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법과의 만남 Jun 07. 2022

민법 제342조,"물상대위"

제342조(물상대위) 질권은 질물의 멸실, 훼손 또는 공용징수로 인하여 질권설정자가 받을 금전 기타 물건에 대하여도 이를 행사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그 지급 또는 인도전에 압류하여야 한다.


오늘도 낯선 단어가 나왔습니다. ‘물상대위’... 현실에서 이 단어를 써보신 적이 많지 않을 겁니다. 써봤다면, 아마 법조계에 이미 종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상대위(物上代位)라는 한자를 대충 읽어 보세요. 물건에 대하여(上) 어떤 무엇이 있는데, 그것이 자리·위치(位)가 바뀐다는(代) 것입니다.


학술적인 표현으로는, 물상대위란 담보물권의 목적물이 멸실, 훼손, 공용징수 등으로 인하여 “그 목적물을 대신(갈음)하게 된 금전 기타의 물건이 목적물 소유자에게 귀속되는 경우, 담보물권이 그 목적물을 대신(갈음)하는 것 위에 존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제342조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상태로는 무슨 내용인지 복잡하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예시를 읽기 전에, 제342조를 한번 소리 내어 읽어 보시고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생각해보시면 더 좋을 것입니다.

*공용징수의 의미에 대해서는 민법 총칙, 제187조에서 다룬 적이 있었으므로 별도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여기 철수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급전이 필요한 그는, 가보로 내려오는 금반지를 가져다 (역시나) 나부자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상하던 대로, 나부자와 질권설정계약을 맺었다고 합시다. 철수는 100만원을 빌려서 사업에 썼습니다. 금반지는 질권의 특성대로 나부자가 점유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나부자가 평소 나부자와 사이가 좋지 않던 김건달이라는 자가 나부자의 집에 쳐들어와 행패를 부리다가 그만 총을 발사해 버렸다고 합시다. 좀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의미만 이해하면 되니까 상관은 없습니다. 나부자는 다행히 총을 피했으나, 총탄이 철수의 금반지를 맞추고 그만 가루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깔끔히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이 경우, 살인미수나 총기 소유, 손괴죄 같은 형사법상의 문제는 제쳐 두고, 김건달은 남의 물건을 훼손하였으므로 금반지의 소유자인 철수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합니다. 철수는 김건달에 대하여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 당황스러운 사람은 나부자입니다. 철수는 자기 가보가 없어진 것이 충격이기는 해도, 어찌 되었든 김건달로부터 돈으로 받으면 됩니다. 하지만 나부자는 질물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철수가 빚 100만원을 갚지 않는다고 해도 이를 담보할 수단이 없습니다.


바로 이런 경우, 민법 제342조에 의하면 나부자(질권자)는 훼손으로 인하여 철수(질권설정자)가 받게 될 금전(손해배상금)에 대해서도 질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금반지라는 물건이 ‘손해배상금’으로 ‘대체’되었다(지위가 바뀌었다), 라는 겁니다. 이것을 모습만 바뀐 금반지라고 생각해서, 손해배상금에 대해서도 질권의 효력이 미치는 것으로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위라는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습을 바꾼 금전이나 기타 물건을 ‘대위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다만, 제342조는 문장에서 주술의 호응이 조금 이상합니다. 그래서 “질권자는 질물의 멸실, 훼손 또는 공용징수(公用徵收)로 말미암아 질권설정자가 받을 금전이나 그 밖의 물건에 대하여도 질권을 행사할 수 있다.”라고 표현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박동진, 2007).


따라서 나부자는 철수가 김건달로부터 받게 될 금전을 압류하여, ‘물상대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압류의 방법으로 하여야지, 나부자가 마음대로 김건달을 찾아가 그의 돈을 들고 나온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압류에 대하여는 공용징수와 마찬가지로 민법 총칙, 제168조에서 다룬 바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쉬어가는 김에 이런 생각을 한번 해봅시다. 위의 사례에서, 김건달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잠시 잊어버리도록 합시다. 만약 김건달이 아니라 나부자가 직접 금반지를 없애 버린 경우라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나부자가 집에서 권총으로 사격 연습을 하다가 실수로 금반지를 날려 버린 경우라면요?


이런 경우라면, 질권자의 과실로 인하여 질물이 멸실, 훼손된 경우이므로 질권자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고 물상대위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이태종, 2019). 나부자 잘못이니까,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제342조 단서를 봅시다. 여기서는 물상대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질권자가 대위물이 지급 또는 인도되기 '전에' 압류를 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례에서 보자면, 김건달이 손해배상금을 철수에게 건네주기 전에 나부자가 압류를 해버려야 한다는 건데요, 굳이 왜 미리 압류를 해야 하는 걸까요? 


