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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Dec 22. 2021

민법 제320조, "유치권의 내용"

제320조(유치권의 내용) ①타인의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점유한 자는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에 관하여 생긴 채권이 변제기에 있는 경우에는 변제를 받을 때까지 그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유치할 권리가 있다.
②전항의 규정은 그 점유가 불법행위로 인한 경우에 적용하지 아니한다.


오늘부터 새로운 장으로 들어갑니다. 제7장, 유치권입니다. 우리는 전에 제279조(지상권의 내용)에서 지상권에 대해 처음 공부하면서, 물권에는 본권과 점유권이 있고, 본권은 소유권과 제한물권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제한물권 중에는 용익물권과 담보물권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공부한 지상권과 지역권이 대표적인 용익물권이었지요.

*전세권의 경우, 남의 부동산을 사용, 수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용익물권에 해당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세권자가) 전세금을 못 돌려받는 경우에는 경매를 넘겨버리고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게 하는 특수성이 있어 담보물권으로서의 성질도 함께 있다고 평가됩니다. 우리의 판례 역시 "전세권설정등기를 마친 민법상의 전세권은 그 성질상 용익물권적 성격과 담보물권적 성격을 겸비한 것으로서, 전세권의 존속기간이 만료되면 전세권의 용익물권적 권능은 전세권설정등기의 말소 없이도 당연히 소멸하고 단지 전세금반환채권을 담보하는 담보물권적 권능의 범위 내에서 전세금의 반환시까지 그 전세권설정등기의 효력이 존속하고 있다 할 것인데, 이와 같이 존속기간의 경과로서 본래의 용익물권적 권능이 소멸하고 담보물권적 권능만 남은 전세권에 대해서도 그 피담보채권인 전세금반환채권과 함께 제3자에게 이를 양도할 수 있다 할 것이지만 이 경우에는 민법 제450조 제2항 소정의 확정일자 있는 증서에 의한 채권양도절차를 거치지 않는 한 위 전세금반환채권의 압류·전부 채권자 등 제3자에게 위 전세보증금반환채권의 양도사실로써 대항할 수 없다."라고 하여, 같은 입장입니다(대법원 2005. 3. 25. 선고 2003다35659 판결).


담보물권이란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를 지배하는 물권이라고 했습니다. 담보물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채권과 담보제도라는 것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채권이란, 채권자가 채무자에 대하여 급부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그리고 급부(給付)란, 직역하면 내어준다는 것으로,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일정한 행위(또는 그에 따른 이익)를 말합니다(지원림, 2013).


예를 들어 철수가 영희로부터 1억원을 빌렸다면, 영희는 철수에게 1억원을 갚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돈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것이 채권에서의 '급부'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영희에게 1백만원을 받고 바이올린 연주를 해주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영희는 철수에게 돈을 지급한 후 '바이올린 연주'를 해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겁니다. 경제학에서는 채권(bond)이라고 하면 금융기관 등에서 자금을 차용하기 위해 발행한 증서를 의미하는데, 법학에서는 훨씬 넓은 범위를 채권이라는 개념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어쨌거나 채권이 있게 되면, 채권자도 있고 채무자도 있게 될 텐데,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서로를 100% 다 믿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영희는 철수에게 1억원을 빌려 주었지만, 사실 채무자인 철수가 1억원을 제대로 갚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가족끼리도 돈 때문에 사달이 나는 세상입니다.


