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제386조, "선택의 소급효"

by 법과의 만남
제386조(선택의 소급효) 선택의 효력은 그 채권이 발생한 때에 소급한다. 그러나 제삼자의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


제386조는 선택의 소급효에 대한 내용입니다. 소급이란 어떤 의미인지, 민법총칙 편에서 이미 공부하였기 때문에 알고 계신다고 가정하고 논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선택채권에서 선택이 발생하게 되면, 그 효력은 채권이 '발생한 시점'으로 소급한다고 합니다.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면, 처음부터 특정물채권이 성립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겠다는 것입니다(김준호, 2017).


예를 들어, 철수와 영희가 계약을 했는데, 철수가 가진 세상에 둘도 없는 만년필과 세상에 1개뿐인 손수건 중 어느 하나를 영희가 사기로 했다고 합시다. 다만, 선택권자는 (물건을 받기로 한 채권자인) 영희라고 가정합시다. 계약을 체결한 날은 2022년 10월 1일이고, 영희가 선택권을 행사해서 물건을 받기로 한 날은 2022년 10월 3일입니다. 그래서 10월 3일에 영희가 '만년필'을 선택하였다면, 그 선택은 10월 1일로 돌아가 10월 1일부터 이미 '만년필을 주기로 한 채권채무관계'가 성립한 것으로 보기로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은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으실 겁니다. 이런 조문은 도대체 왜 두고 있을까요?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제386조가 존재하는 이유는 어제 공부한 제385조제2항 때문입니다. 결국 제385조제2항을 위한 '명분'을 만들어 주려는 건데요.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제 제385조제2항은 '선택권이 없는 사람의 과실'로 이행불능이 된 경우에 적용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를 들어 봅시다. 위의 사례에서는 영희(물건을 인도할 채권자)가 선택권자였으므로, 선택권이 없는 철수(채무자)에게 초점을 맞추어 봅시다. 선택권이 없는 채무자인 철수가, 10월 2일에 실수로 자신의 만년필을 망가뜨려 버렸다고 합시다. 그럼 이제 제385조제2항이 적용되겠죠? 여기에 따르면 선택권 없는 자의 과실로 인한 이행불능은 선택권에 영향을 주지 못하므로, 선택권자인 영희는 여전히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영희는 만년필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고, 아니면 잔존하는 손수건을 선택해서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이론적인 반론(?)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어제 잠깐 나왔던 질문과 일맥상통합니다.

"10월 3일, 즉 선택권을 행사하는 시점에 이미 만년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만년필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10월 3일에 영희가 만년필을 선택해서 특정물채권이 된다면, 이 채권은 아예 처음부터 원시적 불능인 것이어서 채권 자체가 무효입니다. 따라서 영희와 철수 사이에는 아무런 법적 관계도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손해배상청구고 뭐고 없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이론적인 얘기긴 한데 나름대로 틀린 말은 아닙니다. 선택채권이 특정물채권으로 전환되는 순간이 10월 3일이라면, 특정물채권은 특정물의 인도가 목적인 채권이므로 '만년필'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그 채권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을 목적으로 하는 채권이 되어 버리니, 무효가 되는 거죠. 제385조제2항의 의미가 없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선택채권이 특정물채권으로 전환되는 시점을 10월 3일이 아니라 10월 1일로 소급시켜 버리면, 10월 2일에 발생한 철수의 과실에 의한 이행불능은 원시적 불능이 아니라 후발적 불능이 되고, 선택권자이자 채권자인 영희는 철수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됩니다. 결국 계약을 통째로 무효로 만들지 않고 유효하게 보면서, 이미 없어져 버린 것을 선택하게 만들기 위한 명분을 갖추기 위해 제386조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386조 단서는 선택의 소급효는 제3자의 권리를 해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선택의 소급효를 인정한다고 해서 제3자의 권리를 해칠 수 있는 사례 자체를 상상하기 어려워 이 단서 부분은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입니다. 즉, 무의미한 규정이라는 거지요(이혁, 2020).


오늘은 선택채권에서의 선택이 갖는 소급효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길게 뭘 써놨는데, 실제로는 별거 아닌 이유여서 이게 뭔가 싶으실 겁니다. 하지만 가끔 이런 이론과 명분(?)에 대한 고민도 학자들이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이제 채권의 총칙 파트를 마치고, 내일부터는 드디어 채권의 효력 파트로 넘어가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준호, 「민법강의(제23판)」, 법문사, 2017, 978면.

김용덕, 「주석민법 채권총칙1(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20, 295면(이혁).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민법 제385조, "불능으로 인한 선택채권의 특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