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제387조, "이행기와 이행지체"

by 법과의 만남
제387조(이행기와 이행지체) ①채무이행의 확정한 기한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는 기한이 도래한 때로부터 지체책임이 있다. 채무이행의 불확정한 기한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는 기한이 도래함을 안 때로부터 지체책임이 있다.
②채무이행의 기한이 없는 경우에는 채무자는 이행청구를 받은 때로부터 지체책임이 있다.


오늘부터는 드디어 제3편(채권) 제1장(총칙) 제1절(채권의 목적)을 마치고, 제2절(채권의 효력)을 시작합니다. 이행기와 이행지체의 개념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채권이란 채무자에 대해서 특정한 행위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러한 개념으로부터 채권의 효력(청구력, 급부보유력, 소구력, 강제집행력)에 대한 논의도 나오지만, 해당 파트는 이 책에서 다루기에는 너무 길고 원론적인 내용이므로, 깊은 공부를 원하는 분들은 교과서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채무를 이행하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채무자가 이행하지 않는다면? 채무자를 패면 될까요? 물론 패면 안 되고, 우리 민법은 채권관계에서 채무가 이행되지 않는 경우를 규율하고 있습니다. 채무가 이행되지 않는 경우는 크게 2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을 겁니다(나중에 공부하겠지만 일단 쌍무계약이라고 전제하겠습니다).

1. 채무자가 그냥 일부러 이행을 안 하거나, 아니면 본인의 과실로 이행을 안 하는 경우
2. 누구도 잘못한 것은 없는데, 어쩔 수 없는 사유로 이행을 못하게 된 경우
3. 채권자가 뭘 잘못해서 억울하게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된 경우


딱 생각해도 1번과 2번, 3번은 좀 법률에서 다르게 취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2번의 경우는 좀 특별한 케이스인데, 이 부분은 나중에 제537조(채무자위험부담주의)에서 다루고, 3번의 경우는 제538조(채권자귀책사유로 인한 이행불능)에서 공부할 예정이니 일단 여기서는 그냥 지나갑니다.


1번의 경우가 지금부터 열심히 살펴볼 케이스인데요, 민법에서는 이러한 경우를 '채무불이행'이라고 합니다. 즉, 채무불이행이란 "채무자가 일부러(고의) 또는 실수 등 잘못으로(과실) 채무의 내용에 따른 이행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것"을 의미합니다. 즉 채무자의 ①귀책사유(고의 또는 과실)와 ②채무의 미이행이라는 2가지 요건이 충족되면 채무불이행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채무불이행이라는 개념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학설의 논의가 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채무불이행의 개념을 광의와 협의로 나누어, 광의의 개념은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로, 협의의 개념은 광의의 채무불이행 가운데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이 있으며 위법한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보기도 합니다(김상중, 2020). 여기서는 일단 고의나 과실을 포함한 개념 정의를 소개드렸는데요, 자세한 학계의 논의를 알고 싶은 분은 참고문헌이나 논문 사이트를 이용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렇다면 채무불이행은 어떤 유형들이 있을까요? 여기에는 다소 학자들 간의 의견이 엇갈립니다. 어떤 연구자는 3유형론(이행지체, 이행불능, 불완전이행)을 제시하는가 하면, 2유형론(이행지체, 이행불능)을 제시하거나 4유형론(이행지체, 이행불능, 불완전이행, 이행거절)을 제시하는 학자도 있고 여하튼 참 의견이 다양합니다(고홍석, 2020). 확실한 것은 학자들의 의견이 어떻건 우리 민법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채무불이행의 유형은 '이행지체'(제387조)와 '이행불능'(제546조 등)의 2가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머지 채무불이행의 유형(불완전이행, 이행거절 등)은 학계와 판례 등에 따라 제시된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학설이 나뉘기는 합니다만 대체로 다수의 견해는 3유형설(이행지체, 이행불능, 불완전이행)을 취하여 왔다고 합니다. 다만 판례에서는 저 3유형 외에 추가로 이행거절이라는 유형을 인정하고 있고, 이러한 판례의 태도를 놓고서도 학계의 의견 대립이 있다고 하니(김성수, 2018),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문헌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공부하는 제387조가 바로 채무불이행의 유형 중 '이행지체'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제1항에서는 채무이행의 기한이 확실히 정해져 있는 경우, 채무자는 기한이 도래한 때부터 '지체'의 책임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한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에는, 채무자는 기한이 도래한 것을 알게 된 때부터 지체의 책임이 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이행지체는 채무자가 고의 또는 과실로 채무의 이행을 해야 되는 시기가 지났는데도 이행을 안 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우선 이행지체가 발생하는 3가지의 경우를 예시를 들어 살펴봅시다.


철수의 볼펜을 영희가 10만원에 사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합시다. 여기서 이행지체가 발생하는 3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기본적으로 채무자인 철수의 고의와 과실로 인한 불이행이 존재하고, 영희는 10만원을 철수에게 지급했다는 것을 가정합니다).

