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7조(용수지역권) ①용수승역지의 수량이 요역지 및 승역지의 수요에 부족한 때에는 그 수요정도에 의하여 먼저 가용에 공급하고 다른 용도에 공급하여야 한다. 그러나 설정행위에 다른 약정이 있는 때에는 그 약정에 의한다.
②승역지에 수개의 용수지역권이 설정된 때에는 후순위의 지역권자는 선순위의 지역권자의 용수를 방해하지 못한다.
제297조는 용수지역권에 관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용수'라는 단어를 물권편에 들어오면서 종종 발견하곤 했습니다. 용수(用水)란 물을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용수지역권은 물을 사용하기 위한 지역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공부한 공유하천용수권이나 공용수 용수권 등에 대해서는 제231조~제235조 파트를 참고하여 복습하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데, 물 공급이 조금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합시다. 그래서 이웃 땅의 소유자인 영희와 용수지역권 설정계약을 맺고, 영희의 땅으로부터 물을 끌어다 쓸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합시다.
그런데 생각보다 영희의 땅에서 나는 물의 양이 좀 적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영희는 철수의 지상권 행사를 위해서 자기 집에서 쓰는 물도 포기하고, 세수도 못하고 목욕도 못한 채 자기 땅에서 나는 물을 철수의 땅에 최우선적으로 보내야 하는 걸까요?
제297조제1항 본문에 따르면, 그건 아니라는 겁니다. 승역지에서 나오는 물의 양이 요역지와 승역지에 필요한 양보다 적을 때에는, 그 필요한 정도에 따라 우선 가정용(본문에서는 '가용'(家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가정용이라는 뜻입니다)으로 먼저 쓰라는 것입니다. 생활에 필요한 용도로 사용하는 물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려는 민법의 취지를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물이 적은 이 마당에는 영희뿐만 아니라 철수도 자신의 땅에서 가정용으로 물을 우선 공급해야 하며, 그 후에도 물이 남으면 다른 용도(농업이나 공업 등)로 물을 공급하게 됩니다. 철수도 물론 물을 공급받기는 하지만, 철수와 영희 모두 가정용으로 먼저 물을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며, 쌍방이 모두 가정용으로 물을 사용할 때에는 그 수요에 따라 물의 공급을 배분하면 됩니다(김준호, 2017).
다만 이러한 물 배분법은 어디까지나 지역권을 설정할 때 별도의 약정이 없었던 경우에 해당되며, 다른 약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에 따라야 합니다(제297조제1항 단서).
제2항은 여러 개의 지역권이 설정된 경우를 말하는데요, 영희가 자신의 땅에 용수지역권을 철수에게 설정해준 후, 근처에 있는 다른 땅의 소유자인 나부자에게도 용수지역권을 하나 내줬다고 합시다. 영희가 여러 모로 돈이 급했나 보죠. 어쨌건 이런 경우 먼저 지역권을 취득한 철수가 선순위(앞선 순위) 지역권자가 되며, 나중에 지역권을 취득한 나부자가 후순위 지역권자가 됩니다.
이 경우 설령 영희가 자신의 땅에 있는 물을 철수에게 나눠주고 나면 나부자에게 나눠줄 물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후순위 지역권자인 나부자는 선순위 지역권자인 철수의 물 사용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철수의 지역권이 보다 앞선 순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297조제2항에서 말하는 내용은 지역권뿐만 아니라 물권 자체에 인정되는 성질인 배타성에 따라 당연히 인정되는 것입니다. 이는 채권과 달리 물권에 인정되는 성질로서, 중요하기 때문에 여기서 한번 언급하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물권은 독립된 물건을 직접 지배하여 이익을 얻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권리입니다. 따라서 하나의 물건에 여러 개의 상충되는 물권이 존재하는 상황은 논리적으로 성립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물권 중 하나인 소유권에 대해 생각해 볼까요? 볼펜 1개에 대해서 소유권이 2개라고 하면 뭔가 상상하기가 힘들게 됩니다. 공동소유라는 개념을 우리가 공부하긴 했지만, 그것도 소유권이 여러 개인 것은 아니라고 확실히 공부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의 물건 위에 서로 내용이 상충되는 여러 개의 물권이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바로 물권의 배타성(排他性)입니다. '배타성'이라는 것이 다른 것을 배척한다는 의미로 일상에서 사용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럭저럭 이해할 만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법은 이와 같은 물권의 배타성을 보장해 주기 위해 물권의 배타적 지배가 방해를 받고 있는 경우에는 권리자에게 물권적 청구권을 인정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적어도 제3자의 입장에서 누군가에게 물권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아야 그의 배타적 지배를 침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시제도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지원림, 2013).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한 물권적 청구권, 그리고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부동산등기 같은 공시제도가 물권의 배타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다만, 바꿔 말하면 서로 내용이 상충되지 아니하는 물권이라면 1개의 물건 위에도 함께 존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유권'과 '저당권' 같은 물권이 1필의 토지 위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그러합니다. 소유권과 저당권, 지역권, 지상권 같은 것들은 물권이라는 공통점이 있더라도 서로 그 성질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공존이 가능합니다.
소유권의 경우는 불가능하지만, 같은 성질의 물권 사이에서도 서로 상충되지 않는 범위에서는 1개의 물건 위에 여러 개가 존재할 수 있는데 바로 우리가 위에서 공부한 지역권이 그러합니다. 1순위 지역권, 2순위 지역권, 이런 식으로 여러 개의 지역권이 하나의 승역지 위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승역지에서 물이 100리터가 나오는데, 승역지 자체에서 사용하는 양이 20리터, 1순위 요역지에서 사용하는 양이 20리터, 2순위 요역지에서 사용하는 양이 20리터... 이런 식으로 용수지역권을 여러 개 설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지역권도 물권이기 때문에 여러 개의 권리가 동시에 존재할 때에는 시간적으로 먼저 성립한 물권이 나중에 성립한 물권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게 되며, 그 결과 후순위 지역권자는 선순위 지역권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물권의 순위를 따지는 모습은 나중에 공부하게 될 저당권에서 특히 자주 보게 될 텐데요, 오늘은 우선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용수지역권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물권의 배타성에 대해 공부한 부분을 잊지 마시고요, 내일은 승역지 소유자의 의무와 승계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준호, 민법강의, 법문사, 제23판, 2017, 751면.
지원림, 민법강의, 홍문사, 제11판, 2013, 44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