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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Aug 16. 2023

민법 제397조, "금전채무불이행에 대한 특칙"

제397조(금전채무불이행에 대한 특칙) ①금전채무불이행의 손해배상액은 법정이율에 의한다. 그러나 법령의 제한에 위반하지 아니한 약정이율이 있으면 그 이율에 의한다.
②전항의 손해배상에 관하여는 채권자는 손해의 증명을 요하지 아니하고 채무자는 과실없음을 항변하지 못한다.


제397조는 금전채무에서의 불이행이 있었을 때 적용되는 '특칙'을 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는 우리가 공부한 제390조(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 제393조(손해배상의 범위) 등이 적용되어야 하는데, 거기에 추가로 특별한 규정을 하나 더 넣은 것입니다. 


왜 이렇게 금전채무에 대해서는 특별하게 다루고 있을까요? 우선 금전채무가 현실에서 굉장히 흔하게 발생한다는 것도 고려사항이긴 합니다만, 금전채무 자체의 특수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쌀 10가마니를 주기로 한 채무를 불이행한 경우와 돈 1,000만원을 주기로 한 채무를 불이행한 경우를 비교해 봅시다. 1,000만원을 주지 않으면, 당장 채권자는 그 돈을 굴릴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이자에 해당하는 손해는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뻔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반면 쌀 10가마니를 못 받으면, 분명 뭔가 손해가 있긴 있을 것인데 어떤 손해가 얼마나 발생할지 명확하게 바로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금전채무의 경우 일반적으로 쉽게 인정할 만한 명확한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되기 때문에, 제397조와 같은 특칙으로 규율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판례 역시, 제397조제1항의 취지에 대하여 "오늘날 금전의 범용성으로 인하여 그 이용양태는 무궁무진하므로 금전채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이용가능성의 박탈이라는 손해가 채권자에게 발생하리라는 것은 쉽사리 일반적으로 추인되는 반면 위와 같은 일반원칙에 의하면 그 구체적인 배상액의 산정은 매우 다양하여 균형을 잃을 수 있으므로, 금전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문제를 균일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추상적인 손해로서 법정이율로 산정한 액을 기준으로 하는 민법 제397조 제1항 본문을 마련하였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9다85342, 판결).


제1항을 봅시다. 금전채무불이행의 손해배상액은 법정이율에 따라 계산한다고 합니다. 다만, 약정이율이 있으면 그걸 기준으로 계산한다고 하네요. 법정이율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공부하였습니다. 제379조에 따르면, 민법이 정하는 법정이율은 연 5%입니다. 약정이율과 약정이자 등의 개념에 대해 기억이 잘 안 나는 분들은 제379조 부분을 복습하고 오셔도 좋습니다.

제379조(법정이율) 이자있는 채권의 이율은 다른 법률의 규정이나 당사자의 약정이 없으면 연 5푼으로 한다.


그런데 여기서 "약정이율"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사자 간에 미리 정한 이율이 약정이율일 텐데요, 한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다음 2개의 사례를 비교해 보시죠.

(1) 철수는 나부자에게 1억원을 빌리고, 12월 31일까지 갚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갚을 때에는 이자율을 연 5%로 쳐서 갚기로 했습니다.

(2) 철수는 나부자에게 1억원을 빌리고, 12월 31일까지 갚기로 했습니다. 갚을 때에는 이자율을 연 5%로 쳐서 갚기로 했습니다. 추가로, 만약 12월 31일까지 돈을 갚지 못할 경우, 이후의 지연손해에 대해서는 연 7%의 이율로 쳐서 갚기로 했습니다.


사례를 보면, (1)과 (2)는 분명히 다릅니다. (2)의 사례에서 약정이율은 5%일까요, 아니면 7%일까요? 그리고 (1)의 사례에서는 약정이율을 그냥 5%로 보면 되는 걸까요? 이것은 약정이율의 개념을 단순히 변제기(이행기)까지의 원본(원금)의 사용대가에 불과한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를 계산하기 위한 이율(이를 지연손해금률 또는 지연이율이라고도 합니다)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원칙적으로는 제397조가 '채무불이행'에 대한 조문이니까, 제1항 단서에서 말하는 약정이율도 자연히 지연손해금률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겁니다. 논리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2) 사례에서는 12월 31일까지 원본에 대한 이자는 5%로, 그 이후에 발생한 금전채무불이행에 대해서는 7%를 적용하면 됩니다. 제397조제1항 단서에서 말하는 약정이율은 7%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1)의 사례입니다. (1)에서 철수가 돈을 못 갚을 경우, 이자를 어떻게 계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서로 합의된 바가 없습니다. 아마 당연히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철수가 돈을 못 갚으면 어떻게 될까요? 두 사람이 합의한 이율은 어디까지나 변제기까지 원본에 적용되는 이자이니까, 그 이후에는 그냥 나부자는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걸까요?


