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법과의 만남 Jan 03. 2022

민법 제322조, "경매, 간이변제충당"

제322조(경매, 간이변제충당) ①유치권자는 채권의 변제를 받기 위하여 유치물을 경매할 수 있다.
②정당한 이유있는 때에는 유치권자는 감정인의 평가에 의하여 유치물로 직접 변제에 충당할 것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유치권자는 미리 채무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유치권을 가지면 따라오는 장점은 또 무엇이 있을까요? 우선 지금까지 공부한 바로는, 유치권자는 채권의 변제를 받을 때까지 목적물을 계속 점유하면서 돌려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공부하는 제322조제1항은, 유치권자가 단순히 ‘물건을 보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목적물을 경매에 부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유치권자의 경매권 또는 경매청구권). 얼핏 보면 유치권에 굉장히 강력한 힘을 부여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좀 더 생각해 볼 만한 문제들이 있는데,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살펴볼까 합니다.


논의를 진행하기 전에 먼저 알아 둘 부분이 있습니다. 유치권이 걸려 있는 부동산이 경매에서 환가되는 방식에는 2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유치권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경매를 신청하는 경우입니다. 유치권이 걸려 있는 부동산에 저당권 같은 다른 물권이 이미 설정되어 있어서 그 저당권자가 경매를 신청할 수도 있고(임의경매), 부동산 소유자에게 돈을 빌려준 일반채권자가 있어서 그 사람이 강제경매를 신청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유치권자가 직접 경매를 신청하는 것으로, 오늘 공부하는 제322조제1항이 바로 그 근거가 됩니다. 이것을 유치권에 기한 경매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유치권의 일반적인 특성과 함께, 이러한 특성이 유치권에 기한 경매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유치권에는 우선변제권능이 없다.

우리는 전에 전세권에 대하여 공부할 때, 우선변제권의 개념을 살펴본 바 있었습니다(제303조 부분 참고). 전세권의 경우는 우선변제권이 있어서, 후순위권리자나 기타 채권자보다 ‘우선하여’ 채권 변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전세권의 강력한 장점이었지요.                     

제303조(전세권의 내용) ①전세권자는   전세금을 지급하고 타인의 부동산을 점유하여 그 부동산의 용도에 좇아 사용ㆍ수익하며, 그 부동산 전부에   대하여 후순위권리자 기타 채권자보다 전세금의 우선변제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유치권의 경우에는 우선변제권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매우 중요하니 기억해 두세요. 전세권의 경우는 제303조제1항에서 명시적으로 우선변제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유치권의 경우 민법 어디에도 우선변제권을 부여하는 조항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선변제권이 인정되는 저당권이나 질권에 따른 경매는 실질적 경매라고 부르고, 우선변제권이 인정되지 않는 유치권에 따른 경매는 단순히 물건을 금전으로 바꾼다는 정도의 의미를 갖는 것이어서 형식적 경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형식적 경매라는 단어 자체를 외우는 것보다, 우선변제권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 경매와는 다른 특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민사집행법」은 유치권에 의한 경매를 따로 규정하면서, 담보권 실행을 위한 경매(저당권 등에 따라 실시되는 경매를 말합니다)의 예에 따르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유치권에 의한 경매를 ‘단순히 유치물을 환가하는 것’(현금으로 바꾸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변제를 받기 위한 성질이 있는 것인지, 소멸주의와 인수주의 중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 등 학설의 논란이 심한 분야이기도 합니다(이상태, 2011). 여기서는 분량상 그 모든 부분을 소개하기는 어려우니 관심 있는 분들은 논문을 검색하시길 바랍니다.                     

민사집행법
제274조(유치권 등에 의한 경매)   ①유치권에 의한 경매와 민법ㆍ상법, 그 밖의 법률이 규정하는 바에 따른 경매(이하 “유치권등에 의한 경매”라   한다)는 담보권 실행을 위한 경매의 예에 따라 실시한다.
②유치권 등에 의한 경매절차는 목적물에 대하여   강제경매 또는 담보권 실행을 위한 경매절차가 개시된 경우에는 이를 정지하고, 채권자 또는 담보권자를   위하여 그 절차를 계속하여 진행한다.
③제2항의   경우에 강제경매 또는 담보권 실행을 위한 경매가 취소되면 유치권 등에 의한 경매절차를 계속하여 진행하여야 한다.


2. 하지만 유치권에도 예외적으로 우선변제권능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다.