만약 철수(채무자)가 영희(채권자)에게 변제 기일이 되었는데도 돈을 갚지 않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영희는 철수에 대하여 (말로 해서는 안 들으니) 소송을 제기할 겁니다. 아마 대여금반환청구소송이 될 겁니다(보통 소송 전에 가압류를 걸겠지만,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이 소송에서 영희가 승소하면, 영희는 이제 법원을 통하여 철수의 재산을 '강제경매'에 넘겨 버리고, 그의 재산을 현금화하여 1억원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가지고 있던 부동산을 팔아서 법원이 영희에게 돈을 돌려주는 식입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그럴듯해 보입니다. 돈을 갚지 않고 버티는 사람이 있더라도 무난하게 법률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지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철수 같은 채무자가 영희뿐 아니라 다른 여러 사람에게도 빚을 지고 있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영희 외에 나부자로부터도 1억원을 빌렸다고 해봅시다. 철수의 채권자는 영희(1억원), 나부자(1억원) 2명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채권의 경우는 물권과 달리, 누구의 채권이 먼저 성립했는지(누가 먼저 돈을 빌려줬는지)와 무관하게 모든 채권자를 평등하게 다루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것을 채권자 평등의 원칙이라고 하는데, 나중에 채권편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먼저 돈을 빌려준 영희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겠지만, 사실 채권은 물권과 다르게 공시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철수의 부동산이 경매에 넘어가서 1억원에 낙찰되었다고 해도, 영희는 나부자와 이 돈을 나누어서 가져가야 합니다. 결국 영희와 나부자는 5천만원씩을 가져가게 됩니다(원래는 여기서 안분배당의 개념이 나오는데, 지금은 당장 중요한 것이 아니니 일단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영희는 나머지 5천만원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선변제를 받지 못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점이지요.


자, 그렇다면 영희가 이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채무자인 철수를 꽁꽁 묶어 두고 다른 사람에게는 돈을 빌리지 못하도록 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영희는 이런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바로 담보를 잡는 것입니다. 철수에게, "너, 나한테 돈을 빌리고 싶으면 담보를 제공해라. 아니면 나는 돈 못 빌려준다." 이렇게 말하고, 철수의 재산을 담보로 잡아 '물권'을 설정한 후, 나중에 혹시라도 철수가 돈을 안 갚으면 그 재산으로부터 자금을 회수하는 것입니다.


물권은 채권과 다르게 공시방법이 있으므로, 누가 먼저 물권을 설정했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시간 순서가 중요). 따라서 영희가 먼저 담보물권을 걸어 버리면, 나중에 나부자가 철수에게 돈을 빌려두고 담보를 또 잡는다고 해도 영희에게 우선권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차차 말씀드리겠지만, 어쨌건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담보'라는 것이 결국은 채권의 안전한 회수를 위해 발달했다는 점입니다. "왜 하필 담보물권이라는 제도가 발달해 왔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법이 정하고 있는 담보물권은 유치권(제7장), 질권(제8장), 저당권(제9장)이 있습니다. 이중 질권과 저당권의 경우, 원칙적으로 당사자 간의 합의(질권설정계약 또는 저당권설정계약)에 의해서 물건을 담보로 제공하고, 우선변제권이 인정된다는 점에서 약정담보물권이라고 부르며(예외적으로 법정질권(제648조, 제650조)과 법정저당권(제649조)는 제외), 유치권은 당사자의 약정이 없더라도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당연히 성립한다는 점에서 법정담보물권이라고 부릅니다(한웅길, 2006).




제320조로 가볼까요? 제1항에 따르면, 남의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점유한 사람은,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에 관하여 생긴 채권이 변제기에 있는 경우에는 변제를 받을 때까지 그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유치할 권리가 있다고 합니다. 유치(留置)란, '머무를 유'에 '둘 치'의 한자를 쓰며, 대충 직역하자면 '맡아 둔다' 정도의 의미가 됩니다. 어른스럽지 못한 것, 미성숙한 것을 말할 때 쓰는 '유치'(幼稚)와는 한자가 다르니 주의하세요.


물건은 알겠는데, 유가증권은 뭘까요? 법학 분야에서 '유가증권'이라는 용어는 민법, 상법, 민사소송법, 증권거래법 등 다양한 법률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명확한 정의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유가증권의 개념에 대해서 학설의 다툼이 있기는 합니다(김상규, 2001).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그렇게까지 자세히 알아볼 필요는 없고, 단순하게 '재산권을 나타내는 증서'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대표적으로 '주식' 같은 것이 바로 유가증권의 일종인 것이지요. 


그래서 대략 제1항을 읽어보자면, 뭔가 '물건이나 유가증권에 관하여 생긴 채권'이 갚아야 할 때가 된 경우에는(변제기가 된 경우) 남의 물건 등을 맡아 둘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정말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돈을 안 갚으면 갚을 때까지 네 물건은 돌려주지 않을거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유치권'이라는 것이 성립하는 것인지, 그 요건을 천천히 살펴보겠습니다.