1. 볼펜을 넘겨주기로 한 날이 2023년 1월 1일인 경우
2. 철수에게는 병든 아버지가 있는데, 그 아버지가 이 볼펜을 너무 아끼길래 철수가 영희와 계약하면서 "우리 병든 아버지가 아끼는 볼펜이니, 주기는 주는데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주면 안 되겠냐"라고 했고, 영희도 동의한 경우
3. 언제 볼펜을 달라고 딱히 철수와 영희가 합의하지 않은 경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오늘 공부하는 민법 제387조제1항 전문(첫 번째 문장)이 1번의 사례를 다루고, 제1항 후문(두 번째 문장)이 2번의 사례를, 그리고 제2항이 3번의 사례를 규율하고 있습니다.


1번과 같은 채무를 기한이 '확정'되어 있다고 해서 확정기한이 있는 채무라고 합니다. 영희는 23년 1월 1일이 되어 볼펜 값을 입금했는데, 철수가 볼펜을 안 보내줍니다. 그렇다면 제387조제1항 전문에 따라 기한이 이미 도래하였으므로, 채무자인 철수는 이행지체의 책임을 지게 됩니다. "기한이 도래한 때부터" 책임이 있다고 되어 있어서 살짝 표현이 헷갈리기는 하는데, 정확히는 2023년 1월 2일부터 이행지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싫으면 철수는 계약한 대로 1월 1일에 채무를 이행하면 됩니다.

*이행지체의 책임을 지게 되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는 나중에 공부할 것입니다.


2번과 같은 채무는 기한이 없는 건 아닌데 확실하게 정해진 건 아니라고 해서 불확정기한이 있는 채무라고 합니다. 철수의 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으신 것은 안타깝긴 한데 사실 정확히 몇 월 며칠에 철수의 아버지가 돌아가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도 기한 자체는 있습니다. 언젠가는 철수의 아버지는 돌아가실 것이고, 그러면 철수는 영희에게 볼펜을 넘겨주어야 할 것입니다.

*굳이 철수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슬픈(?) 내용을 예시로 든 이유는, 실제 정지조건과 불확정기한의 구별이 실제에서는 다소 혼란스러운 측면이 있어서, 그나마 명확하다고 생각되는 예시를 골랐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은 여기서 다루기에는 복잡하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이재형 외(2021)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2번의 경우, 제387조제1항 후문에 따르면 정확하게는 '철수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시점'이 아니라 '철수가 아버지의 사망을 알게 된 시점'부터 철수는 이행지체의 책임을 지게 됩니다. 철수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철수가 급한 일로 해외에 있어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늦게 듣게 되었는데, 영희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볼펜을 넘겨주지 않다니, 이행지체 아니냐?"라고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이 발생한 시점'이 아니라 '사실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을 기준으로 합니다.


3번과 같은 채무는 채무이행의 기한이 없다고 해서 기한의 정함이 없는 채무라고 합니다. 당사자가 언제 볼펜을 받겠다고 명확히 약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기한은 없고, 법률의 규정에서 정해진 것도 아닌 상황입니다. 제387조제2항은 이와 같은 경우, 영희(채권자)가 철수(채무자)에게 채무의 이행청구(최고)를 한 때부터 (철수에게) 이행지체의 책임이 발생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받은 때"라고 법문에 적혀 있어서 좀 헷갈리긴 하는데, 그 다음날부터 이행지체 책임이 발생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영희의 이행청구가 9월 1일이면, 철수의 이행지체책임은 9월 2일부터 발생합니다.

*참고로, 제387조제2항의 내용과 달리 실제로는 조금 다르게 적용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외로 나중에 공부하는 소비대차(흔히 돈 꿔주고 받는 것도 여기에 포함)의 경우, 제603조제2항에 따라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최고한 후, '상당한 기간'이 지나고 나서야 지체책임이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제387조제2항과 제603조제2항의 관계에 대해서는 학설이 좀 있는데(고홍석, 2020; 459-460면), 이 역시 궁금한 분들을 위해 참고문헌에 기재하여 두었습니다. 또 다른 예외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은 성립과 동시에 지체책임이 발생하는 것으로 판례는 보고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오늘은 채무불이행의 개념, 그리고 그 유형 중 하나로 이행지체의 개념을 살펴보았습니다. 둘 다 매우 중요한 개념인지라 약간 긴 글이 되었는데요, 의미가 큰 개념은 가볍게만 다루고 넘어가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 부탁드립니다.

내일은 기한의 이익과 상실에 대해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채권총칙1(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20, 386-387면(고홍석).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채권총칙1(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20, 602-603면(김상중).

김성수, "채무불이행의 신유형으로서의 이행기 전 이행거절-비교법적 연구와 우리 민법의 시사점을 중심으로-", 「비교법연구」 제18권제1호, 2018.4., 45-46면.

이재형·허서윤·김제완, "금전채권에 관한 불확정기한과 정지조건의 구별기준 - 영미법상 pay-when 조항과 pay-if 조항의 시사점 -", 「연세법학」 제37권, 2021, 309-353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민법 제386조, "선택의 소급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