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조(점유로 인한 부동산소유권의 취득기간) ①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하는 자는 등기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
②부동산의 소유자로 등기한 자가 1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선의이며 과실없이 그 부동산을 점유한 때에는 소유권을 취득한다.
오늘부터 [소유권의 취득]이라는 새로운 절을 공부할 것인데요, 처음으로 나오는 내용이 바로 부동산의 점유취득시효에 관한 내용입니다. 매우 중요한 내용이므로, 열심히 말씀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민법총칙]에서 시효에 대하여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주로 알아보았던 것은 바로 '소멸시효' 였습니다. 즉 권리자가 권리행사를 할 수 있음에도 일정한 기간 이상 행사를 하지 않는다면, 그 권리를 소멸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공부할 것은 바로 '취득시효'입니다. 반대로 생각하시면 되는데, 취득시효란 일정한 사실 상태가 계속되면 권리를 '취득'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시효제도의 취지에 대해서는 [민법총칙]에서 공부한 내용을 복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공부한 '물건'에는 부동산이 있고, 또 동산이 있습니다. 제245조는 그중 '부동산'의 취득시효에 관한 규정입니다. 제1항에서는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한 사람은 '등기'함으로써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합니다. 즉 일정한 요건을 충족해서 점유를 오래 해버린 사람에게는 부동산을 꽁으로(?) 준다는 겁니다.
"와, 이게 말이 됩니까? 점유 좀 오래 한다고 부동산을 주면, 원래 부동산 주인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라고 어이없다는 반응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하나하나씩 뜯어보면 결코 이 요건을 충족하기가 쉽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이제 제1항에 대해 상세히 알아봅시다.
즉, 자주점유(소유자로서 점유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점유)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주점유의 개념에 대하여는 이미 공부하였으므로, 기억이 가물가물하신 분들은 제197조 부분을 복습하고 오시기 바랍니다. 다만, 자주점유는 민법 제197조에 따라 점유로부터 추정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달성하기 쉬운 요건이기는 합니다.
제197조(점유의 태양) ①점유자는 소유의 의사로 선의, 평온 및 공연하게 점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②선의의 점유자라도 본권에 관한 소에 패소한 때에는 그 소가 제기된 때로부터 악의의 점유자로 본다.
이 부분 역시 제197조 파트에서 공부한 적 있습니다. 평온은 법률상 용인할 수 없는 폭력이 동반되지 아니하는 것이고, 공연은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결국 폭력을 수반하여 점유를 하였거나 남몰래 점유를 해온 경우라면 이 요건은 달성할 수 없습니다. 다만, 평온·공연의 요건 역시 제197조에 따라서 추정되기 때문에 이 역시 아주 달성하기 어려운 요건까지는 아니겠지요.
자, 이제 달성하기 어려운 요건이 나왔습니다. 무려 20년입니다. "부동산을 꽁으로 준다는데, 20년 못 채울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꽤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내 땅이 있습니다. 근데 거기에 다른 누군가가 점유를 합니다. 단순히 땅을 빌려 쓰는 임차인은 아니겠지요? 왜냐하면 자주점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애초에 요건 달성이 안 되니까.
상식적으로 어느 땅 주인이 내 땅에 (임차인도 아닌) 남이 들어와서 20년 동안 점유하는 것을 방치하겠습니까. 또 요즘은 어지간한 일반인들도 모두 취득시효에 대해 대강 알고 있기 때문에, 만약 자기 부동산 소유권을 잃을 것 같으면 가차 없이 쫓아낼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몰래 20년 동안 점유를 해볼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렇게 되면 은비점유가 되기 때문에 역시 '공연'의 요건을 달성하지 못하게 됩니다. 애초에 점유취득시효 제도 자체가 공짜로 남의 땅 뺏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든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런 경우가 있기는 있느냐? 그런데 또 생각보다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토지, 땅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철수와 영희가 서로 이웃한 땅의 소유자라고 합시다. 철수는 아래 그림에서 보듯 자기 땅을 실제보다 넓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측량이 잘못되어서일 수도 있고,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옛날에는 측량이 부정확하고 땅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아 특히 이런 사례가 잦았습니다.