1. 남의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적법하게 점유하고 있어야 합니다(제320조제2항).


일단, 다른 사람의 물건 같은 것을 적법하게 점유하고 있는 상태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철수(채무자)가 영희(채권자)로부터 빌린 1억원을 갚지 않고 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분노한 영희가 철수의 집에 쳐들어가, "감히 내 돈을 갚지 않다니. 유치권을 행사하겠다!"라고 하면서 철수가 가진 고급 승용차를 빼앗아 타고 왔습니다. '물건'은 동산과 부동산 모두 가능하니까, 승용차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유치권 성립이 가능할까요? 이런 경우는 안 된다는 겁니다. 제320조제2항은 점유가 불법행위로 인한 경우에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일단 영희는 철수의 승용차를 적법하게 점유하고 있던 상태가 아니고, 불법행위로 승용차를 점유한 것이니까 요건 성립이 안됩니다.


그럼 어떤 경우에 '적법하게 남의 물건이나 유가증권'을 점유하고 있는 걸까요? 예를 조금 바꾸어 보겠습니다. 영희가 사실 원래 자동차 수리공이라고 합시다. 그리고 철수는 자신의 고급 승용차가 고장나서, 영희에게 차를 맡기면서 수리해 달라고 합니다. 수리비 견적이 1억원이 나왔습니다. 수리비가 너무 비싸긴 한데, 고급 승용차라 그렇다 치고 대충 넘어갑시다.


영희는 자동차의 수리를 마쳤는데, 1억원의 수리비를 내야 할 의무가 있는 철수(채무자)가 돈을 주지를 않습니다. 바로 이런 경우에 영희(채권자)는 철수(채무자)의 자동차에 대해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동차 수리비를 안 준다고? 그럼 네 차를 돌려주지 않을 테다." 이렇게 되는 것이지요. 영희는 자동차의 수리를 위해서 자동차를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적법'한 점유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채권이 변제기에 있어야 합니다.


변제기(辨濟期)는 엄밀히는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는 시기를 말합니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면, 돈을 갚기로 한 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예를 들어 영희가 철수에게 1억원을 빌려주고 4월 1일까지 갚으라고 했다고 합시다. 바꿔 말하자면 철수는 4월 1일까지는 영희에게 '돈을 갚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영희가 3월 29일에, "왜 내 돈 안 갚아! 유치권을 행사할 테다." 이렇게 나올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변제기가 명확하지 않은 채권도 있습니다. 돈을 빌려 주면서, 언제까지 갚을 것인지 서로 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요. 이처럼 기한을 정하지 않은 채권의 경우에는 채권자는 언제든지 이행청구(돈을 갚으라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채권 성립과 동시에 유치권이 성립할 수 있다고 볼 것입니다(지원림, 2013; 721면).


3. 채권과 물건 사이에 견련성이 있어야 합니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 나옵니다. '견련성'(牽連性)... 저도 일상생활에서 써본 적이 없는 단어인데요, '끌 견'에 '연결할 연'의 한자를 사용합니다. 대충 직역하면 서로 얽혀서 연관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를 우리가 공부하는 제320조에서는,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에 관하여 생긴 채권"이어야 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유치권의 목적이 되는 물건과 정말 아무 관계도 없는 채권을 빌미로 남의 물건을 돌려주지 않는 것은 안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위의 채무자 철수와 자동차 수리공 영희의 사례에서, '철수의 자동차'와 '철수의 자동차를 수리함으로써 영희가 얻게 된 수리비 대금청구권(채권)'은 서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례를 약간 비틀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수리공인 영희가 사실 철수의 건물에 세 들어 사는 임차인이었다고 해봅시다. 그녀는 철수에게 보증금을 맡겼는데, 임대차 기간이 끝났는데도 철수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영희(보증금반환청구권의 채권자)는 마침 철수가 얼마 전 수리를 맡긴 자동차를 돌려주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안타깝지만 유치권을 주장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임대차로 인해 생긴 채권과 철수의 자동차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견련성'이 없는 것입니다. 똑같은 사람(영희와 철수), 똑같은 금액(1억원)의 채권이라고 하더라도, 채권과 물건 사이의 견련성에 따라 유치권이 성립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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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설명을 하긴 했지만, 현실에서는 실제로 도대체 어디까지가 견련성이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유치권이 성립했다. 돈을 안 갚으면 물건은 못 돌려준다.”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견련성이 없는 채권이다. 유치권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니 물건을 돌려줘라.”라고 주장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견련성에 대해서는 사실 이 주제 하나만으로도 논문이 여러 편 나올 만큼 내용이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솔직하게 이 정도로 대충 때우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더 자세한 논의를 살펴보고 싶은 분들은 [심화학습]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4. 유치권이 성립하지 못하도록 막는 특약이 없어야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수리공인 영희는 철수로부터, 자신의 고급 승용차를 수리해 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그런데 철수가 계약서를 내밀면서 이렇게 제안하는 겁니다. "만약 제가 수리비를 안 갚는다고 하더라도, 제 승용차에 대해서 유치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조항을 넣읍시다."


