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0조(선택채권) 채권의 목적이 수개의 행위 중에서 선택에 좇아 확정될 경우에 다른 법률의 규정이나 당사자의 약정이 없으면 선택권은 채무자에게 있다.
오늘은 선택채권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선택채권이라는 단어에서 느낌이 오시겠지만, 선택채권은 무언가 선택을 하는 채권입니다. 즉, 여러 개의 서로 다른 급부 중에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따라 어느 급부가 채권의 목적으로 확정되는 채권을 선택채권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철수에게 만년필 A와 B가 있다고 합시다. 두 만년필은 각기 브랜드도 다르고, 질감이나 기능도 달라서 특색이 뚜렷합니다. 영희는 철수와 50만원에 만년필을 사기로 계약하면서, 다만 3일 뒤에 잔금을 주면서 A와 B 중에 무엇을 살 것인지 선택하기로 약정하였습니다. 이것이 선택채권입니다. 3일이 지나기 전에는 철수도 영희가 A와 B 중에 무엇을 살 것인지 모릅니다. 당일이 되면 알겠죠.
선택채권의 개념이 다른 개념과 헷갈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금 명확하게 확인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첫째, 선택채권에서의 '선택'의 대상이 되는 여러 급부는 아무것이나 다 카운팅하는 것은 아니고, 선택의 의미가 있을 정도로 각기 다른 개성을 갖고, 독립적인 가치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이혁, 2020). 만약 위의 사례에서 만년필이 브랜드도 같고 기능과 속성, 가격까지 같은 것이라면 이것은 선택채권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최소한 만년필이라는 동종의 제품이더라도, 다른 개성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여기서의 선택은 급부 간의 선택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단순히 만년필 1개를 언제 어디서 줄 것인지 선택하는 채권은 선택채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디까지나 '급부'의 선택이 아니라 '시기 또는 장소'의 선택이 되니까요.
둘째, 선택채권은 종류채권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우리는 앞서 종류채권에서, ①채무자가 이행에 필요한 행위를 완료하거나 ②채권자의 동의로 이행할 물건이 지정되는 경우, '특정'이 일어난다는 것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래서 선택에 따라 물건이 '특정'되는 선택채권과, '특정'이 발생하면 특정물채권으로 전환되는 종류채권이 왠지 비슷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양자는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앞으로 차차 공부할 것입니다만, 선택채권은 종류채권에 비하여 ①이행불능에 따른 특정이 인정된다는 점, ②선택에 소급효가 인정된다는 점, ③급부의 수가 한정되어 있고 급부의 개성이 중시된다는 점 등의 차이점이 있습니다(송덕수, 2020). 다만 구체적인 차이점은 내일부터 공부한 조문들에서 뚜렷이 확인할 수 있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해당 파트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선택채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택권'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택권이 채권자에게 있느냐, 아니면 채무자에게 있느냐? 이 대답에 따라 선택채권의 결말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선택권은 여러 개의 급부 가운데 하나의 급부를 선정하는 의사표시로서, 선택권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므로 형성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송덕수, 2020).
이런 선택채권의 선택권 결정의 문제는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당사자 간의 약정 등 법률행위에 의하여 선택권이 결정되는 경우
2.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선택권이 결정되는 경우
3. 아무런 약정이나 정해진 것이 없는 경우
1번 케이스는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 사례에서, 구매자인 영희가 3일 뒤에 잔금을 치르면서 어떤 만년필을 고를 것인지 택하기로 했었지요. 이와 같이 철수와 영희가 서로 합의한 경우라면 선택권이 채권자인 영희에게 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2번 케이스는 법률행위가 아니라 법률에 의해서 선택권이 정해지는 것인데, 우리는 이런 사례를 이미 공부한 바 있습니다. 먼저 ①대리인인 척 계약을 맺었던 사람이 대리권을 증명하지 못한다거나 본인의 추인도 못 받거나 하는 경우에는 계약 상대방의 '선택'에 따라 계약을 이행할 책임 또는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습니다(제135조제1항). ②또한, 점유자가 점유물에 지출한 유익비에 대해서는 가액의 증가가 현존하는 경우에 회복자의 '선택'에 의하여 지출금액 또는 증가액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제203조제2항). ③유치권자의 유익비 지출에 대해서도 유사한 규정이 존재합니다(제325조제2항).
제135조(상대방에 대한 무권대리인의 책임) ① 다른 자의 대리인으로서 계약을 맺은 자가 그 대리권을 증명하지 못하고 또 본인의 추인을 받지 못한 경우에는 그는 상대방의 선택에 따라 계약을 이행할 책임 또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② 대리인으로서 계약을 맺은 자에게 대리권이 없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 또는 대리인으로서 계약을 맺은 사람이 제한능력자일 때에는 제1항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제203조(점유자의 상환청구권) ①점유자가 점유물을 반환할 때에는 회복자에 대하여 점유물을 보존하기 위하여 지출한 금액 기타 필요비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점유자가 과실을 취득한 경우에는 통상의 필요비는 청구하지 못한다.
②점유자가 점유물을 개량하기 위하여 지출한 금액 기타 유익비에 관하여는 그 가액의 증가가 현존한 경우에 한하여 회복자의 선택에 좇아 그 지출금액이나 증가액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
③전항의 경우에 법원은 회복자의 청구에 의하여 상당한 상환기간을 허여할 수 있다.
제325조(유치권자의 상환청구권) ①유치권자가 유치물에 관하여 필요비를 지출한 때에는 소유자에게 그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
②유치권자가 유치물에 관하여 유익비를 지출한 때에는 그 가액의 증가가 현존한 경우에 한하여 소유자의 선택에 좇아 그 지출한 금액이나 증가액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법원은 소유자의 청구에 의하여 상당한 상환기간을 허여할 수 있다.
*다만, 민법 제135조제1항의 경우 선택채권이 아니라 청구권의 선택적 경합으로 보는 견해도 있기는 합니다. 청구권의 선택적 경합은 여러 청구권이 발생하여 경합하는 사례로서 1개의 청구권이 발생하고 단지 급부가 여러 개에 불과한 선택채권과는 개념상 다르다는 것입니다(이혁, 2020; 280면).
3번 케이스는 법률행위로도, 법률의 규정으로도 선택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애매할 때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위의 사례에서 철수와 영희 사이에 선택권과 관련한 약정이 없었던 경우인데, 바로 이러한 경우 민법 제380조는 선택권은 채무자인 철수에게 있다고 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제380조에서 채무자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민법의 태도가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견해도 있습니다(지원림, 2011). 세부적인 내용은 참고문헌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선택채권의 개념과 선택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한동안 선택채권에 대해 다룰 예정이고 중요한 내용이 많으므로, 조문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내일은 선택권의 이전에 대해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용덕, 「주석민법 채권총칙1(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20, 273면(이혁).
송덕수, 「채권법총론(제5판)」, 박영사, 2020, 98면.
지원림, 「민법강의(제11판)」, 홍문사, 2011, 90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