그건 특정성의 문제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보면, 일단 질권설정자가 대위물, 특히 금전(돈)을 받게 되면 질권설정자가 원래 가지고 있던 재산(일반재산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과 섞여 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김건달에게 받은 손해배상금을 자신의 금고에 넣어 버리면, 원래 철수의 금고 안에 들어 있던 현금과 뒤섞여서, 무엇이 김건달에게 받은 것인지 헷갈리게 된다는 겁니다.


“어찌 되었건 간에 같은 돈 아닙니까?”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래도 법학에서의 논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철수가 원래 가지고 있던 재산에 대해서까지 질권의 효력이 미친다고 해버리면, 질권이라는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게 되어 버립니다. 


질권이란 질권설정계약을 한 물건에 한정해서 유치적 효력과 우선변제적 효력을 인정하여 주는 것인데, 계약의 대상이 되지도 않은 물건에 대해서 우선변제적 효력 같은 것을 무제한으로, 범위의 제한 없이 인정해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물건과 섞여 버리기 전에 구분 지을 수 있게 미리 압류를 하여야 하는 것이고, 이처럼 제342조의 근거를 특정성에서 찾는 견해가 우리 학계의 다수설입니다.


우리의 판례 역시, “민법 제370조, 제342조 단서가 저당권자는 물상대위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저당권설정자가 받을 금전 기타 물건의 지급 또는 인도 전에 압류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것은 물상대위의 목적인 채권의 특정성을 유지하여 그 효력을 보전함과 동시에 제3자에게 불측의 손해를 입히지 않으려는 데 있는 것”이라고 하여 같은 입장입니다(대법원 2002. 10. 11. 선고 2002다33137 판결).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아래의 3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물상대위가 인정됩니다.


1. 질물의 멸실, 훼손, 공용징수가 발생하여야 한다. 

말인즉슨 질물의 가치가 감소되는 사유가 발생하여야 한다는 것이죠. 벼락을 맞아 멸실될 수도 있고, 우리가 공부한 부합·혼화·가공 같은 사유로 없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물건에 여전히 질권을 실행할 수 있는 상태라면 굳이 물상대위를 인정할 필요는 없겠죠. 예를 들어 질물의 소유자가 바뀌는 정도라면, 소유자가 바뀌었어도 질권자는 질권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물상대위를 인정해주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이것을 법학에서는 추급이 가능한 경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추급이 가능하면 물상대위는 굳이 인정할 필요 없다는 것이죠).


2. 질권설정자가 대신 받을 금전이나 그 밖의 물건이 있어야 한다.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받은’이 아니라 ‘받을’이라는 겁니다. 이미 받은 게 아니라 장차 받게 될 돈(또는 물건)에 대해서 물상대위가 인정된다는 것인데요. 정확히 말하면 물상대위는 돈이나 물건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 아닙니다. 돈이나 물건에 대한 청구권(지급청구권 또는 인도청구권)이 바로 물상대위의 객체가 되는 것입니다.


3. 질권설정자가 금전이나 물건을 받기 전에 압류하여야 한다.

‘받을’ 돈이니까 이미 ‘받은’ 돈이어서는 안 되겠죠. 위에서 살펴본 내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받기 전에 압류를 해야 합니다. 


다만 받기 전에 왜 굳이 압류라는 방법을 취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학설의 논의가 좀 있는데, 다수설은 특정성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다고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만약 이미 질권설정자가 돈을 받아 버린다면, 질권자는 이제 물상대위권을 행사할 수는 없게 됩니다. 다만, 이러한 경우 대법원은 담보권 설정자가 얻게 된 이득을 부당이득으로 보아 담보권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구성하고 있는데요(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8다17656 판결: 사안은 저당권에 관한 내용), 나중에 부당이득 파트를 공부하신 후 한번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 우리는 지금까지 물상대위란 무엇인지 공부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왜 이런 제도가 존재하는가, 그 취지는 무엇인가 한번 생각해 볼까 합니다. 물상대위와 같은 제도는 왜 있는 걸까요?


우리 학계의 통설은 이렇게 봅니다. 담보물권은 (유치권을 제외하면) 우선변제권이 인정됩니다. 피담보채권을 회수하기 위해서 유사시(?)에는 물건을 처분해서 돈을 우선 받을 수 있는 권리라는 겁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그 물건의 가치가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다면, 그 바뀐 것에 대해서도 채권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힘을 유지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물상대위인 것입니다. 


물상대위는 이처럼 우선변제권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우선변제권이 인정되지 않는 유치권에는 물상대위도 인정되지 않지요. 


그리고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물상대위는 질권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우선변제권이 있는 담보물권이라면 자연스럽게 인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전세권이나 저당권에 대해서도 물상대위는 인정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물상대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내일은 준용규정에 대해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물권3(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19, 638면(이태종).

박동진, “알기 쉬운 민법 만들기”, 법무부, 2007.12., 46-47면.




2024.1.26. 업데이트

매거진의 이전글 민법 제341조, "물상보증인의 구상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