이걸 받아들일 수리공이 있을까 싶지만, 영희가 철수를 너무 믿은 나머지 그렇게 하자고 하면서 계약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치권 성립을 배제하는 특약입니다. 비현실적이지만 공부를 위해 예를 들어 보았습니다. 이제 영희는 철수가 1억원의 수리비를 갚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돈을 회수할지언정 철수의 자동차에 대해서 유치권을 행사할 수는 없게 됩니다. 그렇게 계약을 맺었으니까요. 


민법에 명확히 있는 유치권을 개인이 서로 합의해서 포기하는 게 적절한가? 이런 생각이 드실 수도 있는데, 우리의 학설과 판례는 특약으로 배제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입장입니다. 판례는 "제한물권은 이해관계인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한 자유로이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다. 유치권은 채권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정담보물권으로서, 당사자는 미리 유치권의 발생을 막는 특약을 할 수 있고 이러한 특약은 유효하다. 유치권 배제 특약이 있는 경우 다른 법정요건이 모두 충족되더라도 유치권은 발생하지 않는데, 특약에 따른 효력은 특약의 상대방뿐 아니라 그 밖의 사람도 주장할 수 있다."라고 하고 있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유치권 성립의 배제가 특약으로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2018. 1. 24., 선고, 2016다234043, 판결).




위의 4가지 조건을 만족하면,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유치권은 '당연히' 성립합니다. 철수와 영희가 유치권 설정계약서를 합의 하에 작성해서 성립하는게 아니라, 법률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사자의 약정 없이도 법률에 따라 성립한다고 하여, 유치권은 법정담보물권(법률에서 정하는 담보물권)의 성질을 갖는다고 봅니다.


유치권이 성립하게 되면, 제1항에 적은 것처럼 유치권자는 스스로의 채권을 변제받을 때까지 목적물을 유치할 수 있습니다. 즉,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버텨도 합법이라는 거죠. 즉, 여기서의 '유치'란 점유를 계속하면서 인도를 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김준호, 2017). 따라서 물건을 돌려받고 싶다면,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변제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유치권이 생각보다 꽤 강력한 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유치권의 개념과 법정담보물권으로서의 성질, 견련성 등에 대해 공부하느라 좀 내용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유치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내용이므로, 읽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내일은 유치권의 불가분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상규, <증권거래법상의 유가증권 개념론에 대한 소고>, 증권예탁원, 증권예탁 제38호, 2001, 42면.

김준호, 민법강의, 법문사, 제23판, 2017, 807면.

지원림, 민법강의, 홍문사, 제11판, 2013, 874면.

한웅길, <법정담보물권이라는 개념의 유용성의 한계>, 재산법학회, 재산법연구 제23권제2호, 2006, 201면.





[심화학습] 채권과 물건 사이의 견련성

피담보채권과 유치권의 목적물 사이의 견련성(견련관계)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 걸까요? 견련성의 개념은 곧 유치권이라는 제도의 적용범위를 결정하는 문제이므로, 아주 중요한 이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지금부터의 논의는 동시이행의 항변권, 저당권, 임대차 등 나중에 공부할 개념들을 모두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진행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대체로 법학 교과서에는 보통 견련성에 대한 학설을 크게 2가지로 분류합니다. 첫번째는 일원설입니다. 목적물이 채권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경우에 견련관계를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이게 왜 일원설이라고 불리는지는 뒤에 나올 학설을 보면 대강 이해가 가실 겁니다.