그래서 철수는 사실 영희의 땅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땅이라고 생각하여 거기에 건물을 짓고 소유하였습니다. 우리의 대법원은 "건물은 일반적으로 대지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건물의 소유자가 건물의 대지인 토지를 점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건물의 소유자가 현실적으로 건물이나 대지를 점유하지 않고 있더라도 건물의 소유를 위하여 대지를 점유한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하고 있으므로(대법원 2017. 1. 25., 선고, 2012다72469, 판결),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철수는 자연히 영희의 땅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영희 역시 땅의 경계를 정확히 몰라, 설마 남의 땅에 건물 지었겠냐 생각하였고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20년이 경과하게 되면, 철수는 이제 '20년간 점유'라는 요건을 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게 힘들기는 한데, 아예 달성 불가능한 요건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가 공부했던 제198조를 떠올려 보세요. 이 조문을 이용한다면, 20년간의 점유를 일일이 하루하루 다 증명할 필요 없이, 20년 간격의 두 시점에 점유한 사실만 증명한다면 '추정'의 효과를 받을 수 있게 되므로 한층 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게 되겠지요.
제198조(점유계속의 추정) 전후양시에 점유한 사실이 있는 때에는 그 점유는 계속한 것으로 추정한다.
자, 위의 철수와 영희의 사례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20년의 기간을 채운 철수는 이제 바로 영희의 땅(점유하고 있던 땅) 일부를 취득하게 되는 걸까요? 아직 아닙니다. 20년이 경과하였다는 사실만으로는 바로 철수가 소유권을 갖지 못합니다. 제245조제1항은 반드시 '등기'까지 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년의 기간을 채운 상태만으로는 철수에게 등기청구권(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이라는 채권적 권리가 발생한 것에 불과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등기청구권이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내가 이런 등기를 하려고 하는데 당신이 협력해 주어야만 합니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소유권을 이전하려면 소유권이전등기를 하여야 하는데, 위의 사례에서 철수는 영희에게 "나는 사실 당신의 땅이었던 곳을 무려 20년 동안 점유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시효가 완성되었고, 이에 당신에게서 내게로 땅의 소유권을 이전하려는 등기를 하려고 하니, 이에 응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철수를 (권리가 있다고 하여) 등기청구권자라고 하고, 영희는 (등기에 응하여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하여) 등기의무자라고 합니다. 이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와 같아, 위에서는 '채권적 권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소유권이전등기의 경우 등기청구권자와 등기의무자가 공동 신청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철수 입장에서는 영희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여기서 단순화를 위해 분필과 같은 문제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러면 영희가 소유권이전등기를 안 해주면 되지 않습니까? 영희 입장에서는 해줄 이유가 없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데, 안됩니다. 이게 영희가 해줘도 되고 안 해줘도 되는 게 아니에요. 영희는 등기'의무자'입니다. 의무란 말이지요. 철수가 등기청구권을 행사하면 영희는 등기의무를 이행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지요. 의문을 가진 것처럼 저런 상황에서 "아니, 정말 당신이 20년 동안 내 땅을 자주점유로 평온·공연하게 점유하였단 말인가요? 대단하군요! 당신은 시효완성한 사람이니, 마땅히 제가 소유권이전등기를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100명 중에 1명도 안될 것입니다. 보통은 "뭐라고? 안돼, 난 못해줘." 이렇게 되고요, 소송으로 가게 됩니다. 바로 소유권이전등기청구소송이 그것입니다. 철수가 이 소송에서 승리하게 되면, 아래의 '부동산등기법' 제23조제4항에 따라 철수는 영희의 협력 없이도 단독으로 등기를 신청할 수 있게 되고, 그리하여 완벽한 땅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부동산등기법
제23조(등기신청인) ① 등기는 법률에 다른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등기권리자(登記權利者)와 등기의무자(登記義務者)가 공동으로 신청한다.
(생략)
④ 판결에 의한 등기는 승소한 등기권리자 또는 등기의무자가 단독으로 신청한다.