이제 제2항을 봅시다. 조 제목에 나오는 ‘간이변제충당’에 관한 내용인데요, 이름 자체가 좀 생소하긴 합니다. 간이변제충당이란 이런 의미입니다. 우리가 제1항에서 배웠듯이 유치권자가 경매를 신청할 수 있긴 한데, 사실 현실에서 경매를 신청하고 절차를 밟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시일도 오래 걸리고, 알아야 할 것도 많고, 법률가의 조언이 필요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제2항에서는 번거롭게 경매를 거치지 않더라도,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감정인의 평가에 따라 유치물 그 자체로써 스스로의 채권을 변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간이변제충당이 실시되면 유치권자는 유치물의 소유권을 바로 취득하게 됩니다. 그럼 그 물건을 팔든지 자기가 쓰든지 하면 되지요. 이제 왜 ‘간이’ 변제충당인지 이해하셨을 겁니다. 보다 간단한 절차라는 겁니다.


하지만 간이변제충당을 무제한으로 허용하게 되면, 제1항의 경매권을 둔 이유가 없겠지요. 누가 경매절차를 이용하려고 하겠습니까? 번거롭게. 그래서 간이변제충당을 하려면 다음의 요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①먼저 간이변제충당을 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물건의 가치 자체가 몇 푼 하지도 않는 경우라면 어떨까요?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물건이 10만원 정도 값어치라면, 이걸 경매에 부치는 것은 오히려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비효율적입니다. 하지만 부동산을 점유하고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부동산의 가치가 10억원이 훌쩍 넘는다면, 이걸 간이변제충당으로 처리하기는 좀 어렵겠지요.


②감정인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감정인이 뭘까요? 우리는 가끔 ‘감정’이라는 표현을 듣습니다. 예를 들어 미술품 감정인이라고 하면,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은 사람으로서 미술품이 진품인지,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판단하는 일을 할 겁니다. 법학에서 감정인(鑑定人)은, 소송에서 법원의 명령을 받아 자신의 전문분야에서의 지식 또는 경험을 이용해서 구체적 사실을 판단하고, 이를 법원(법관)에게 보고하는 일을 합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전문성 있는 분야도 많은 만큼, 판사들이 모든 것을 혼자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사고에 관련된 소송을 맡은 판사가 있다고 해봅시다. 그 판사는 의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송에 휘말린 의사가 정말 진료를 하는 과정에서 과실이 있었는지, 수술을 받은 환자가 뭔가 잘못한 것은 아닌지 등을 판단하여야 합니다. 이와 같이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법원은 감정인의 도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치권자가 법원에 “제가 점유하고 있는 유치물은 값어치가 기껏해야 10만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경매에 부치기는 적절하지 않으니, 간이변제충당을 하게 해 주세요.” 이렇게 얘기했다고 해봅시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인데, 그 물건의 가치가 10만원이라는 것은 단지 유치권자 스스로 주장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실제로는 값어치가 1억원인데, 경매에 안 부치고 유치권자가 간단하게 날름(?)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막기 위해, 감정인의 객관적인 평가에 따라 법원은 실제로 그 물건의 가치가 10만원인지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③법원에 청구를 하여야 합니다. 유치권자가 가만히 있는데 법원이 먼저 나서서 간이변제충당을 해보라고 추천해 주지는 않죠. 법원에 청구하고, 법원에서 간이변제충당 허가를 해줘야 합니다.


④유치권자가 채무자에게 미리 통지를 하여야 합니다. 이건 제322조제2항 후단의 내용인데요, 왜 굳이 채무자에게 미리 알려주어야 할까요? 그건 채무자를 어느 정도는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공부하겠지만, 민법 제327조에 따라 채무자는 상당한 담보를 제공하고 유치권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채무자가 그렇게 하기도 전에 아무 말도 없이 유치권자가 간이변제충당을 해버리고 물건을 처분해 버리면, 채무자는 소중한 유치물을 되찾을 길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채무자에게도 유치물의 소유권을 보전할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서 이런 조건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지원림, 2013). 이런 통지 없이 유치권자가 간이변제충당 신청을 하면, 법원은 이를 각하하게 됩니다(김준호, 2017).                    

제327조(타담보제공과 유치권소멸)   채무자는 상당한 담보를 제공하고 유치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다.


간이변제충당이 인정되면, 유치권자는 목적물의 소유권을 바로 취득하며, 등기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제187조). 대신 물건의 평가액 한도에서 채권은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평가액이 채권보다 많은 경우에는 남는 돈은 채무자에게 돌려주어야 하고요, 반대로 적은 경우에는 마저 남은 빚을 채무자에게 받을 수 있겠지요(박동진, 2022). 