우리 대법원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소비대차에 있어 그 변제기 후의 이자약정(엄밀한 의미로는 지연손해)이 없는 경우에는 특별한 의사표시가 없는 한 그 변제기가 지난 후에도 당초의 약정이자를 지급하기로 한 것으로 보는 것이 대차관계에 있어서의 당사자의 의사라고 할 것"이라는 겁니다(대법원 1981. 9. 8., 선고, 80다2649, 판결). 쉽게 말하면, 특별한 의사표시가 없었다면, 원래 변제기 전에 받기로 했던 이자를 근거로 지연손해금을 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즉, 12월 31일 이후에는 연 5%로 지연손해금을 계산하게 될 것입니다.

*변제기 이후의 이율 약정이 없는 경우에, 학설과 판례가 지연손해금률을 변제기까지의 이율로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이런 견해에서는 당사자 간의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오히려 법정이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단지 변제기까지의 이율이 법정이율보다도 더 높은 예외적인 경우에는 따로 검토를 해야 한다는 건데요, 세부적인 내용은 참고문헌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최수정, 2010).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고민해볼 문제가 있습니다. 약정이율이 법정이율보다 높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약정이율이 법정이율보다 낮으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철수가 나부자에게 돈을 빌리면서 12월 31일을 변제기로 하고, 변제기까지 원본에 대한 이자율을 3%로 했다고 합시다. 지연손해금률에 대해서는 별도로 약정하지 않았습니다.


판례의 태도에 따를 경우, 지연손해금률을 별도로 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원래 변제기까지 받기로 했던 이자율 3%를 적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적용하게 되면 실제 법정이율(5%)보다도 낮은  금리(3%)가 적용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일까요?


예를 들어 나부자가 처음부터 철수에게 그냥 무이자로 돈을 빌려줬다고 해봅시다. 다른 특별한 약정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변제기까지 철수는 원본(원금)만 갚으면 됩니다. 철수가 여기서 돈을 안 갚는 경우, 무이자 약정이지만 그래도 채무불이행이 되고, 이런 경우에도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지연손해금에는 법정이율 5%가 적용됩니다.


그렇다면, 3%가 적용될 경우 나부자는 아예 무이자로 돈을 빌려줬을 때보다도 (지연손해금을 받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최소 5%는 보장을 해주는 것이 나부자에게는 형평에 맞는 것이 될 겁니다.


그래서 우리 판례는, "민법 제397조제1항 본문에서 금전채무불이행의 손해배상액을 법정이율에 의할 것을 규정하고 그 단서에서 “그러나 법령의 제한에 위반하지 아니한 약정이율이 있으면 그 이율에 의한다”고 정한다. 이 단서규정은 약정이율이 법정이율 이상인 경우에만 적용되고, 약정이율이 법정이율보다 낮은 경우에는 그 본문으로 돌아가 법정이율에 의하여 지연손해금을 정할 것이다."라고 하여, 제397조제1항 단서는 약정이율이 법정이율보다 같거나 높은 경우에 적용된다는 예외를 선언하였던 바 있습니다(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9다85342, 판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제2항을 보겠습니다. 금전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에서는, 채권자는 손해를 증명할 필요가 없고, 채무자는 과실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항변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원래 우리가 공부한 '일반적인' 채무불이행의 경우, 채권자는 채무가 있었는데도 불이행이 있었고, 그로 인한 손해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제390조 본문), 채무자는 자신의 고의 또는 과실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제390조 단서). 그리고 손해 역시 통상손해와 특별손해로 나누는 기준에 따라서 검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제393조).


그런데 제397조제2항의 존재로 인하여 금전채무불이행에서는 특별한 일이 벌어집니다. 먼저 상대방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것만 입증할 수 있으면, 채권자는 손해를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채무자는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불가항력이었다"라는 변명으로 손해배상책임을 피해 갈 수 없게 됩니다. 즉, 채권자 입장에서 아주 수월하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393조와 달리, 통상 손해 이런 것 따질 거 없이 그냥 이율에 따라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특별한 지위를 금전채무불이행에 부여하는 이유는, 현금(돈)이라는 것은 채무불이행이 있으면 통상 기회비용이 발생하여 손해가 발생하는 것이 뻔히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일정 수준의 손해가 발생할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결국 누군가에게 현금을 빌렸을 때에는, 빌렸다는 사실만 명확하면, 안 갚을 시 거의 확정적으로 소송에서 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오늘은 금전채무불이행의 특칙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내일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대해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최수정, "금전채무불이행의 특칙에 대한 재검토 - 손해배상액을 중심으로 -", 「법조」 통권 제648호, 2010, 63-6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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