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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제288조, "지상권소멸청구와 저당권자에대한통지"

by 법과의 만남
제288조(지상권소멸청구와 저당권자에 대한 통지) 지상권이 저당권의 목적인 때 또는 그 토지에 있는 건물, 수목이 저당권의 목적이 된 때에는 전조의 청구는 저당권자에게 통지한 후 상당한 기간이 경과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제목 길이에 제한이 있어 게시글 제목에 띄어쓰기가 부득불 안 된 부분이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288조는 좀 내용이 복잡한데요, 우선 대충 읽어 보면 제287조와 관련이 있는 조문 같고("전조의 청구"라는 표현이 있음), 뭔가 저당권과도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지상권이 저당권의 목적인 때' 같은 표현들은 무슨 의미인 걸까요?


우리가 대놓고(?) 공부한 적은 없지만, 지금껏 저당권에 대해서 자주 언급해 왔습니다. 저당권은 담보물권으로서, 부동산이나 부동산물권을 담보로 하여 채권자가 다른 채권자보다 우선적으로 변제를 받을 수 있는 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356조). 용익물권인 지상권과는 다른 형태의 물권입니다.

제356조(저당권의 내용) 저당권자는 채무자 또는 제삼자가 점유를 이전하지 아니하고 채무의 담보로 제공한 부동산에 대하여 다른 채권자보다 자기채권의 우선변제를 받을 권리가 있다.


예를 들면, 돈이 없는 철수가 부자인 영희를 찾아가, "나 돈 좀 빌려줘."라고 하면, 영희는 "내가 뭘 믿고 너에게 돈을 빌려주냐. 너 사는 집 있으니 그걸로 담보 내놔라." 이렇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희는 철수의 집(부동산)에 저당권을 가진 저당권자가 되고, 철수는 저당권설정자가 되며, 대신 철수는 영희에게 돈을 좀 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철수의 집은 영희에게 '저당 잡힌' 것이 되는 셈입니다. 이제 철수가 영희에게 빌린 돈을 갚지 않으면, 영희는 철수의 집을 경매에 넘겨서 팔아 버리고 그 매각대금으로 자신의 빈 지갑을 채울 수 있게 됩니다(구체적인 경매 절차 등에 대해서는 저당권 파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보통 저당권이라고 하면 그 '목적'이 되는 것은 부동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부동산만큼 흔하지는 않지만 부동산 외에도 저당 잡힐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지상권'입니다. 누구 마음대로 이게 되냐, 민법에 가능하다고 아예 규정되어 있습니다(민법 제371조).

제371조(지상권, 전세권을 목적으로 하는 저당권) ①본장의 규정은 지상권 또는 전세권을 저당권의 목적으로 한 경우에 준용한다.
②지상권 또는 전세권을 목적으로 저당권을 설정한 자는 저당권자의 동의없이 지상권 또는 전세권을 소멸하게 하는 행위를 하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부동산도 아니고, '지상권'을 담보로 해서 돈을 빌린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지상권 역시 분명히 값어치가 있는 권리(부동산물권)로서 이를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것으로 민법은 규정하고 있습니다. 땅 자체를 저당 잡혀서 돈을 빌리는 것과 땅을 쓸 수 있는 권리를 저당 잡혀서 돈을 빌리는 것의 차이점을 주의하세요.


어쨌건 저당권의 목적이 '지상권' 그 자체이거나, 땅 위에 있는 건물·수목인 경우에는 우리가 어제 공부한 제287조의 지상권소멸청구권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볼까요? 자, 여기 땅이 하나 있고요, 땅 주인은 '김토지'입니다. 그리고 이 땅 위에 건물을 가진 소유자는 '최건물'이며, 최건물은 김토지와 지상권설정계약을 하고 지상권을 갖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최건물의 집안 사정이 좀 안 좋아져서, 최건물은 자신이 가진 지상권을 저당 잡히고 '나부자'로부터 1억원을 빌렸다고 합시다. 나부자는 바로 지상권을 목적으로 하는 저당권을 가진 셈이 됩니다. 문제는 최건물이 가난해진 바람에, 김토지에게 주어야 할 땅세를 2년간 연체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땅주인 김토지는 땅세를 내지 않는 최건물에게 분노해서, 민법 제287조에 따라 지상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무것도 모르고 평화롭게 낮잠을 자고 있던 나부자는 전화를 한통 받는 겁니다. 아래는 그냥 가상의 대화입니다.

"경찰인데요, 최건물이 가진 돈을 모두 들고 야반도주했습니다."

"아니, 그 사람 아직 나한테 1억원을 안 갚았는데요! 하지만 다행이군요. 지상권에 담보를 걸어 두었으니 그걸로라도 채권을 좀 회수해야겠습니다."

"글쎄요. 안됐지만 며칠 전에 그 땅 주인인 김토지 씨가 지상권소멸청구권을 행사했다고 하네요. 당신의 담보 목적인 지상권은 이미 이 세상에 없습니다."

"...?"

나부자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 됩니다. 이 사례에서 지상권이 아니라 땅 위의 건물(부동산)에 저당을 잡은 것이라고 해도 문제는 문제입니다. 어쨌거나 건물은 있긴 한데, '지상권은 이미 소멸하고 없는' 건물이어서 그 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경우건 나부자는 예측하지 못한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민법에서는 나부자와 같은 피해자가 최대한 덜 발생하도록, 최소한 제287조에 따른 소멸청구권을 행사할 때에는 저당권자에게 먼저 통지를 해주고, 그러고 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소멸청구권의 효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통지 하나 받았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나부자는 어느 정도 시간을 갖고 변호사와 상담을 받는다든지, 최건물에게 채권을 어떻게든 추심하든지 방법을 찾아볼 수 있게 됩니다. 낮잠 자다가 날벼락 맞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죠.


오늘은 지상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때 저당권자에게 통지하도록 하는 규정을 살펴보았습니다. 내일은 지상권 파트에서의 강행규정을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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