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조(법률행위의 일부무효) 법률행위의 일부분이 무효인 때에는 그 전부를 무효로 한다. 그러나 그 무효부분이 없더라도 법률행위를 하였을 것이라고 인정될 때에는 나머지 부분은 무효가 되지 아니한다.
법률행위의 무효와 취소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여러 조문에서 등장하였던 터라, 이제는 상당히 이 표현이 익숙하실 겁니다.
복습하자면, 무효란 당연히 처음부터 효력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 취소란, 당연히 처음부터 효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일단 유효), 뭔가 법률행위에 문제가 있긴 하므로, 추후에 취소 행위가 있으면 그 법률행위 당시로 소급하여 무효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아래의 조문에서 '무효'라는 단어를 자주 보았습니다.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제104조(불공정한 법률행위)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제107조(진의 아닌 의사표시) ①의사표시는 표의자가 진의아님을 알고 한 것이라도 그 효력이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아님을 알았거나 이를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 ②전항의 의사표시의 무효는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제108조(통정한 허위의 의사표시) ①상대방과 통정한 허위의 의사표시는 무효로 한다. ②전항의 의사표시의 무효는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제137조는 일부무효의 법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계약이 성사되었는데 그 계약이 제103조에 따른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에 해당한다고 합시다. 그 계약이 무효로서 처음부터 효력이 없었던 것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계약이 예를 들어 20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딱 3개만 반사회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나머지 17개는 멀쩡한 내용이라고 합시다. 이처럼 어떠한 법률행위가 있을 때 그 일부에만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그 법률행위 전부를 무효로 해야 할지 아니면 그 일부만 무효로 해야 할지가 고민이 됩니다. 사과의 일부분만 썩었을 때 사과 전체를 버려야 하는지 썩은 부분만 도려내고 먹어야 하는지의 문제인 겁니다.
우리 민법의 원칙은 사과 일부가 썩었을 때에는 사과 전체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즉 법률행위의 일부만이 무효에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그 법률행위 전체가 무효가 됩니다(제137조 본문). 썩지 않았는데도 버려지는 부분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애초에 사과 '1개' 전체를 먹을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과의 일부분만 먹는 것은 계획에 어긋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차라리 새 사과 1개를 통째로 사서 먹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처음부터 당사자는 20개의 조항으로 구성된 계약을 상정하고 법률행위를 한 것이기 때문에, 일부분을 도려내고 나머지 17개의 조항만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당사자의 의사에 오히려 반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상하셨듯이 이 원칙에도 예외는 있습니다.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남은 일부분만 있었더라도 처음부터 그 사과를 샀을 거라면? 그러한 경우에는 굳이 사과 전체를 버리라고 할 필요가 없겠지요. 이처럼 우리 민법에서는 무효인 부분이 없었더라도 처음부터 법률행위를 하였을 것이라고 인정될 때에는 (무효인 부분 외의 멀쩡한) 일부분은 유효로 보겠다는 예외를 둡니다(제137조 단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영희에게 자신의 볼펜 1세트와 연필 1세트를 파는 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영희는 솔직히 처음부터 철수의 볼펜 세트는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이 맞지만, 연필 세트는 살 생각이 없었다고 합시다. 영희가 그냥 연필까지 사겠다고 농담을 한 것이었는데, 철수는 그것이 농담임을 알면서도 영희에게 연필 세트까지 팔아 버린 것입니다(상대방이 알고 있는 비진의표시, 제107조제1항 단서).
이 경우 영희는, 연필 1세트를 사는 부분은 무효가 맞습니다만 영희는 연필 세트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볼펜 세트만이라도 사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연필 세트에 관련된 매매 계약만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일부 무효의 법리는 현실에서 적용하기에는 생각보다 어려운 부분이 많아, 각 사례에 따라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 접근하여야 합니다.
내일은 무효행위의 전환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