두번째는 이원설이라고 불리는 학설로, 우리나라 학계의 다수설로 평가되는 견해입니다. 판례도 같은 입장에 서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대법원 2007. 9. 7. 선고 2005다16942 판결). 이 견해에서는, ①목적물이 직접적 원인이 되어 채권이 발생한 경우에 더하여, ②간접적 원인인 경우도 포함된다고 봅니다(홍동기, 2019). 


①번의 경우는 채권이 목적물 자체로부터 발생한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건축주로부터 의뢰를 받아 건물을 완성한 공사업체가 건축주로부터 공사대금을 못 받았다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공사업체가 건축주에 대하여 갖는 공사대금채권은 유치권의 목적물인 건물로부터 직접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공사업체는 건물을 점유하고 건축주에게 돌려주지 않으면서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공사대금을 받을 때까지요.


다른 예도 있습니다. 어떤 건물을 임차한 사람이 임차 기간 동안 많은 돈을 들여 건물의 하자 등을 수리하였다고 합시다. 그로 인하여 건물의 가치가 증가되었다고 가정합니다. 민법에 따르면 임차인이 유익비를 지출한 경우에는 임대인은 임대차종료시에 그 가액의 증가가 현존한 때에 한하여 임차인의 지출한 금액이나 그 증가액을 상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제626조제2항). 이러한 경우,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갖는 유익비상환청구권은 목적물인 건물로부터 직접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임차인은 유익비를 돌려받을 때까지 건물을 점유하고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또다른 예로는 물건(목적물)로 인해서 손해가 직접 발생한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손해배상청구권과 목적물 간의 견련성).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물건을 대신 보관하여 주는 것을 임치라고 하는데, 물건을 맡아 주는 사람(수치인)이 임치물을 보관하다가 그 물건으로 인해서 손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수치인은 임치인(물건을 맡긴 사람)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을 갖는데(제697조), 이러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임치물로부터 직접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②목적물이 채권발생의 간접적인 원인이 되는 경우는 어떤 것일까요? 교과서에서는 이를 “채권이 목적물 반환청구권과 동일한 법률관계(또는 사실관계)로부터 발생한 경우”라고 설명합니다.


교과서에서 대표적인 예시로 드는 것이 바로 매매계약의 취소나무효입니다. [②-1 사례] 예를 들어, 철수가 영희에게 볼펜을 팔았다고 해봅시다(볼펜 매매계약). 볼펜은 철수에게서 영희로 무사히 인도되었습니다. 그런데 착오라든지 모종의 사유로 매매계약이 취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철수는 영희에게서 받은 볼펜 매매대금을 영희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영희는 대금반환청구권을 가짐). 그리고 영희는 철수에게서 받은 볼펜을 철수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철수는 목적물반환청구권을 가짐). 


여기서 영희가 갖는 대금반환청구권은 사실 볼펜 그 자체로부터 발생한 것은 아닙니다. 계약이 있다가 취소됨으로써 발생한 것이지요. 하지만 채권의 목적물반환청구권(철수가 영희에 대하여 볼펜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과 매매대금반환청구권은 동일한 법률관계(매매계약과 그 취소)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목적물(볼펜)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채권이 발생한 것이라고 보고, 견련관계를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영희는 철수로부터 돈을 돌려받을 때까지 볼펜을 점유하고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채권이 목적물반환청구권과 동일한 ‘사실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포함됩니다. [②-2 사례] 예를 들어 클럽에서 A와 B가 각자 짐을 맡기고 들어가서 놀았는데, 서로 집에 갈 때 짐을 실수로 바꿔서 들고 갔다고 합시다. 이런 경우 A와 B는 각자의 물건에 대해 반환청구권이 있고, 이는 동일한 사실관계(물건을 바꿔서 잘못 찾아감)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이지요(양창수·김형석, 2023).


이원설에서의 기준에 따라 견련성이 부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견련성 부정 사례] 예를 들어, 건물을 임차한 사람이 건물주(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맡겼다고 해봅시다. 임차인은 임대차 계약기간 끝난 후에도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줄 때까지 건물을 점유하면서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요? 이원설에서는 안 된다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는 건물의 사실상태로부터 바로 발생한 권리가 아니고 단지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갖는 채권일 뿐이라는 것이지요(박동진, 2022). 판례도 같은 입장입니다(대법원 1976. 5. 11. 선고 75다1305 판결).


