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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Nov 26. 2019

민법 제138조, "무효행위의 전환"

제138조(무효행위의 전환) 무효인 법률행위가 다른 법률행위의 요건을 구비하고 당사자가 그 무효를 알았더라면 다른 법률행위를 하는 것을 의욕하였으리라고 인정될 때에는 다른 법률행위로서 효력을 가진다.


문장 참 어렵습니다. ‘의욕하였으리라고 인정’이 뭡니까... 일단 표현이 이런 것은 양해해 주시고 공부를 시작해 봅시다.


제138조는 무효인 법률행위의 전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전환’이란 바꾼다는 뜻으로 일상에서 자주 쓰지요? 무효행위의 전환이란, 어떠한 법률행위가 A라는 법률행위로서는 무효인 경우라고 할지라도, “B라는 법률행위의 관점에서 보면 유효하다고 볼 수 있는 경우”, 당사자 입장에서도 A라는 법률행위로서는 무효가 될 것임을 알았더라면 B라는 법률행위로 하였을 것이라고 인정될 때에는 B라는 다른 법률행위로 ‘전환’하여 그 효력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이해가 안 가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와 영희 부부는 자녀가 없어 외롭습니다. 그러던 도중 나효자라는 어린 소년을 만나게 되었는데, 너무 착하고 순수해서 철수와 영희 부부는 그 아이가 꼭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효자라는 소년도 부모님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부부는 나효자를 자신들의 자식으로 삼기로 합니다. 


그래서 부부는 나효자에 대하여 자신들이 부모임을 나타내기 위한 출생신고를 합니다. 그런데 부부는 법을 잘 몰랐던 관계로 나효자를 자신들의 ‘친자식’인 것으로 잘못 써서 출생신고를 했습니다. 이 출생신고는 ‘친자식이 아닌 자’를 친자식으로 썼기 때문에 무효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나효자가 극진히 모신 철수와 영희 부부가 세상을 떠나고, 나효자가 재산을 상속받으려고 하자 “출생신고가 무효이므로 당신은 두 사람의 자식이 아니다. 따라서 당신은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출생신고가 잘못된 줄 모르고 30년을 살아온 나효자는 굉장히 억울합니다.


이와 같은 경우에, 철수와 영희 부부가 했던 행위는 ‘출생신고’로서는 분명 무효이지만, 당사자 간에는 분명히 서로 부모와 자식 관계가 되겠다는 의사의 합의가 있었고 그 외 입양에 필요한 요건이 갖추어져 있었다고 한다면 입양신고로서는 유효하다고 봐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효자는 철수와 영희 부부의 자식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판례 역시 “당사자 사이에 양친자 관계를 창설하려는 명백한 의사가 있고 기타 입양의 성립요건이 모두 구비된 경우에는 요식성을 갖춘 입양신고 대신 친생자 출생신고가 있다 하더라도 입양의 효력이 있다”라고 하여 같은 입장입니다(대법원 1977. 7. 26. 선고 77다492 전원합의체 판결). 다만, 위의 철수와 영희의 사례는 판례와 완전히 동일한 스토리가 아니고 편의상 단순화한 것이니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위의 사건 외에도 무효행위 전환의 사례로 언급되는 중 하나가 바로 속칭 ‘알박기’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최투자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투자가 가진 땅이 재건축사업의 대상 토지가 되었습니다. 재건축사업 같은 것은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검색해보시기 바랍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인 거죠. 


재건축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 만들어집니다. 통상 토지소유자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단체를 만드는 겁니다.  이런 조합은 법인으로 인정해 줍니다.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이 재건축사업 계획이 승인될 때 조건이, 사업의 대상이 되는 부지의 토지소유권을 착공 전까지 조합이 모두 확보하여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최투자는, “아, 조합에게 땅을 안 팔고 버티면 가격을 높게 부르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통칭 ‘알박기’라고 부릅니다.


조합 입장에서는 최투자의 땅을 사야 사업이 진행이 되는데, 최투자가 못 팔겠다고 버티고 있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돈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업이 아예 엎어지는 것보다는 낫거든요. 그래서 시세보다 아주 높은 가격에 최투자와 토지를 거래하고 말았습니다. 대충 예를 들어 20억원에 팔았다고 합시다.

거래는 끝나고 사업도 어떻게 진행이 잘 됐지만, 조합 입장에서는 열받죠? 그래서 최투자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합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기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폈습니다.

          

①최투자가 알박기를 해서 아주 비싸게 땅을 조합에게 판 것은 민법 제104조에서 말하는 ‘궁박’을 이용한 것에 해당한다. 따라서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하므로 이 매매계약은 무효다.

