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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Apr 18. 2022

민법 제336조, "전질권"

제336조(전질권) 질권자는 그 권리의 범위 내에서 자기의 책임으로 질물을 전질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전질을 하지 아니하였으면 면할 수 있는 불가항력으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도 책임을 부담한다.


오늘은 전질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단어만 들었을 때에는 꽤 복잡한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이와 조금은 유사한 단어를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전세권을 공부하던 민법 제306조에서입니다. 그리고 제336조와 왠지 비슷한 구조인 것 같은 조문도 공부했습니다. 제308조에서입니다. 이미 공부하였던 내용을 되돌이켜 보고 복습해 보시면, 제336조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306조(전세권의 양도, 임대 등) 전세권자는 전세권을 타인에게 양도 또는 담보로 제공할 수 있고 그 존속기간내에서 그 목적물을 타인에게 전전세   또는 임대할 수 있다. 그러나 설정행위로 이를 금지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308조(전전세 등의 경우의 책임) 전세권의 목적물을 전전세 또는 임대한 경우에는 전세권자는 전전세 또는 임대하지 아니하였으면 면할 수 있는   불가항력으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그 책임을 부담한다.


우리는 이미 전전세의 개념을 배웠습니다. 여기서 앞에 붙는 ‘전(轉)’은 한자로 ‘옮겨가다’ 정도의 의미가 있고, 전전세는 이미 전세를 낸 것을 다시 전세 주는 것으로 말씀드렸던 바 있습니다. 오늘 공부하는 ‘전질권’에서의 ‘전’도 같은 한자를 씁니다. 즉, 전질이란 질권자가 자신의 채권자에 대한 담보로 질물 위에 다시 질권을 설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김준호, 2017).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자신이 갖고 있던 귀중한 시계를 나부자에게 맡기고, 질권설정계약을 한 후 100만원을 빌렸습니다. 그러면 나부자는 채권자이자 질권자가 되는 것이고, 철수는 채무자이자 질권 설정자가 됩니다.

그런데 나부자의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져서, 나부자는 돈이 어디 나올 데가 없나 궁리하다가 철수에게서 맡아 두고 있던 시계가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이에 나부자는 시계를 김이웃이라는 사람에게 넘기고 질권을 설정하면서 돈을 빌리려고 합니다.


이런 나부자의 행동은 가능할까요? 제336조는 이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일정한 조건을 지키면, 가능하다는 겁니다. 질권자(나부자)는 자신의 책임 하에서 그 권리의 범위 내에서 질물을 전질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336조에 따른 전질의 법적 성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학설이 갈립니다. 질권자가 질물 위에 다시 질권을 설정하는 것이라는 질물재입질설과, 질권뿐 아니라 피담보채권까지 함께 입질하는 의미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채권·질권 공동입질설이 대립하고 있습니다(박동진, 2022). 사실 이 내용까지 여기서 공부하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한 측면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후자가 다수설이라는 점만 이야기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하에서는 다수설인 공동입질설을 전제로 하고 논의를 진행할 것입니다. 심화학습을 원하시는 분들은 민법 교과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전질은 무제한으로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우선, 제336조 전단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권리의 범위 내’에서 가능합니다. 즉, 나부자가 처음에 질권자가 되면서 철수에게 100만원을 빌려주었는데, 나부자가 전질을 하면서, 그 피담보채권액 100만원의 범위를 넘어 200만원을 김이웃으로부터 빌릴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존속기간에 있어서도 제한을 받습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나부자가 철수에게 돈을 받기로 한 날(변제기)가 1월 27일인데, 정작 나부자는 김이웃에게 돈을 빌리면서 변제기를 1월 31일로 정했다고 합시다. 원래 채권보다도 변제기가 더 늦은 겁니다.


이렇게 되어 버리면, 1월 27일에 철수가 계약대로 나부자에게 100만원을 갚는다고 하더라도 철수는 시계를 바로 돌려받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나부자는 아직 김이웃에게 돈을 갚지 않았고(1월 31일까지니까), 김이웃은 자기 돈도 못 받았는데 유치하고 있는 시계를 되돌려줄 이유가 없거든요. 그렇게 되면 원래의 질권 설정자인 철수가 부당하게 피해를 보게 되어 버립니다. 이처럼 전질권의 피담보채권의 경우 그 변제기는 원질권의 피담보채권의 변제기보다 늦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만약 원질권의 권리 범위를 초과하는 경우(이를 초과전질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런 전질권은 원질권의 변제기 및 피담보채권의 범위 내에서만 유효할 것입니다(박동진, 2022). 

