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5조(물건의 총유) ①법인이 아닌 사단의 사원이 집합체로서 물건을 소유할 때에는 총유로 한다.
②총유에 관하여는 사단의 정관 기타 계약에 의하는 외에 다음 2조의 규정에 의한다.
오늘부터는 물건의 총유를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예전에 민법의 총칙 파트에서 '법인'에 대해서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이 잘 안 나시는 분들은 민법 제31조부터 법인에 관련된 조문들을 리마인드 차원에서 한번 읽어 보세요.
그런데 사람이 모여서 만든 단체가 법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총유'를 공부하기 전에 알아 두어야 할 중요한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법인 아닌 사단'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모여 만든 단체로서 '사단'의 실질은 갖추고 있지만, 법인으로서의 정식 설립등기는 받지 않은 단체가 있는데 이를 '법인 아닌 사단' 혹은 '비법인사단'이라고 합니다(여기서는 '비법인사단'으로 통일하여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이 단어는 민법 제275조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그러면 비법인사단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비법인사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친구 2명이서 떡볶이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고 해서 그 순간 비법인사단이라고 인정해 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비법인사단의 성립요건에 대해서 학설이 여러 가지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는 다음의 2가지 요건은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송오식, 2013).
단체의 의사를 결정하고, 대외적으로 그 의사를 표시하고 대표행위를 하려면 기관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의사결정기관이나 대표자 같은 기관을 단체로서 갖추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대표자는 그냥 마음대로 친구들끼리 뽑고, 총회도 없고, 재산도 없으면 그건 그냥 친구들 몇 명이 모인 카톡 단체방과 다를 바가 없겠지요. 비법인사단이 되기 위하여는 정관과 같은 내부 규칙에 의해서 단체 운영에 필요한 중요한 사항들이 미리 정해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 이제 비법인사단의 개념과 성립요건에 대해 알아보았으니, 비법인사단은 과연 어떤 특징을 갖는지 알아볼까요? 이 내용을 알아야 우리가 비로소 '총유'를 공부하기 위한 기초를 다졌다고 할 수 있으므로, 피곤하시더라도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비법인사단의 경우, 법인이 아니면서도 사람들이 모여 '단체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법인이나 조합과는 다른 특수성을 보이는데요, 우리 법제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법적 지위를 인정받고 있습니다(이동선, 2019).
우리는 민법 총칙에서 '자연인'과 '법인'에 대해 공부하면서, 자연인과 다르게 특별히 법인격을 부여하는 존재로서 법인을 공부하였습니다. 법인격을 준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 절차와 요건 역시 까다롭다고 했었습니다.
이걸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법인 아닌 사단이라면 법인격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됩니다. 따라서, 비법인사단은 법인과 달리 권리능력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법인사단을 권리능력 없는 사단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 지점에서 우리는 '총유'라는 제도가 왜 존재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비법인사단은 권리능력이 없으니까,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땅이 있어도 그 땅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소유권의 주체가 될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비법인사단이 있고, 이들이 재산을 실제로 관리하고 있는데 이런 현실을 깡그리 무시해 버리기는 힘들지요. 그래서 우리 민법은 '총유'라는 공동소유의 형태를 만들어 냄으로써 비법인사단의 법률관계를 규율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비법인사단도 권리능력을 인정할 필요가 있으며, 민법에 따른 총유 제도는 사문화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학계의 주장도 있으므로(임상혁, 2013), 이러한 비판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은 관련 문헌을 찾아 참고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위에서 권리능력은 없다고 했는데 이제는 당사자능력은 있다고 합니다. 아마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실 텐데 민사소송법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개념이므로 어색한 것은 당연합니다. 쉽게만 생각하면, 당사자능력이란, 소송에 따른 '당사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당사자능력이 없는 자를 상대로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으므로, 소송법상으로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 민사소송법은 원칙적으로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민법에 따라 당사자능력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민사소송법 제51조). 그러니까 사실 민법상 권리능력이 인정되면 자연스레 당사자능력도 인정이 됩니다. 피와 살을 가진 우리 자연인들, 그리고 법인들은 권리능력이 인정되니까 당사자능력도 당연히 인정이 되는 것입니다.
민사소송법
제51조(당사자능력ㆍ소송능력 등에 대한 원칙) 당사자능력(當事者能力), 소송능력(訴訟能力), 소송무능력자(訴訟無能力者)의 법정대리와 소송행위에 필요한 권한의 수여는 이 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민법, 그 밖의 법률에 따른다.
"어라, 그러면 권리능력이 없는 비법인사단은 당연히 당사자능력도 없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실제로 비법인사단이 현실에 넘쳐나고, 이들이 현실적으로는 분명 땅도 갖고 있고 돈도 갖고 있는데 이런 단체와 법적인 분쟁이 발생했을 때 그 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조차 없다면? 실제로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우리의 민사소송법은, 비록 비법인사단의 권리능력은 인정할 수 없더라도 예외적으로 당사자능력은 인정할 수 있도록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민사소송법 제52조). 따라서 아래 조문에 의하면 비법인사단도 대표자나 관리인이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가 될 수 있게 됩니다.