(이하 생략)
소유권이전등기청구소송의 소장 예시를 아래와 같이 첨부하니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물론, 아래 소장의 경우 취득시효가 예비적 청구취지에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참고하시기에는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점유취득시효에 근거한 부동산 소유권의 취득 요건을 알아보았는데요, 이건 제245조제1항에 관한 것입니다. 아직 제2항이 남았습니다. 제2항은 조금 내용이 다릅니다. 여기서는 부동산의 소유자로 '이미 등기한' 사람이, '10년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여 점유하게 되면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뭔가 제1항보다 더 편해 보이는데, 제2항은 무슨 의미인 걸까요? 제2항에 따라 소유권을 취득하는 것을 등기부취득시효에 의한 소유권 취득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김투자라는 사람이 투자를 위해 어떤 땅을 사들였다고 합시다. 매매계약을 한 겁니다. 그래서 잔금도 치르고, 소유권이전등기도 받았습니다. 이제 부동산 등기를 떼어 보면, 소유자는 '김투자'라고 명확히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김투자가 맺었던 매매계약이 모종의 사유로 사실 무효였던 것입니다. 무효의 사유는 우리가 공부했던 불공정한 법률행위 등 여러 가지가 될 수 있겠죠. 어쨌건 중요한 건 계약이 무효이기 때문에 김투자는 적법한 땅 주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즉 '김투자' 명의의 등기는 무효이고 실제 땅 주인은 원래 땅 주인인데, 등기부상으로만 '김투자'가 주인인 것처럼 표기되어 있는 상태인 겁니다.
제245조제2항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원칙대로라면 주인이 될 수 없는 김투자이지만, 만약 1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과실 없이 그 땅을 점유하였다면 우리 민법에서는 그가 실제로도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이는 특히 '등기부'에 자기 이름까지 등재되어 있는 상태에서 점유를 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김용담, 2011). 그러면 등기부취득시효로 부동산을 취득하기 위한 요건에 대해 상세히 알아 봅시다. 글이 길어지게 되네요.
위 점유취득시효 파트에서와 동일합니다.
위 점유취득시효 파트에서와 동일합니다.
오, 새로운 게 나왔습니다. 이 요건은 위에는 없었던 내용입니다. 그래서 *별표도 위에 해뒀습니다. '선의'는 이미 공부했던 터라 눈치채셨겠지만, '점유자가 진정한 소유자라고 믿는 것'(또는 '점유자가 권한을 가진 자로부터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김용담, 위의 글; 758면). 즉, 상황을 잘 모르고 순수하게 믿는다는 것이지요.
'무과실'이란, 방금 말한 선의로서의 믿음에 과실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 매매계약을 했는데, 땅을 팔겠다는 사람이 사실 진짜 땅 주인이 아니었다고 해봅시다. 땅 주인은 생각도 없는데 뜬금없이 제3자가 그 땅을 팔아버리겠다는 겁니다. 등기부만 확인했어도 땅 주인이 다른 사람인 건 알 수 있었는데, 그것도 확인을 하지 않고 덜컥 땅을 (잘못된 사람으로부터) 사들였다고 해봅시다.
이런 경우에는 땅을 산 사람에게 마땅히 과실이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당연히 조사해야 할 사항도 체크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면 여기서 '무과실'의 요건을 달성할 수 없게 되므로, 등기부취득시효 완성을 통한 부동산 획득의 꿈은 날아갔다고 봐야 합니다.
참고로, 우리가 제197조에서 보았듯이 점유에서 선의가 추정되기 때문에, 사실상 점유자는 '무과실' 정도만 입증하면 되어 입증의 부담이 상당히 줄어든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위 점유취득시효의 경우와는 다르게 10년으로 기간이 더 짧습니다. 우리의 학설은 점유가 10년일 뿐만 아니라 소유권등기가 (위의 사례에서는 '김투자'의 명의로) 등기부에 기록된 기간 자체도 10년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김준호, 2017).
이것 역시 점유취득시효와는 다른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이미 등기가 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또 등기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즉 위의 사례에서 '김투자'는 시효가 완성되는 순간 바로 그 땅의 소유권을 취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점유취득시효와 등기부취득시효를 통한 부동산 소유권의 취득에 대하여 알아보았는데요,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어 언급하고 넘어갈까 합니다.
점유취득시효의 요건 달성이 까다롭다고는 말씀드렸지만, 현실에서는 워낙 민감한 문제이다 보니까 이와 관련된 소송이 굉장히 많고, 사례도 매우 다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제245조 딸랑 1개만으로는 그 모든 사례를 규율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학계 일각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우리의 대법원이 축적하여 온 판례를 유형화하여 5개의 원칙*으로 정리하였고,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판례 5원칙"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서, 이런 방식의 유형화가 가능한지, 적절한지 등에 관해서는 논쟁이 있습니다. 비판적인 견해도 많습니다(강구욱, 2013).