*여기서의 전질의 대항요건에 관한 내용을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이 부분은 사실 내일 공부할 내용과도 관련이 있어서, 내일 한꺼번에 알아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책임전질에 따른 효과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각각의입장에서 하나씩 살펴봅시다.


1. 전질권자(김이웃)의 입장

먼저, 전질권자(위의 사례에서 김이웃)의 입장에서 살펴봅시다. 김이웃이 자신의 돈을 받아낼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김준호, 2017: 833면).


①우선 김이웃은 전질권자로서 자신의 채권을 변제받을 때까지 질물(시계)을 유치할 수 있습니다. 전질권도 질권의 일종이니까, 제335조에서 살펴본 유치적 효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대항요건 부분은 제337조에서 살펴볼 테니 거기서 언급하겠습니다.

만약 유치적 효력에 질린(?) 원질권자(나부자)가 전질권자(김이웃)에게 직접 돈을 갚으면, 김이웃의 피담보채권은 소멸합니다. 즉, 전질권은 없어지는 것이지요. 이 경우 김이웃은 시계를 나부자에게 다시 돌려주면 됩니다. 나부자의 원질권은 아직 소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부자에게 돌려준다는 것이죠.


②다음으로, 김이웃은 질물을 경매에 부치거나 간이변제충당의 방법으로 돈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전질권자 역시 질권자이므로, 우선변제권을 갖고 있습니다. 김이웃이 시계를 경매에 넘겨서 낙찰된다면, 그 돈은 먼저 전질권자(김이웃)의 변제에 우선 충당됩니다.

예를 들어 나부자가 철수에게 빌려준 돈은 100만원, 김이웃이 나부자에게 빌려준 돈은 80만원이라고 합시다. 시계가 150만원에 낙찰된다면, 김이웃이 먼저 80만원을 회수해 갈 것입니다(기타 비용 등은 없다고 가정). 이와 같이 전질권자의 피담보채권이 만족을 얻어 소멸하면, 원질권의 피담보채권도 그 한도에서 소멸하게 됩니다(양창수·김형석, 2023). 따라서 나부자의 채권 100만원 중 80만원은 소멸하고 20만원을 받아가게 되며, 최종적으로 남은 50만원은 시계 주인인 철수가 가져가면 됩니다.


③셋째, 전질권자(김이웃)는 원질권자(나부자)뿐 아니라 생판 남인 질권설정자(철수)에게 자기 돈을 갚으라고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돈은 나부자가 빌렸는데 왜 철수가 돈을 갚아야 합니까?”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전질권자는 (나중에 공부할) 채권질권자와 같은 지위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채권질권자는 제353조제1항에 따라 채권을 직접 청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김이웃은 철수에게 80만원을 청구하고 수령하여 자신의 채권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위 ②번과 ③번의 경우에는 모두 채무자인 철수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므로, 전질권과 원질권의 피담보채권 모두가 변제기가 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2. 나부자(원질권자)의 입장

나부자의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나부자는 원질권자이면서, 전질권의 설정자이기도 합니다. 나부자는 스스로 전질권을 설정한 것에 대하여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책임을 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제336조 후단입니다. 전질을 ‘하지 않았다면’ 피할 수 있었던 불가항력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 질권자(나부자)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시계를 최종적으로 맡아 두게 된 김이웃은 그 시계를 자신의 창고에 넣어 두었는데, 창고에 불가항력적인 화재가 발생하여 시계가 전소되어 버린 경우에는 전질을 했던 나부자가 철수(시계의 원 소유자)에 대해 배상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애초에 나부자가 전질을 하지 않았다면 철수의 시계는 멀쩡했을 테니까요. 이와 같은 나부자의 책임에 대하여, 보통 교과서에서는 원질권자의 책임가중이라고 부릅니다.


다음으로, 나부자는 전질권을 소멸시킬 수 있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됩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공부할 제352조와 관련되어 있는데요, 전질권자는 채권질권자와 유사한 지위를 갖기 때문에 제352조가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부자가 갑자기 철수에 대한 자신의 (원)질권을 포기하거나 철수의 빚을 탕감해 버린다고 합시다. 그러면 원질권이 소멸함에 따라 전질권도 소멸하게 될 것이고, 김이웃은 자신의 담보권이 사라지는 피해를 받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 민법은 김이웃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고, 이에 나부자는 마음대로 자신의 질권을 포기할 수 없는 제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나부자(질권자)는 채무자(철수)에게 전질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거나(통지), 철수의 승낙을 받아야 대항요건을 갖출 수 있습니다. 대항요건에 관한 내용은 내일 공부할 제337조에 규정되어 있으므로, 해당 파트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3. 철수(채무자)의 입장

