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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Jun 15. 2022

실낙원

부끄러움의 몫

나는 늦은 나이까지 여탕을 다녔다. 남자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 기억을 의존해 보자면 11살, 즉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여탕을 갔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아버지의 부재도 한몫을 했고 그런 나 스스로는 내 몸의 때를 혼자 말끔하게 씻어 낼 수 없었다. 그런 어머니는 나를 여탕으로 강제적으로 데려가셨다. 물론 나는 11살이었지만 6살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 덕에 목욕탕 주인을 속이고 아주 간단하게 여탕을 향해 입장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나와 같은 아이들이 몇몇 있었다. 파블로(Pablo)도 나와 같은 처지였다. 파블로도 나와 같이 발육이 덜 되어 있었고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 덕에 늦은 나이까지 여탕엘 가야 했다. 이 이야기는 그런 파블로의 이야기다.

 

파블로에게 들은 바로는 그때가 늦봄이었다고 했다. 아지랑이가 아스팔트로부터 충분히 피어오를 무렵 목욕탕에 가는 날이었다. 내가 살던 곳은 작은 동네였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을 목욕탕에서 마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1살의 파블로가 어머니의 손에 이끌리어 목욕탕을 입장하던 날 그는 그날 따라 잔뜩 긴장한 채로 탕에 몸을 담갔다. 탕 안으로 목까지 몸을 담그고 사주를 경계했다. 11살의 파블로는 순수했다. 나 같은 경우는 11살의 시절에도 잔뜩 음탕했기 때문에 그곳을 마음껏 탐닉했었지만 파블로는 순수 그 자체였다. 여탕이나 남탕의 나체의 모습들은 파블로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렇지만 파블로는 자신의 나체를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날 결국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파블로는 혹여나 여탕 입구에서 아는 사람들이라도 들어올까 하는 마음에 끊임없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그곳을 응시했다. 때가 되면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몸을 어머니의 몸에 맡기고 때를 밀어야 했지만 그 순간이 더디 오고 더디 오길 바랐을 뿐이다. 결국 어머니의 호출이 있었고 파블로는 어머니의 품에 안기어 때를 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여자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탕 유리문 밖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파블로는 그때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같은 반 여자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탕의 문이 열리더니 파블로의 같은 반 여자아이가 나체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 여자아이는 끊임없이 누군가 대화를 주고받으며 들어왔다. 한 명이 아니었다. 여자 아이는 여자 아이들이 되어버리더니 그들의 목소리는 탕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파블로의 눈에 비친 같은 반 여자 아이들은 정확히 15명이었다. 파블로는 순간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머릿속에 하얗게 변했고 혀가 굳어졌다. 어머니가 몸에 붇는 따뜻한 물이 차갑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도망을 치더라도 여자아이들은 자신의 알몸을 볼 것이 뻔했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파블로는 어머니의 품을 뿌리치고 탕 안으로 급하게 몸을 숨겼다. 그렇다고 자신의 존재를 그들 앞에서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순간의 임기응변일 뿐이었다. 파블로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후 벌어질 고통이 어떨지 분명했고 짐작할 충격은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파블로는 몸을 탕에 담그고 여자 아이들을 등진 채, 탕의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탕에 몸을 담그는 반 여자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파블로는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었으면 했다. 이 사실이 반에 퍼지는 순간 파블로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11살의 나이를 속이고 여탕을 다닌 사실이 15명에게 발각되어 반에 소문이라도 퍼지면 파블로는 바로 사회적 매장이었다. 그렇게 파블로는 생각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너 파블로 아니니?”

 


같은 반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사달이 나고 말았다. 여자 아이중 한 명이 파블로를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걸고 만 것이었다. 파블로는 못 들은 척을 하고 절대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 아이 쪽에서 한 술 더 떠서 파블로의 어깨를 툭툭 치기 시작했다.

 

“파블로 야! 너도 목욕탕 왔구나? 엄마랑 왔어? 창피해하지 않아도 돼! 내 남동생도 10살인데 때를 못 밀어서 엄마가 여탕 데려왔어!”

 

순간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할 줄기의 희망이 파블로의 가슴속에 비추었다. 파블로는 순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반 여자 아이들 15명 전부가 탕 안에 들어와 있었다. 파블로의 머릿속은 이 상황을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몰라 백지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여자 아이들은 호기심의 눈으로 파블로를 바라볼 뿐 창피해하거나 수치스러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목욕탕이라는 공간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의 경계가 전부 풀려버린 상황이었다. 1991년의 대한민국은 그랬었다. 드디어 파블로도 경계를 늦추고 몸에 긴장을 풀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난 정말 가기 싫었는데 엄마가 억지로 데려 온 거야... 너희들 내일 학교 가서 이거 소문내면 안 돼... 그러면 난 정말 끝이야...”

 

파블로는 애원하듯이 말했다.

 

“당연하지! 내 동생도 10살이 되도록 여탕 다니는데... 우리 동생이랑 똑같잖아! 우리 수영장 왔다고 생각하고 같이 놀자! 다이빙도 하고 헤엄도 치고!”

 

쭈뼛쭈뼛하던 파블로는 그들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몸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 어려웠을 뿐이지 막상 몸을 꺼내 15명의 아이들 앞에 나체를 내보이자 수영장이나 다름없는 생각이 들었다. 파블로는 이제 안심하기 시작했다. 부끄러움이야  멀리 던져 버리고 안심하고 안심하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탕을 휘저으며 놀기 시작했다. 그랬다. 부끄러움은 부끄러워하는 자의 몫이 뿐이지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기로  자의 몫은 아니었다. 파블로는 아이들과 냉탕으로 가서 수영시합을 하기도 했고 다이빙을 하며 물을 사방으로 튀기기도 했다. 중간중간 어머니가 불러서 닦고 와야 하기도 했지만 곧바로 아이들에게 합류하여 즐거운 물놀이를 계속 이어 나갔다. 훗날 나는 파블로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마음속으로 크게 생각했다.

 

‘파블로가 그날 머물렀고 이루었던 세계는 목욕탕이 아니었고 진정한 실낙원이었으며 진정한 유토피아였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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