그런데 여기까지는 다수설(이원설)의 설명일 뿐이고, 이에 대해 비판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사실 위 사례들을 읽으시면서 고개를 갸웃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견련성이 있다든지 없다든지 하는 설명이 그럴듯한 것 같으면서도 또 왜 없다는 것인지 이해가 잘 안 가기도 하고, 그러실 겁니다. 학자들 중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양창수·김형석 교수님은 이원설이 독일 민법의 설명을 가져온 것으로, 우리 민법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합니다. 독일의 경우 유치권이 채권적 항변권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우리의 유치권은 물권이므로(대세효 있음) 독일의 학설을 적용할 경우 너무 유치권의 적용범위가 넓어지고 거래 안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유치권이라는 물권적 권능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보되, 그 외에도 유치권 인정으로 인한 거래의 부담을 감수할 만큼 법정책적으로 중요한지, 또는 유치권의 성립을 부정할 만한 다른 법적 고려사항이 있는지 등을 검토하여야 한다는 겁니다(양창수·김형석, 2023).


박용석 교수님은 이렇게 봅니다. 위 [견련성 부정 사례]를 다시 살펴볼까요? 이원설에서는 위 사례에서 임차인의 보증금반환청구권과 임대차목적물 사이의 견련성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은 그 논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봅니다. 반환청구권과 임차인의 목적물반환의무는 결국 ‘임대차관계의 종료’라는 동일한 법률관계에 기인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는 이원설에서 견련성을 부정하는 결론을 내고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지요. 

이에 박 교수님은 견련성은 채권이 목적물 자체로부터 발생한 경우에 한정하여 인정하되, 나아가 공평의 원칙상 이에 준하는 경우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박용석, 2008).


김준호 교수님은 위 [②-1 사례]에서의 매매대금반환청구권과 목적물 간의 견련성을 (다수설과는 달리) 부정하여야 한다고 비판합니다. 예를 들어 저당권이 설정된 부동산이 팔렸다가 해당 매매계약이 취소된 경우, 부동산 점유자에게 유치권이 인정되면 저당권이 실행되어 낙찰받은 사람에게 불의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매매계약의 무효나 취소에서는 매수인에게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인정하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점도 논거로 제시합니다.


참고로, 김 교수님은 [②-2 사례]에서도 다수설과 달리 유치권 성립을 부정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해당 사례에서 A와 B는 각자 소유물에 기한 반환청구권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물권적 청구권은 유치권에 의하여 담보되는 채권의 범주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치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서로 소유물반환청구를 하면 족하다는 것이지요(김준호, 2017: 801-802면).


송덕수 교수님도 [②-1 사례]에서 견련성을 부정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물건 매매계약이 취소되거나 하는 경우 민법 제536조를 유추적용하여 매수인에게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인정해주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송 교수님은 유치권이 물권인 만큼 엄격한 요건을 준수하여 까다롭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유치권 제도의 취지상 유치권이 인정될 필요성이 있는 경우, 즉 채권과 목적물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때에 견련성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동시이행의 항변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라면 유치권 성립을 인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지요(송덕수, 2022). 


이외에도 참 많은 학자들이 유치권에서 말하는 견련성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지면 관계상 여기서 모두 설명드릴 수는 없지만, 과연 우리는 견련성을 어떻게 판단하여야 하는가, 한번 스스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 보시길 바랍니다.


*참고문헌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물권3(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19, 460-461면(홍동기).

김준호, 「민법강의(제23판)」, 법문사, 2017, 797-798면.

박동진, 「물권법강의(제2판)」, 법문사, 2022, 391-392면.

박용석, “유치권 성립요건으로서의 견련성에 관하여”, 부산대학교 법학연구소, 법학연구 제48호제2호(통권 제58호), 2008, 228-230면.

양창수·김형석, 「권리의 보전과 담보(제5판)」(전자책), 박영사, 2023, 373-378면.

송덕수, 「신민법강의(제15판)」(전자책), 박영사, 2022, 606-607면.



2024.1.22.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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