②무효긴 한데, 민법 제138조가 적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조합 입장에서는 이 땅을 어쨌거나 샀어야만 했고, 이런 저런 사정을 따져 보니 좀 더 낮은 가격이었다면 아마 조합과 최투자 모두 매매계약을 체결했었을 거라고 예상된다.

③원래 매매계약(A)은 20억원에 체결됐는데, 가정적 의사를 따져 보니 10억원에도 매매계약(B) 했을 거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A의 법률행위를 B의 법률행위로 전환할 수 있다. 감액된 금액에서 매매계약은 유효하다.


매우 단순하게 설명드렸습니다만, 대략적인 판례(대법원 2010. 7. 15., 선고, 2009다50308, 판결)의 입장입니다. 이 판례는 “불공정 법률행위에 대해서도 무효행위의 전환을 인정한 최초의 사례”라고 합니다(김준호, 2017). 학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은 판례이니, 자세한 내용은 실제 판결문을 검색해서 읽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다만, 이러한 판례의 태도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민법 제138조가 아니라 제137조의 일부무효 법리를 적용하여야 한다든지 하는 반대의견이 있는데요, 세부적인 논의를 여기서 모두 다룰 수는 없으니 참고문헌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최성경, 2017).


무효인 행위를 다른 행위로 전환하여 인정해 주는 것은 분명히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아무렇게 막 인정해 주면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법원에서는 무효행위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요건을 엄격히 따져 판시하고 있으며, ‘전환’ 자체가 인정된 사례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교과서에서는 무효행위의 전환을 인정할 수 있는 요건으로 ①무효인 법률행위가 있을 것, ②그 행위가 다른 유효한 법률행위의 요건을 갖추고 있을 것, ③당사자가 그 무효를 알았더라면 다른 법률행위를 하였을 것으로 인정될 것, 이렇게 3개를 보통 들고 있습니다(김준호, 2017).

*②에서의 ‘다른 유효한 법률행위’를 교과서에 따라서는 ‘대체행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백태승, 2021). 그리고 ③의 요건을 ‘전환의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법률행위가 무효인 것을 그 당시에 알았더라면, 무엇을 ‘의욕’하였을 것이냐의 의사로, 실제 있었던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가정적 의사라고 칭하기도 합니다(김용덕, 2019).


그렇다면 도대체 ‘그 당시에 알았더라면’ 그렇게 의도했을 거라는 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느냐? 이게 좀 모호할 수 있는데요, 우리 판례는 “한편 법률행위가 강행법규에 위반되어 무효가 되는 경우에 그 법률행위가 다른 법률행위의 요건을 구비하고 당사자 쌍방이 위와 같은 무효를 알았더라면 다른 법률행위를 하는 것을 의욕하였으리라고 인정될 때에는 민법 제138조에 따라 다른 법률행위로서 효력을 가진다. 이때 다른 법률행위를 하였을 것인지에 관한 당사자의 의사는 법률행위 당시에 무효임을 알았다면 의욕하였을 가정적 효과의사로서, 당사자가 법률행위 당시와 같은 구체적 사정 아래 있다고 상정하는 경우에 거래관행을 고려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결단하였을 바를 의미한다(대법원 2010. 7. 15. 선고 2009다50308 판결 등 참조). 이는 그 법률행위의 경위목적과 내용무효의 사유 및 강행법규의 입법취지 등을 두루 고려하여 판단할 것이나, 그 결과가 한쪽 당사자에게 일방적인 불이익을 주거나 거래관념과 형평에 반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16. 11. 18. 선고 2013다42236 전원합의체 판결). 그러니까 구체적 사정을 따져서, 거래관행, 신의칙 이런 것도 따지고 이것저것 다 검토해 보겠다는 거지요.


그런데 본질로 되돌아가서, 굳이 왜 이런 ‘전환’을 인정해 주는 걸까요? 굳이 복잡하게. 의외로 이유는 간단합니다. A라는 행위가 있는데 B라는 행위로 거의 비슷하게 대체될 수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B라는 행위를 굳이 하라고 하기보다 그냥 원래 A였던 거를 B로 전환해 주면, 서로 서로 다 좋다는 겁니다. 편하다는 거죠.


오늘은 무효인 법률행위의 전환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내일은 무효 행위의 추인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총칙3(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19, 446면(권순민).

김준호, 「민법강의(제23판)」, 법문사, 2017, 351-352면.

백태승, 「민법총칙(제7판)」(전자책), 집현재, 2021, 511면.

최성경, “사법 정책적 관점에서의 무효행위전환 제도- 대법원 판례의 동향을 중심으로-”, 「법과 정책연구」 제17집제1호, 2017, 233-235면.



19.11.26. 작성

22.12.13.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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