*이처럼 제322조제2항의 간이변제충당과 (나중에 공부할) 제323조의 과실수취권 등을 가리켜, 우리 민법이 예외적으로 유치권자에게 우선변제적 권능을 인정하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홍동기, 2019). 


3. 유치권에 기한 경매의 효과

자, 그러면 유치권에 기한 경매의 결과 어떤 효과가 발생하게 되는 걸까요? 앞서 말씀드린 「민사집행법」 제274조제1항에 따라, 유치권에 기한 경매는 담보권 실행을 위한 경매의 예에 따라 진행됩니다. 


그러면 경매가 진행되면 유치권은 어떻게 되느냐? 우리 판례는 여기서 “유치권에 의한 경매도 강제경매나 담보권 실행을 위한 경매와 마찬가지로 목적부동산 위의 부담을 소멸시키는 것”이라고 하면서, “우선채권자뿐만 아니라 일반채권자의 배당요구도 허용되며, 유치권자는 일반채권자와 동일한 순위로 배당을 받을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11. 6. 15.자 2010마1059 결정).


학계에서는 위 판결에서 대법원이 이른바 ‘소멸주의(소제주의)’를 취했다고 평가하는데요, 이는 특별한 매각조건이 없는 한 유치권을 포함한 부동산 위의 부담(저당권 등)이 모두 소멸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 판결에서 대법원이 소멸주의를 취하는 바람에, 해당 판결 이후로는 유치권자가 스스로 경매를 신청할 이유는 더더욱 줄어들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서종희, 2022).


그런데 사실 유치권에 기한 경매에 따른 효과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사집행법」 제91조제5항과 이를 둘러싼 학설의 논란을 모두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까지 다루는 것은 본서의 범위를 넘는 것이므로, 관심이 있는 분들은 따로 찾아보시길 추천드리면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하나 상식(?) 차원에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유치권은 저당권, 소유권 등과 달리 등기되지 않는 권리라는 점이지요. 예를 들어 저당권에 의한 경매를 실시한다고 하면, 법원에서는 등기나 저당권 설정계약서를 보고 “아, 여기 땅에는 저당권이 설정되어 있군.” 이렇게 알 수 있지만, 유치권은 앞서 우리가 공부한 요건들을 충족하면 법률에 따라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등기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설령 있지도 않은 거짓말로 유치권이 있다고 주장을 해도 (소송을 통해 진실을 밝히지 않는 한) 제3자 입장에서는 그 유치권이 유효한지 아닌지 알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때문에 현실에서는 소위 ‘가장유치권 또는 허위유치권’의 문제가 늘 제기되고 있으며, 악질적인 의도로 존재하지도 않는 유치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유치권에 의한 경매를 신청할 때 (유치권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확인판결이나 공정증서 등을 제출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장건·우경, 2015).


그런데 공부를 위해 긴 시간을 들여 말씀드렸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유치권에 기한 경매’ 자체는 별로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맥빠지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유치권 자체는 빈번하게 문제되지만, 유치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스스로 직접 경매를 신청하기보다(오늘 공부한 제322조를 이용하기보다) 다른 채권자가 제기한 경매절차에서 “나 유치권자다!” 이렇게 주장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장건·우경(2015; 43면)에 따르면, 법원 실무상 유치권에 기한 경매의 실제 사례는 9건 정도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최종적으로 경매 낙찰까지 이루어진 사례는 6건에 불과하다고 할 정도입니다. 물론, 이것은 2015년 논문이니까 이후의 자료는 다시 조사가 필요하긴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치권에 기한 경매를 장황하게 말씀드린 이유는, 이런 논의가 유치권 자체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유치권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우선변제권이 없는지 등을 알고 있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긴 내용을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내일은 과실수취권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물권3(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19, 512-513면(홍동기).

김준호, 「민법강의(제23판)」, 법문사, 2017, 810면.

박동진, 「물권법강의(제2판)」, 법문사, 2022, 404면.

서종희, “부동산 민사유치권과 우선변제권 - 유치권의 우선변제권을 인정하자는 개정논의에 대한 검토 –”, 건국대학교 법학연구소, 일감부동산법학 제25호, 2022, 147면.

이상태, “부동산유치권에 의한 경매의 성질과 절차”, 건국대학교 법학연구소, 일감법학 제20호, 2011, 6-17면.

장건·우경, “유치권에 기한 경매에서 집행권원의 필요성”, 한국감정평가학회, 감정평가학논집 통권 제23호, 2015, 49면.

지원림, 「민법강의(제11판)」, 홍문사, 2013, 731면.



2024.1.22. 업데이트

매거진의 이전글 민법 제321조, "유치권의 불가분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