최초의 채무자인 철수의 입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만약 전질권자가 제337조의 대항요건을 갖춘 경우라면, 철수는 나부자에게 100만원을 갚아도 그 사실로써 전질권자인 김이웃에게 대항할 수 없습니다(김이웃의 동의가 없었던 경우). 자세한 내용은 내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전질의 개념에 대하여 공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학자들은 우리 민법에서 정하는 전질에는 2가지 종류가 있고, 제336조는 그 중 한 가지를 규정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공부한 유형의 전질을 책임전질이라고 부릅니다(자기의 책임 하에, 질권설정자의 승낙 없이도 전질을 한다는 의미). 


그리고 책임전질과 달리 질권설정자의 승낙을 얻어서 전질하는 경우를 승낙전질이라고 부릅니다. 왜 이렇게 나누냐면, 민법 제343조 때문입니다. 제343조는 제324조를 동산질권에 준용하도록 명시하고 있는데, 동조 제2항은 “유치권자는 채무자의 승낙없이 유치물의 사용, 대여 또는 담보제공을 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제336조는 승낙과 상관없이 전질이 가능한 것처럼 규정되어 있는데, 제343조(제324조제2항)를 해석하면 질권자는 채무자의 승낙이 있어야 전질(담보제공)이 가능한 것처럼 되어 있어 얼핏 두 조문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지요. 

제343조(준용규정) 제249조   내지 제251조, 제321조 내지 제325조의 규정은 동산질권에 준용한다.

제324조(유치권자의 선관의무) 
②유치권자는 채무자의 승낙없이 유치물의 사용, 대여   또는 담보제공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유치물의 보존에 필요한 사용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학설의 논란이 좀 있었는데, 학계의 다수 견해는 제336조와 제343조가 서로 다른 전질의 유형을 규정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래서 제336조를 ‘책임전질’로, 제343조(제324조제2항)를 ‘승낙전질’로 구분하여 부르기로 한 것입니다. 판례도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승낙전질은 책임전질과 무엇이 다른 걸까요? 적용되는 조문이 다른 것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고요, 가장 큰 차이는 우선 채무자(위의 사례에서는 철수)의 승낙을 받았느냐 아니냐, 그것일 겁니다.


그까짓 승낙이 뭐가 중요하냐 생각하실 수 있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철수에게 100만원을 빌려주고 시계의 질권자가 된 나부자가, 전질을 하려고 한다고 칩시다. 나부자는 이번에는 책임전질이 아니라 승낙전질을 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부자는 철수의 동의를 얻어서, 100만원이 아니라 150만원을 김이웃에게 빌리면서 전질을 할 수도 있습니다.


즉, 채무자(철수)의 승낙에 따라 나부자는 원질권의 피담보채권(100만원)을 넘는 범위에서 돈을 빌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변제기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습니다. 책임전질에서는 불가했던 일인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인 철수 본인이 나서서 승낙을 해줬기 때문인 것입니다.

*참고로, 학계의 통설은 승낙전질의 경우 책임전질과 달리 채권과 질권을 함께 입질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질물을 재입질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교과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채무자의 승낙이 있었던 만큼, 나부자는 제336조 후단의 책임 가중 조항도 적용받지 않고요, 내일 살펴볼 제337조도 적용받지 않아 상대적으로 훨씬 자유롭습니다.


또한, 승낙전질에서의 전질권은 원질권과는 아예 독립한 하나의 물권이라고 해석되기 때문에, 철수가 나부자에게 100만원을 갚는 등 사유로 원질권이 소멸한다고 하더라도 김이웃의 전질권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전질권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김이웃은 자신이 나부자에게 빌려준 150만원을 받을 때까지 시계를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보면 사실 승낙전질이 나부자 입장에서는 책임전질보다 훨씬 유리해 보이는데요, 실제로는 이런 것을 철수에게 허락받기가 쉽지는 않겠지요.


긴 내용을 살펴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내일은 (책임)전질의 대항요건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용담, 주석민법[물권(3)], 한국사법행정학회, 2011, 513면.

김준호, 「민법강의(제23판)」, 법문사, 2017, 830면.

박동진, 「물권법강의(제2판)」, 법문사, 2022, 427-428면.

양창수·김형석, 「권리의 보전과 담보(제5판)」(전자책), 박영사, 2023, 398면.



2024.1.25.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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