지만 쳐 웃는 녀석 때문에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실랑이가 시작되었는데 우리의 실랑이는 신경도 안 쓰고 집중을 다해 화면을 쳐다보던 녀석이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나를 위해 옆방에 잠시 가줄 수 없겠냐?”

 

우리는 순간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녀석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다시 한번, 애절하게 말했고 우리는 그 녀석의 진정성을 느꼈었는지 옆방으로 향했다. 다들 충격을 가시지 못한 채, 옆방으로 향했고 다들 동공이 풀린 눈 사이로 방안에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정적을 깨는 소리가 거실에서 갑작스레 들렸다. 현관문이 ‘덜커덩’ 거리며 열려버린 것이다.

 

“언니! 있어요? 아니 우리 집에 세제가 떨어져서 그런데 종이컵으로 한 컵만 줘요!”

 

그 순간,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거실로 뛰쳐나와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던 가방을 들고 냅다 튀었다. 후다닥 이었다. 안방에서 재미를 보고 있을 친구에게 위험을 알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우리의 급작스런 행동에 들어오신 낯선 아주머니는 화들짝 놀라셨고 우리는 그 아주머니가 놀라는 틈을 타 도주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아주머니는 종이컵을 들고 머뭇거리시다가 의아해하시며 안방 문을 그대로 여셨다. 나의 불쌍하고 불쌍한 친구는 바지를 끌어올리지도 못한 채, 그 모습 그대로를 아주머니에게 보이고야 말았다. 테이프의 제목대로 그 녀석의 마음은 “On dark side"였다.

 

신작로를 도주하면서 우리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의 감정이 들었다. 흥분과 환희와 쾌감과 불안과 우울 같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뒤죽박죽이었다. 그리고 그 집에서 멀어져 도주를 무사히 완료했을 때에는 즐겼던 쾌감은 멀리 사라졌고 불안과 우울과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가장 지배적인 감정은 불안이었다. 우리는 다들 입을 모아 그 녀석이 아주머니에게 잔뜩 혼이 나고 그 사실을 그 녀석의 부모님이 알게 되고 그렇게 우리들에게 연락이 오고 그 연락의 우리들의 부모님에게까지 간다면 예측할 수 없는 참극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고 궁리해 본 결과 다시 돌아가 아주머니에게 당장 혼나고 용서를 빌며 더 이상의 발설은 해주지 마십사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하고 다시 발길을 돌려 그 녀석의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주머니가 혹여나 그 녀석을 혼내고 집으로 돌아가셨을까 봐 우리는 다시 한번, 숨이 터져라 달리고 달렸다. 그리고 그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조심스레 열고 주섬주섬 다들 거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눈을 의심했다. 격분한 아주머니의 모습을 볼 것만 같았지만 거실의 공기는 온화했다. 바지를 대충 추켜올리고 잠근 그 녀석이 소파에 앉아 있었고 아주머니는 그 녀석에 따뜻한 미소를 지으시며 일종의 연설 같은 것을 하고 계셨다. (그렇지만 우리의 그 녀석의 얼굴은 수치심으로 가득했다.)

 

“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호기심을 보이는 건 나쁜 행동이 아니에요. 숨겨야 할 행동도 아니고요. 나는 00 이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깨어있는 어른 중에 한 사람이에요.”

 

순간 연설이 중단되고 아주머니를 우리를 발견하고는 밝은 미소를 손짓하며 우리도 거실로 불러들여 앉혔다. 아주머니의 연설이 계속되었다.

 

 


“여러분 모두는 사랑스러운 존재이고 남녀 간, 즉 여러분의 부모님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저도 여러분과 같은 호기심을 가지며 지내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오늘 같은 여러분의 행동은 결코 비난만 받아야 하는 행동은 절대 아닙니다. 이해가 필요가 행동들이에요. 하지만 오늘날은 이런 이해의 행동들이 동반되는 시대는 아니지요. 학교에서도 그렇고 가정에서 그렇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을 언제든지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리고 걱정하지 말아요. 오늘 일은 여러분을 위해서 충분히 비밀로 해줄 수 있어요. 내가 만약에 이 사실을 여러분의 부모님에게 알리면 여러분과 저 아니 여러분과 어른들은 다시 한번 적이 되고 마는 거예요. 여러분을 이해합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생각했다. 차리라 욕과 저주를 퍼부으며 환멸을 표하는 것이 나와 우리의 죄책감을 덜어 줄 것만 같았다. 거실의 온화한 공기가 우리의 수치심의 게이지를 점점 높이는 것 같았다.

 

“저는 여러분이 이성을 사랑하는 존재가 되길 바라요! 이성과의 공존은 꼭 저런 성관계만이 대표적인 상징을 하는 것 아니랍니다! 여러분이 사랑을 할 나이가 되면 이성은 사랑하고 지켜야 할 존재라는 것을 느낄 거예요.”

 

그 뒤로도 아주머니의 연설은 30분 가까이 진행이 되었다. 아주머니는 종이컵을 들고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숨죽이며 아주머니의 말을 모두 경청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날의 사건을 그날 무마시키기 위해 아주머니의 비위를 최대한 맞추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아주머니의 연설이 마무리될 때 즈음, ‘더 이상 상황이 확전 되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확고히 든 후, 우리는 긴장이 풀렸다. 긴장이 풀리자 죄책감도 우리를 떠나갔고 부모님을 긴장한 채로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쾌청함이 찾아왔다.

 

후에 든 생각인데, 내 기억에는 그렇다. 어른으로부터 받아본 전인적인 배려와 용납의 기억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배려와 이해와 용서 이상의 용납을 받아본 그날, 우리는 음란물이 주는 한 껏의 긴장감과 쾌락보다 좀 더 유쾌한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그런 감정을 선물하시고 그 녀석으로부터 세제 한 컵을 얻어서 밝은 미소와 함께 댁으로 돌아가셨다. 물론 아주머니가 떠난 뒤, 우리는 음란물을 재관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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