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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Jul 04. 2022

5살의 악마

쇠망치

5살 아이의 거처는 단칸방이었다. 그곳에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누나가 같이 살았다. 그 단칸방의 바깥쪽으로는 작은 부엌이 있었다.  5살 아이의 눈에는 그 거처가 꽤나 큰 공간이었다. 작은 몸을 가지고 있었을 아이의 눈에는 커 보였을 것이다. 그랬을 수밖에 없다. 아이는 언제든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 그곳에서 거대한 세상을 만들어 모험을 하곤 했다. 아이는 가난을 일찍 알아버렸다. 그리고 그 가난에 저항이 없이 적응을 잘했다. 다른 선택의 사항은 없었다. 다만 억울하고 분하더라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아이는 적응이라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만큼 장난감의 개수도 적었고 옷가지도 많지 않았다. 그에 비해 아이와 동갑이었던 단칸방의 주인집 아들은 장난감도 고급이 많았으며 옷들도 언제나 TV에서 보던 만화 주인공들이 그려진 옷들이 많았다.

 

5살 아이는 주인집 아들이 싫었고 미웠다. 처음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억울해하며 그 분노의 방향을 주인집 아들로 향했었다. 언제고 가난하고 볼품없는 자신 앞에서 자랑을 늘어놓으며 무시를 하는 주인집 아들과 아이의 세상에서 그 주인집 아들은 미움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을 했다. 주인집 아들의 손에 들려있는 최신형 로봇을 보며 자신의 초라한 장난감인 우주선 저금통은 슬프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언제가 그 우주선이 진짜라면 타고 저 밤하늘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 도착한 곳에서는 자신을 반겨주는 최고급 장난감 친구들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이가 슬픈 이유는 가난과 자신의 처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5살 아이도 알았다. 월세를 주인집 아저씨에게 제때에 가져다준 적이 없는 아버지가 이유였다. 아버지는 언제고 주인집 아저씨의 눈치를 봤고 그의 비위를 맞췄다. 연약하고 유약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5살 아이의 세상에서는 자신의 세계가 부정당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의 세계는 존재하지 아니함만 못한 곳이다.’

 

애석하게도 그런 아버지가 강한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엄마와 누나와 아이였다. 언제아버지는 폭군과도 같이 그들에게 힘과 억압으로 군림을 하곤 했다. 강해 보이던 아버지가 주인집 아저씨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아이는 자신의 사회와 세계를 부정당했다. 혼란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혼란과 분노의 마음은 주인집 아들에게로 향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주인집 아들이 ‘우리 아빠와 너희 아빠가 싸우면 우리 아빠가 쉽게 이긴다.’ 말에서도 아이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일정 부분 인정할 만한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5 아이의 마음속에서 자신의 세계가 부정당했으며 주인집 아들의 말들과 행동 그리고 늘어만 가는 고급 장난감에 의해 아이의 마음속 분노는 커져만 갔다.

 

어느 날이었다. 아빠가 단칸방의 월세를 제때에 주지 못하고 며칠 늦은 채로 주인집을 찾아가는 것을 아이는 주인집 아들과 같이 보았다. 머리를 긁적이며 허리를 숙이고 지폐 몇 장을 주인집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주인집 아저씨는 아빠보다 높은 위치인 마루에서 그 돈을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건네받으며 말했다.

 

“돼지고기를 사다 먹을 돈은 있고 월세를 제때 줄 돈은 없소?”

 

 


그 말을 듣는 순간의 아빠의 표정을 아이는 보았다. 자신과 엄마 그리고 누나에게 늘 보이던 분노의 표정을 비굴함과 연민으로 억누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 표정을 주인집 아들도 같이 보았다. 몇 번이고 인사를 하며 아버지가 단칸방으로 돌아간 뒤, 아들과 아이는 같이 남았다. 아들의 표정에서는 묘한 우월감 같은 것이 묻어 나왔으며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아들 녀석은 싱글싱글 웃기 시작했다.

 

“너희 아빠한테 받은 돈으로 우리 아빠가 새 장난감 사 줄 거야!”

 

순간 아이는 이미 마음속에서 터져버린 분노로 인해 손바닥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장난감인 우주선 저금통을 집으로 돌아가 방아 던져 놓고 돌아와 아들에게 말했다.

 

“창고에 가서 놀자!”

 

“창고? 거기는 왜?” 징그럽게 아들 녀석이 웃으며 대답했다.

 

“실은 우리 아빠가 지난밤에 네 것보다 좋은 로봇 장난감을 사주셨거든! 그거 내가 보여줄게!”

 

“너희 아빠가 그런 장난감을 사줬다고? 그럴 일이 없는데? 너희 집 돈 없잖아?”

 

아이는 그런 말을 다시 한번 듣자마자 숨이 막혔다. 넘쳐 오르는 분노를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분노의 힘을 빌러 아이는 영악스럽게 표정을 관리하며 이어 말했다.

 

“그래! 우리 아빠가 큰 마음먹고 사줬어! 내가 보여 줄 테니까! 너도 사달라고 해!”

 

말을 그렇게 마치자 아들은 이내 호기심의 표정을 보이며 창고로 들어갔다. 아이도 아들을 따라 곧바로 들어갔다. 창고는 아이에게 피난처 같은 곳이었다. 언제고 아빠에게 얻어터지고 나면 숨어드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무슨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았다. 느린 걸음으로 들어가는 주인집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아이는 쇠망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느린 걸음으로 들어가는 주인집 아들의 머리를 보았다. 새카만 흑발이었으며 바가지 머리였다. 장난감을 끌어안고 있는 그 아들의 뒤통수를 망설임 없이 내려쳤다. 쩍! 하는 소리가 났고 숨이 막히는 소리가 아들로부터 들렸다. 극한의 고통이 찾아왔을 때 아이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싶어 하나 비명이 나오지는 않고 울음소리도 바로 나오지 않아 몇 초 동안 정적이 흐르는 바로 그 상태였다. 그 몇 초 동안 아이는 느꼈다. 마음을 꽉 채우던 분노가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호흡을 통해 빠져 나갔고 차가운 얼음이 마음속으로 들어오듯 모든 곳으로 분노가 빠져나갔다. 그리고 잠깐의 희열을 맛보았을 때 즈음 주인집 아들의 큰 비명이 온갖 곳으로 퍼져 나갔다. 아이는 직감했다. 상상할 수 없는 큰 공포가 자신을 곧 덮쳐 올 것을 말이다. 그렇지만 아이는 다짐했다. 그 공포의 시간이 지나고 언제든지 고통의 상황의 찾아오면 이 순간을 마음속에서 꺼내어 기억하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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