*학자 중에서는 '원칙'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고 보아 '5유형' 정도의 표현이 적절하다고 제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이기용, 2006).
그러나 여기서 일단 설명을 하고 넘어가는 것이 '점유취득시효'라는 제도를 깊게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를 드리려고 합니다. 만약 내용이 어렵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위에 설명드린 내용까지만 읽으시고 넘어가셔도 괜찮습니다. 먼저 점유취득시효에 관한 "판례 5원칙"을 강구욱(2014)을 인용하여 나열하여 보고, 하나씩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제1원칙: 부동산에 대한 취득시효가 완성된 경우, 점유자는 원 소유자에 대하여 등기 없이도 그 부동산의 시효취득을 주장하여 대항할 수 있다.
제2원칙: 취득시효가 진행되던 중에 등기부상의 소유자가 변경된 경우, 점유자는 취득시효 완성 당시의 등기부상의 소유자에 대하여 등기 없이도 취득시효 완성의 효과를 주장할 수 있다.
제3원칙: 취득시효가 완성된 경우라고 할지라도, 그에 따른 등기를 하지 않고 있는 사이에, 제3자가 그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 버리는 경우, 점유자는 그 제3자에게 취득시효의 효과를 주장하여 대항할 수 없다.
제4원칙: 취득시효를 주장하는 점유자는 실제로 점유를 개시한 때를 취득시효의 기산점으로 삼아야 하고, 그 기산점을 임의로 선택할 수 없다. 다만, 점유기간 중 계속하여 등기명의자의 변경이 없는 경우에는 그 점유개시의 기산일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다.
제5원칙: 제3원칙이 적용되는 사례라고 할지라도, 당초의 점유자가 계속 점유를 (그 이후로도) 하고, 소유자가 변동된 시점을 기산점으로 삼아도 다시 취득시효의 점유기간이 경과한 경우라면, 점유자는 다시금 취득시효의 완성을 주장할 수 있다.
제1원칙: 부동산에 대한 취득시효가 완성된 경우, 점유자는 원 소유자에 대하여 등기 없이도 그 부동산의 시효취득을 주장하여 대항할 수 있다.
제1원칙을 봅시다. 이건 위에서 설명한 내용과 동일합니다. 쉽게 말해 시효완성한 사람(위의 사례에서는 20년간 점유를 했던 철수)은 등기가 아직 안 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진정한 소유자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효취득을 '주장'하여 대항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제1원칙이 소유권을 아직 취득했다는 뜻은 아니니 주의하세요. 주장을 할 수 있고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은, 원래 땅 주인(위의 사례에서는 영희)이 시효를 완성한 철수를 함부로 쫓아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2원칙: 취득시효가 진행되던 중에 등기부상의 소유자가 변경된 경우, 점유자는 취득시효 완성 당시의 등기부상의 소유자에 대하여 등기 없이도 취득시효 완성의 효과를 주장할 수 있다.
제2원칙을 봅시다. 자, 위의 사례를 계속 이용해 볼까요? 철수가 영희의 땅을 침범해서 점유를 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철수 입장에서는 20년만 점유하면 되는데, 문제는 10년이 경과한 시점에 영희가 그 땅을 친구인 김절친에게 팔아 버렸다고 합시다(소유권이전등기도 [영희→김절친]으로 완료). 그럼 어떻게 되는 걸까요? 철수는 다시 20년을 기다려서, 합계 총 30년을 점유해야 땅을 얻을 수 있는 걸까요?
아닙니다. 일단, 시효는 중단이 안됩니다. 중단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이 민법 어디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제2원칙에 의하면, 땅의 점유자인 철수는 등기부상 소유자가 변경된 거랑 상관없이 점유를 계속해서, 추가로 10년만 더 점유하면(총합 20년) 시효를 완성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등기청구권을 행사할 때에는 취득시효가 완성된 시점에서의 등기부상 소유자('김절친')에게 행사하여야 합니다. 영희에게 하면 안 됩니다. 제2원칙도 크게 어려운 내용은 아닙니다.
제3원칙: 취득시효가 완성된 경우라고 할지라도, 그에 따른 등기를 하지 않고 있는 사이에, 제3자가 그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 버리는 경우, 점유자는 그 제3자에게 취득시효의 효과를 주장하여 대항할 수 없다.