민사소송법
제52조(법인이 아닌 사단 등의 당사자능력) 법인이 아닌 사단이나 재단은 대표자 또는 관리인이 있는 경우에는 그 사단이나 재단의 이름으로 당사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우리의 부동산등기법은 비법인사단이 직접 그 단체의 명의로 부동산등기도 할 수 있다고 하고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부동산등기법
제26조(법인 아닌 사단 등의 등기신청) ① 종중(宗中), 문중(門中), 그 밖에 대표자나 관리인이 있는 법인 아닌 사단(社團)이나 재단(財團)에 속하는 부동산의 등기에 관하여는 그 사단이나 재단을 등기권리자 또는 등기의무자로 한다.
② 제1항의 등기는 그 사단이나 재단의 명의로 그 대표자나 관리인이 신청한다.
비법인사단에 대해서는 민법상 [총유] 파트에서 고작 3개의 조문으로 언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더 상세한 규율이 필요하지요. 하지만 비법인사단도 결국 사람이 모여 만든 단체이고, '사단'이기 때문에 법인격을 전제로 하지 아니한 규정에 대해서는 '사단법인'에 대한 규정을 유추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원 자격의 득실이나 총회의 운영, 대표의 방법 등 여러 다른 법률관계에서는 사단법인에 대한 규정을 유추해서 하면 됩니다. 물건의 소유관계에서는 총유 파트의 규정을 적용하면 되지요.
지금까지 비법인사단의 기초적인 지식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럼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비법인사단의 예시는 무엇이 있을까요?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종중이나 교회, 재건축조합 등입니다. '종중'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바로 [A 김 씨 B파 문중] 같은 것인데요, 종중의 경우 정식의 법인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나 나름대로 오랜 세월에 걸쳐 구축한 규약이 있고, 단체로서의 성격이 강하며 실제로 물건이나 토지를 관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의 경우도 분명히 재산이 있습니다.
제275조제1항은 바로 비법인사단이 이러한 '총유'의 형태로 물건을 공동 소유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즉, 총유는 법인 아닌 사단이 그 스스로는 어떠한 물건을 단독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권리능력이 없으므로) 단체의 구성원 모두가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차원으로 만들어진 제도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부동산 같은 경우에는 부동산등기법상 비법인사단의 대표자가 등기신청을 해서 사단 이름으로 (대표자 이름과 함께) 등기부에 기록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법인의 단독 소유하고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기는 합니다. 뭐 법적인 성격은 '총유'라는 것이 중요하지요.
이제 제275조제2항을 보겠습니다. 제2항에서는 총유에 관하여 우선은 비법인사단의 정관 등 규약에 정한 사항이 있을 때에는 그에 따르고, 정함이 없을 때에 비로소 제276조와 제277조를 적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민법상 총유에 관한 규정들은 일종의 보충적인 규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사단'과 '조합'은 다릅니다. 사단이건 조합이건 사람이 모여서 만들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요. 보통 비교하기를, '조합'은 각각 조합원의 개성이 중시되고 단체성이 약한 반면(철수와 영희가 음식점을 공동으로 경영한다면, 두 사람의 개성은 매우 중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단'은 모임 그 자체로서의 단체성이 강하고 각각의 구성원의 개성이 상대적으로 덜 중시되는 집단이라고들 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모여서 만든 결합체에는 사단과 조합이 있고, 그중 사단은 '사단법인'과 '법인이 아닌 사단(비법인사단)'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단체성'이 더 강하고 약한지는 어떻게 판단할까요? 이에 대하여 우리의 판례는 "민법상의 조합과 법인격은 없으나 사단성이 인정되는 비법인사단을 구별함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그 단체성의 강약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는바, 조합은 2인 이상이 상호간에 금전 기타 재산 또는 노무를 출자하여 공동사업을 경영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관계에 의하여 성립하므로(민법 제703조) 어느 정도 단체성에서 오는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지만 구성원의 개인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인적 결합체인 데 비하여 비법인사단은 구성원의 개인성과는 별개로 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독자적 존재로서의 단체적 조직을 가지는 특성이 있다 하겠는데 민법상 조합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단체라 하더라도 고유의 목적을 가지고 사단적 성격을 가지는 규약을 만들어 이에 근거하여 의사결정기관 및 집행기관인 대표자를 두는 등의 조직을 갖추고 있고, 기관의 의결이나 업무집행방법이 다수결의 원칙에 의하여 행해지며, 구성원의 가입, 탈퇴 등으로 인한 변경에 관계없이 단체 그 자체가 존속되고, 그 조직에 의하여 대표의 방법, 총회나 이사회 등의 운영, 자본의 구성, 재산의 관리 기타 단체로서의 주요사항이 확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비법인사단으로서의 실체를 가진다고 할 것이다."라고 합니다(대법원 1992. 7. 10., 선고, 92다2431, 판결).
즉 판례에 의한다면 조합과 비법인사단을 구별하는 기준으로는 의사결정기관이나 집행기관 같은 조직을 갖추고 있는지(조직성), 정관과 같은 고유의 규칙을 만들고 있는지, 구성원의 가입과 탈퇴가 얼마나 제약을 받는지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비법인사단과 총유의 개념에 대해서 조금은 길게 알아보았습니다. 나름대로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내용이 길어졌는데요, 내일은 총유물의 관리와 처분 등에 대해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송오식, <법인 아닌 사단의 법적 지위와 규율>, 동아대학교 법학연구소, 동아법학(58), 2013. 2., 479면.
이동선, <법인 아닌 사단의 공시방안에 관한 연구>,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총서, 2019. 12., 20-27면.
임상혁, <법인이 아닌 사단의 민사법상 지위에 관한 고찰>,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서울대학교 법학 54권3호, 2013. 9., 199-20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