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9조(강행규정) 제280조 내지 제287조의 규정에 위반되는 계약으로 지상권자에게 불리한 것은 그 효력이 없다.
우리는 예전에 강행규정의 개념에 대해 알아본 적 있었습니다. 보통 강행규정을 공부할 때 함께 보는 개념이 바로 임의규정인데, 민법 제105조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법 총칙 파트를 공부할 때에 자주 등장하던 개념이 바로 '강행규정'이기도 합니다.
제105조(임의규정) 법률행위의 당사자가 법령 중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계없는 규정과 다른 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그 의사에 의한다.
복습하자면, 제105조에 따르면 임의규정이란 선량한 풍속이나 기타 사회질서와 관계없는 규정이므로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그 적용을 배제할 수 있는 규정인 것입니다. 반대로 해석하면, 강행규정이란 선량한 풍속 및 기타 사회질서와 관계있는 규정으로서, 당사자가 마음대로 배제할 수 없는 규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강행규정이라는 것이 도대체 구체적으로는 어디서 어디까지를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여기서 잠깐 하나 더 공부할 게 있습니다. '강행규정'과 헷갈리는 개념으로 '효력규정'과 '단속규정'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효력규정이란 그에 반하는 행위의 사법상 효과가 부정되는 것이고, 단속규정이란 그 규정을 위반한 행위라고 해도 사법상 효과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벌칙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김준호, 2017).
그런데 각각의 개념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학자에 따라서 다소 견해가 나뉩니다. 분류하자면, ①법에서 하지 말라고 되어 있고 위반하면 그 법률행위의 효력까지 부인하는 규정, ②법에서 하지 말라고 되어 있고, 위반하면 그 법률행위의 효력도 무효가 되며, 추가로 형사처벌이나 행정제재까지 가해지는 규정, ③법에서 하지 말라고 되어 있기는 하지만 위반해도 그 법률행위의 효력에는 영향이 없고, 다만 형사처벌이나 행정제재는 가해지는 규정, 이렇게 3가지 종류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①~③ 전부가 강행규정인 것이고 그 하위 개념으로 효력규정과 단속규정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강행규정과 단속규정은 서로 개념상 달라 겹쳐지는 부분이 없는 것인지, 학자에 따라 꽤 견해가 엇갈립니다(이동진, 2019). 상세한 설명은 참고문헌을 참조해 주십시오. 어쨌거나 여기서는, 최대한 단순화해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땅 투기가 극심하거나 뭔가 문제가 있는 지역에 대해서 구역을 정하고, 그 구역 내의 토지는 거래할 때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허가를 받지 않고 맺은 계약은 효력을 없는 것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 바로 효력규정의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판례 역시 "국토이용관리법상의 규제구역 내의 ‘토지등의 거래계약’허가에 관한 관계규정의 내용과 그 입법취지에 비추어 볼 때 토지의 소유권 등 권리를 이전 또는 설정하는 내용의 거래계약은 관할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만 그 효력이 발생하고 허가를 받기 전에는 물권적 효력은 물론 채권적 효력도 발생하지 아니하여 무효라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하여(대법원 1991. 12. 24., 선고, 90다12243, 전원합의체 판결), 같은 입장입니다(동 판례에서는 국토이용관리법으로 되어 있는데, 과거에는 토지거래허가에 관한 규정이 국토이용관리법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후 부동산 거래신고법이 개정되면서 이쪽으로 규정이 옮겨왔지요).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제11조(허가구역 내 토지거래에 대한 허가) ① 허가구역에 있는 토지에 관한 소유권ㆍ지상권(소유권ㆍ지상권의 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권리를 포함한다)을 이전하거나 설정(대가를 받고 이전하거나 설정하는 경우만 해당한다)하는 계약(예약을 포함한다. 이하 "토지거래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려는 당사자는 공동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시장ㆍ군수 또는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받은 사항을 변경하려는 경우에도 또한 같다.
(중략)
⑥ 제1항에 따른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체결한 토지거래계약은 그 효력이 발생하지 아니한다.
또한, 현재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임대사업자가 민간임대주택에 대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려고 할 때에는 표준임대차계약서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제47조(표준임대차계약서) ① 임대사업자가 민간임대주택에 대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려는 경우에는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표준임대차계약서를 사용하여야 한다.
(후략)
제67조(과태료) (제1항 생략)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에게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중략)
6. 제47조에 따른 표준임대차계약서를 사용하지 아니한 임대사업자
이렇게만 보면 마치 표준임대차계약서를 안 쓰고 체결한 임대차계약은 무효가 되어야 할 것만 같지만, 이러한 규정에 위반한다고 해도, (과태료는 당연히 맞겠지만)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판례 역시 같은 입장입니다(대법원 2000. 10. 10. 선고 2000다32055,32062 판결 *당시에는 '임대주택법'으로 규정되어 있었음). 이것이 바로 단속규정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법제에는 "~해서는 안된다." 혹은 "~하면 처벌한다."와 같은 규정들이 있지만, 그런 규정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에 위반한 법률행위의 효력까지 무효가 된다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규정이 단속규정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법 공부를 하는 분들이 주의하여야 하는 대목입니다.
드디어 제289조로 돌아올까요? 제289조는 제280조부터 제287조까지의 규정에 위반하면서 지상권자에게 불리한 것은 효력이 없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민법이 지상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인데요, 바꿔 말하면 계약할 때 지상권 '설정자'에게 불리한 것은 제289조에 해당하지 않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공부했던 조문 중 제283조의 매수청구권의 경우 지상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규정입니다. 그런데 만약 땅 주인과 지상권 설정계약을 체결하면서, 땅 주인이 "지상권이 소멸할 때 지상권자의 매수청구권은 없는 것으로 하자."라고 강요해서 결국 그 내용대로 계약을 했다고 합시다. 당사자 간에 서로 합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특약은 제289조에 의해서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제283조(지상권자의 갱신청구권, 매수청구권) ①지상권이 소멸한 경우에 건물 기타 공작물이나 수목이 현존한 때에는 지상권자는 계약의 갱신을 청구할 수 있다.
②지상권설정자가 계약의 갱신을 원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지상권자는 상당한 가액으로 전항의 공작물이나 수목의 매수를 청구할 수 있다.
오늘은 지상권 파트에서의 강행규정에 대해 알아보고, 그 김에 강행규정과 효력규정, 단속규정 등 중요한 개념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복잡한 내용인데 고생이 많으셨고요, 내일은 구분지상권에 대해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총칙2(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19, 531-532면(이동진).
김준호, 민법강의, 법문사, 제23판, 2017, 230면.
2024.1.1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