제3원칙을 봅시다. 철수가 열심히 점유를 해서 결국 20년을 채웠다고 합시다. 철수는 신났죠. "이제 이 땅은 공식적으로 내 것이 될 거야! 자, 이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를 영희에게 해볼까?" 그런데 (시효가 완성되고 나서) 소유권이전등기가 완료되기 전에, 영희가 땅을 김절친에게 팔아 버렸습니다.
"그런 게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죠?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바로 점유자가 소유권을 취득하는 게 아니라고요. 시효가 완성되었지만 아직 등기이전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현재 소유자는 영희이고요, 이런 상황을 모르는 김절친은 영희에게 돈을 주고 적법하게 땅을 사들인 겁니다. 제2원칙과는 다른 상황입니다. 제2원칙에서는 [시효완성 전]에 김절친에게 땅을 판 거고, 여기 제3원칙에서는 [시효완성 후 소유권이전등기 전]에 김절친에게 땅을 판 겁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중요한 사실은, 위에서 공부하였듯이 철수가 영희에 대하여 갖고 있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은 채권적 권리로서 오직 영희에게만 주장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것입니다. 네, 다시 말해 철수의 청구권은 영희에게나 주장할 수 있지 김절친에게는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고, 현재 부동산의 소유자는 영희가 아닌 '김절친'이므로... 철수는 땅을 취득할 수 없게 됩니다.
물론 결론적으로 영희는 철수에 대하여 가진 채무(소유권이전등기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므로, 채무불이행의 책임을 지게 되기는 합니다. 또는 만약 영희가 '철수가 시효를 완성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고의적으로 철수에게 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김절친과 서로 짜고 땅을 넘긴 것이라면, 그 계약이 반사회적 법률행위라서 무효라고 주장해 봄직도 합니다.
판례 역시 "부동산 소유자가 자신의 부동산에 대하여 취득시효가 완성된 사실을 알고 이를 제3자에게 처분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겨줌으로써 취득시효 완성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의무를 이행불능에 빠뜨려 시효취득을 주장하는 자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불법행위를 구성하며, 이 경우 부동산을 취득한 제3자가 부동산 소유자의 이와 같은 불법행위에 적극 가담하였다면 이는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로서 무효이다."라고 하고는 있습니다(대법원 1995. 6. 30., 선고, 94다52416, 판결). 근데 현실에서는 저 놈(?)들이 서로 짜고 쳤다는 걸 입증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희가 철수의 시효완성에 대한 사실을 애초에 잘 몰랐고(충분히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김절친도 그냥 평범한 매수인이라면 철수는 결국 20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철수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일반적으로는 이런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서 철수와 같은 사람들은 시효완성이 되자마자 바로 소유권이전등기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소송 중에 땅을 함부로 못 팔게 처분금지가처분까지 함께 신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4원칙: 취득시효를 주장하는 점유자는 실제로 점유를 개시한 때를 취득시효의 기산점으로 삼아야 하고, 그 기산점을 임의로 선택할 수 없다. 다만, 점유기간 중 계속하여 등기명의자의 변경이 없는 경우에는 그 점유개시의 기산일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다.
제4원칙을 봅시다. 어찌 보면 상식적으로 당연한 말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제1원칙부터 제3원칙까지 공부했다면 감이 오시겠지만, [언제 점유를 시작했는가](기산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제4원칙이 없다고 해봅시다. 기산점을 점유자(철수)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고 해봅시다. 원래는 2000년 1월 1일에 철수가 점유를 시작했으므로, 2020년 1월 1일에 시효가 완성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희는 2020년 1월 3일에 김절친에게 땅을 팔았다고 해봅시다. 위에서 공부한 제3원칙에 따르면, 시효가 완성되었어도 철수는 아직 등기를 못해서 완전한 소유자가 아니므로 이러한 경우 김절친에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철수가 기산점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면, 철수는 점유가 2000년 "2월 1일"에 시작했다고 주장해 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시효완성은 2020년 2월 1일이 되므로, 영희→김절친에게의 부동산 매매는 [시효완성 후]가 아니라 [시효완성 전]에 해버린 것이 됩니다. 즉, 기산점이 바뀜에 따라 제3원칙이 아니라 제2원칙이 적용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철수는 따라서 2020년 2월 1일에 시효완성을 근거로 '김절친'에게 소유권이전등기청구를 해버릴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기산점을 자기 마음대로,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되겠지요. 그래서 제4원칙은 기산점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하고 반드시 실제로 점유를 시작한 시점을 기산점으로 하도록 강제한 것입니다. 물론, 등기부상 소유자가 계속 바뀌지 않은 경우라면 방금 말씀드린 것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일이 없게 되니까, 그런 경우에는 점유개시의 기산일을 철수 마음대로 정해도 된다고 합니다(제4원칙의 단서).
