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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Aug 07. 2023

민법 제396조, "과실상계"

제396조(과실상계) 채무불이행에 관하여 채권자에게 과실이 있는 때에는 법원은 손해배상의 책임 및 그 금액을 정함에 이를 참작하여야 한다.


제396조의 제목은 '과실상계'입니다. 민법에서 처음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과실'이라는 단어는 자주 사용해 왔는데, '상계'라는 단어는 아직 제대로 살펴본 적이 없습니다. 상계(相計)를 한자로 풀어쓰면 '서로 상', '계산할, 셈할 계'가 됩니다. 직역하자면 "서로 계산한다" 정도가 되는 것이죠. 


단순한 예를 들겠습니다. 철수는 영희에게 100만원을 빌려준 적이 있습니다. 영희에게 그럼 100만원을 받아야겠지요. 그런데 좀 더 예전에는 반대로 철수가 영희에게 30만원을 빌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철수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원래는 너한테 100만원을 받아야 하지만, 너한테 내가 30만원을 빌린 적이 있으니 30만원을 빼자. 그러면 너는 70만원만 갚으면 되겠다." 굳이 번거롭게 철수가 100만원 받은 다음 다시 그중에서 30만원 떼어서 영희에게 필요는 없겠죠. 귀찮잖아요. 즉, 거칠게 표현하면 서로 까주는(?) 것이 바로 상계입니다. 상계는 나중에 채권의 소멸사유 관련 파트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인데, 여기서는 일단 단순하게 까준다는 개념 정도만 알면 충분합니다.

*다만, 나중에 공부하게 될 '상계'(제492조 이하)에서의 상계의 의미와, 제396조에서 말하는 '상계'의 의미는 서로 법적으로 같은 뜻은 아닙니다. 제492조 이하에서의 상계는 채권소멸원인 중 하나로서 상계의 의사표시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고 당사자의 과실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그냥 채권과 채무가 대등액에서 소멸하는 것입니다. 반면 오늘 공부하는 상계는 의사표시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배상의무자의 과실에 따라 서로의 권리가 대등액에서 소멸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과실상계'라는 제목은 바꿀 필요가 있으며, 특히 제396조에서의 과실에는 순수한 의미의 과실뿐 아니라 고의의 개념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조 제목을 '과책등의 참작'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으므로 참고 바랍니다(박동진, 2015). 하지만 일단 지금은 제목에 상계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고, 무언가를 까준다는 의미에서는 제492조 이하에서의 상계와 맥이 닿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일단 설명을 드렸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과실상계라고 하면, 대충 생각하기에 과실을 기준으로 돈을 까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396조에 따르면, 채무불이행에 관하여 채권자에게 과실이 있는 경우 법원은 손해배상액을 정할 때 이를 고려(참작)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영희는 자전거를 타고 가던 도중 길에 있던 철수를 치어서 부상을 입혔습니다. 그렇다면 영희는 철수에 대해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철수가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왔고,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고 있던 영희 입장에서는 피하기가 쉽지는 않았다고 가정합시다. 실제 사건에서는 이것 외에도 매우 고려할 부분이 많지만 사례를 단순화해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법원에서는 철수가 영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채권자(배상권리자)인 철수의 과실을 고려하여야 합니다. 법원에서 계산을 때려 본 결과, 일단 1차적으로 도출한 손해액이 1천만원인데, 이 사건 발생에 대한 철수의 과실이 30%라고 해봅시다. 그러면 법원에서는 1천만원에서 30%를 깐(?) 700만원을 손해배상액으로 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30% 정도는 철수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있으니까, 영희 입장에서 1천만원을 모두 갚는 것은 오히려 억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과실이 있다고 생각되면 무조건 법원에서 참작을 해야만 하고, 이것이 과실상계 제도입니다.

*여기서 잠시, 제396조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에 적용되는 것인데 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예시로 드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일단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경우에도 제396조를 준용하도록 하고 있고(제763조), 사실 채무불이행보다도 불법행위의 경우에 과실 참작의 사례가 더 자주 발생합니다. 이해하기도 더 쉽고요. 그래서 불법행위의 사례를 예시로 든 것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 사건에서의 과실 참작에 대한 판례가 궁금한 분들은 대법원 2013. 2. 14. 선고 2010다91985 판결 등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오늘은 과실상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내일은 금전채무불이행에 대한 특칙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박동진, "민법상 과실상계 규정(제396조)의 입법론적 검토", 「법학연구」 제25권 제1호, 2015, 71-9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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