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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제283조, "지상권자의 갱신청구권, 매수청구권"

by 법과의 만남
제283조(지상권자의 갱신청구권, 매수청구권) ①지상권이 소멸한 경우에 건물 기타 공작물이나 수목이 현존한 때에는 지상권자는 계약의 갱신을 청구할 수 있다.
②지상권설정자가 계약의 갱신을 원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지상권자는 상당한 가액으로 전항의 공작물이나 수목의 매수를 청구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계약을 '갱신'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갱신이란, 존속기간이 끝나 소멸하게 될 계약을 다시 존속시키기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상권 설정계약 역시 계약의 일종이므로, 역시 갱신이 가능합니다. 사실 당사자(지상권 설정자, 지상권자) 간에 합의가 잘 이루어져 갱신을 하기로 한다면 제일 깔끔하고 좋겠지만, 서로 합의가 안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땅이 있습니다. 영희는 철수의 땅 위에 자기 소유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철수는 영희와 지상권 설정계약을 맺었고, 영희는 지료로 매달 1천만원을 철수에게 납부하여 왔으며 지상권의 존속기간은 30년이라고 합시다.


계약 이후 30년이 지났습니다. 계약 종료가 다가오자 영희는 철수에게 "계약을 갱신하는 게 어때?" 이렇게 제안합니다. 그러나 철수는 그동안 영희가 하는 짓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계약을 갱신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영희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러면 영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283조제1항에 답이 있습니다. 제1항에서는 지상권이 소멸하는 경우에 건물, 공작물, 수목 등이 여전히 땅 위에 존재하고 있으면, 기존의 지상권자는 종전 계약의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때의 갱신청구권은 지상권이 소멸하자마자 바로 행사하여야 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계약 끝나고 5년쯤 지나서 갑자기, "갱신청구권 행사할래." 이러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으니까요. 권리 행사가 지체되면 갱신청구권은 소멸해 버립니다.


우리의 판례 역시, "지상권갱신청구권의 행사는 지상권의 존속기간 만료 후 지체 없이 하여야 하므로 피고가 지상권의 기간만료 후 상당한 기간 내에 이를 행사하였다는 점에 대하여는 아무런 주장 입증이 없고 단지 기간만료 후 4년 이상 경과한 이 사건 소송절차 진행중에 행사한 것에 불과한 피고의 갱신청구는 어차피 그 효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피고가 적법하게 갱신청구권을 행사하였다 하더라도 갱신의 효력은 토지소유자인 원고들이 이에 응하여 갱신의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비로소 생기는 것이지 행사로 인하여 바로 생기는 것은 아니므로, 원심의 위와 같은 잘못은 판결의 결과에 영향이 없다 할 것이다."라고 하여 같은 입장입니다(대법원 1995. 4. 11., 선고, 94다39925, 판결).


"아니, 내 땅 남에게 빌려줬는데 자기 마음대로 계약을 갱신할 수 있다고요? 공산주의 국가입니까?"

이렇게 분노하는 분이 충분히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일단 두 가지 포인트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모든 지상권 계약 종료에 대해서 갱신청구권이 전부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학계에서는 제283조제1항의 갱신청구권은 오직 '기간 만료'로 인해 계약이 소멸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예를 들어 지상권자가 땅세를 오랜 기간 내지 않는다거나, 다른 계약사항 위반 등으로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에는 제283조제1항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갱신청구권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또 지상권을 포기하거나 지상권이 소멸시효 등으로 소멸하는 경우에도 제283조제1항의 갱신청구권은 인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는 내용입니다.


둘째, 갱신청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지상권 설정자가 그걸 100%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거절할 수도 있는 거면 굳이 왜 민법에 정해둔 겁니까? 그냥 갱신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잖아요."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 다른 수단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게 바로 제283조제2항입니다. 영희는 자신의 갱신청구권이 철수에게 거절당하였을 때, 제2항에 따라 '상당한 가액으로' 땅 위에 있는 지상물을 철수가 사들일 것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매수청구권이라고 합니다.




결국 정리하자면 영희는 지상권의 존속기간이 끝난 경우 "계약 갱신하자."라고 말할 수 있고(제1항에 따른 갱신청구권), 철수가 그 제안을 거절하는 경우 "그럼 어차피 네 땅 위에서 건물 못 굴릴 거, 내 건물 네가 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제2항에 따른 매수청구권). 헷갈릴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똑같이 '청구권'이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제1항에 따른 (갱신)청구권은 거절할 수 있는 것인 반면, 제2항에 따른 (매수)청구권은 거절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런 차이점은 제1항에 따른 '갱신청구권'은 형성권이 아닌 반면 제2항에 따른 '매수청구권'은 형성권에 해당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전에 '형성권'의 개념에 대해서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이 잘 안 나시는 분들은 [민법총칙] 편의 제162조 파트를 복습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이때 형성권이란 그 권리를 가진 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만으로 권리의 변동을 가져오는 권리라고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미성년자가 계약을 했던 것을 취소하는 것과 같은 취소권이 있고요, 우리가 이미 공부했던 공유물분할청구권(제268조)도 형성권에 속한다고 했던 바 있습니다(해당 조문 파트 참조).