제5원칙: 제3원칙이 적용되는 사례라고 할지라도, 당초의 점유자가 계속 점유를 (그 이후로도) 하고, 소유자가 변동된 시점을 기산점으로 삼아도 다시 취득시효의 점유기간이 경과한 경우라면, 점유자는 다시금 취득시효의 완성을 주장할 수 있다.
제5원칙을 봅시다. 이건 제3원칙의 사례에 대한 심화 버전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제3원칙의 사례에서 영희는 김절친에게 땅을 팔았는데요, 철수는 눈물을 머금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잉, 김절친이 땅을 사긴 했는데 그 땅을 놀리기만 하고, 철수더러 나가라 마라 얘기가 아예 없는 겁니다.
철수는 그냥 그 땅을 계속 점유합니다(편의상 자주점유, 평온, 공연과 같은 요건은 충족된다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또 20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결국 철수는 총 40년의 기간을 점유를 한 게 됩니다. 음... 철수가 굉장히 장수를 했다고 역시 가정하겠습니다.
제5원칙은, 제3원칙의 사례라고 할지라도 땅이 판매되어 소유자가 (영희에게서 김절친으로) 바뀐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다시 20년의 세월 동안 점유가 계속되었다면, 점유자는 새롭게 취득시효의 완성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 길을 돌아 40년의 세월을 버텨 온 철수는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5원칙이 있는 이유는, 만약 새롭게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되는 것까지 모조리 안된다고 해버리면 그 땅은 영원히 시효취득이 안 되는 땅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제도의 취지 자체가 훼손되는 것이겠지요. 판례 역시 "만약 이와 달리 당초의 점유자가 제3취득자의 등기 후에도 계속 점유함으로써 다시 취득기간이 완성되었는데도 시효취득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일단 취득시효기간이 경과한 후 제3자명의로 이전등기된 부동산은 새로운 권원에 의한 점유가 없는 한 영구히 시효취득의 대상이 아니게 되고 시효기간 경과 후의 제3취득자는 시효취득의 대상이 되지 아니하는 부동산을 소유하게 됨으로써 보통의 소유자보다도 더 강력한 보호를 받게 되며, 이경우에는 취득시효제도가 사실상 부인되는 결과가 초래되어 부당하다 할 것이다."라고 하여 같은 입장입니다(대법원 1994. 3. 22. 선고 93다46360 전원합의체 판결).
오늘은 점유취득시효와 등기부취득시효, 그리고 심화학습으로 판례가 정립한 5개의 원칙까지 논의하였습니다. 엄청나게 글이 길어졌는데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어서 제 능력 안에서는 어떻게 짧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을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의 내용은 점유로부터의 추정이나 자주점유(소유의 의사), 선의, 평온, 공연, 전후양시의 추정 등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들이 망라되어 있는, 일종의 종합 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으므로 꼼꼼히 읽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내일은 오늘 것보다는 좀 더 짧은 내용이 될 듯합니다. 바로 점유로 인한 동산의 취득입니다.
*참고문헌
강구욱, 「취득시효에 관한 판례 5원칙 아무런 근거 없다」, 법률신문, 2013. 9. 12., https://m.lawtimes.co.kr/Content/Article?serial=138806, 2020. 3. 18. 확인
강구욱, <부동산 취득시효 관련 판례 5원칙에 관한 연구>, 한국민사소송법학회, 민사소송 제18권제1호, 2014. 5., 444-445면.
김용담, 주석민법[물권(1)], 한국사법행정학회, 2011, 689면.
김준호, 민법강의, 법문사, 제23판, 2017, 624면.
대한법률구조공단 법률서식, https://www.klac.or.kr/legalinfo/legalFrm.do, 2020. 3. 17. 확인
이기용, <점유취득시효에 관한 판례의 5유형과 명의신탁 등기에의 적용>, 대한변호사협회, 인권과 정의 제357호, 2006, 18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