제268조(공유물의 분할청구) ①공유자는 공유물의 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5년내의 기간으로 분할하지 아니할 것을 약정할 수 있다.
②전항의 계약을 갱신한 때에는 그 기간은 갱신한 날로부터 5년을 넘지 못한다.
③전2항의 규정은 제215조, 제239조의 공유물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이처럼 실제로 법조문에 표현상 '청구권'이라고 해놓고도 실질적인 의미는 '형성권'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조문 공부를 할 때 주의하셔야 합니다. 간판은 '분식집'으로 걸려 있지만 실질은 '삼겹살집'으로 운영되는 것과 같습니다. 간판과 실제 영업을 항상 맞춰 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법조문이 다 그렇게 친절하게 쓰여 있는 것은 아니므로 공부하는 사람이 거기에 맞추는 수밖에 없는 점 양해 바랍니다.


어쨌거나 철수는 제1항을 거쳐 제2항까지 넘어와 매수청구권을 행사한 영희를 더 이상 쳐낼 수 없게 됩니다. 영희의 매수청구권 행사에 따라 철수는 영희의 건물(지상물)을 상당한 가액에 사들여야 하고, 이러한 상황을 어려운 표현으로는 '영희는 철수에 대한 대금청구권을 갖게 되고, 철수는 영희의 건물에 대한 소유권이전청구권을 갖게 된다'라고 합니다(김준호, 2017).


"그러면 영희가 철수에게 가격을 맘대로 불러서 건물을 강제로 사게 만들 수 있는 겁니까? 남는 장사네요."

그건 아닙니다. 당연히 민법을 만든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제283조제2항에서는 '상당한 가액'으로 지상물을 매수할 것을 청구할 수 있도록 정해 둔 것입니다. 물론 '상당한 가액'이라는 것이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어서 판단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정리하자면, 형성권인 매수청구권의 행사로 지상권자의 권리 행사에 따라 매매계약이 성립하며, 매매가격은 매매계약이 성립한 시점에서의 시가를 기준으로 하면 될 것입니다(송덕수, 2022).


우리의 판례는 "민법 제643조에 의한 건물 매수청구권을 행사한 경우에 그 건물의 매수가격은 건물자체의 가격 외에 건물의 위치, 주변토지의 여러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매수청구권의 행사당시 건물이 현존하는 대로의 상태에서 평가된 시가라고 새겨진다."라고 하여(대법원 1987. 6. 23., 선고,, 87다카390, 판결) 건물의 위치나 시가 같은 다양한 사정을 고려하여 가치를 평가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물론, 이 판례는 민법 제643조에 관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상당한 가액'의 의미 자체에 대해서는 제283조제2항과 다르게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 판례를 참고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10억원짜리 건물을 영희가 마음대로 100억원에 철수에게 팔아치울 수는 없는 거지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제283조와 같은 규정은 왜 두고 있는 걸까요? 참고로, 제283조는 강행규정입니다(제289조). 이런 조문을 둔 취지는 뭘까요?

지상권은 남의 땅 위에 건물이나 수목 등을 소유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권리입니다. 즉, 지상권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다면 그 토지 위에는 건물 등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제283조는 이와 같은 지상권이 어지간하면(?) 존속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지상권자를 보호하고(갱신청구권), 지상권자가 이미 쏟아부은 투자금을 용이하게 회수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매수청구권). 그렇게 함으로써 지상물이 손쉽게 막 철거되거나 없어지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요. 즉, 지상물이 갖는 사회경제적 효용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제283조와 같은 조문을 둔 취지인 것입니다(김수일, 2019).

너무 지상권자를 우선하여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만, 지상권 자체가 물권으로써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는 점이나 건물과 같은 지상물을 철거하면 사회적으로 큰 낭비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지상권 계약의 기간 만료 시 지상권자가 행사할 수 있는 갱신청구권과 지상물 매수청구권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매수청구권이 형성권이라는 점 기억해 두시고요, 내일은 지상권의 갱신과 존속기간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물권3(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47-48면(김수일).

김준호, 「민법강의(제23판)」, 법문사, 2017, 727면.

송덕수, 「신민법강의(제15판)」(전자책), 박영사, 2022, 565면.



2024.1.10.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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