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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Aug 28. 2023

민법 제399조, "손해배상자의 대위"

제399조(손해배상자의 대위) 채권자가 그 채권의 목적인 물건 또는 권리의 가액전부를 손해배상으로 받은 때에는 채무자는 그 물건 또는 권리에 관하여 당연히 채권자를 대위한다.


제399조 제목을 읽어보면, '대위'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대위(代位)에 대해 우리는 이미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342조, 물상대위에서였습니다. 기억이 잘 안 나는 분들은 복습하고 오셔도 좋습니다.

제342조(물상대위) 질권은 질물의 멸실, 훼손 또는 공용징수로 인하여 질권설정자가 받을 금전 기타 물건에 대하여도 이를 행사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그 지급 또는 인도전에 압류하여야 한다.


민법에서는 제342조, 제370조(저당권의 경우에도 제342조를 준용), 제399조, 제480조, 제538조 등 여러 군데에서 '대위'의 개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대위의 법리는, "어떤 사람에게 귀속된 재산가치가 그 기초에 존재하는 경제적 관계에 비추어 다른 권리자에게 속해야 할 경우에는, 그 재산가치는 후자에게 이전되어야 한다"라는 관념에 기초하고 있습니다(김형석, 2014). 즉, 무엇이 공평한 것인가에 대한 탐구의 결과 도달하게 되는 법리인 것입니다. 채권자가 이중으로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제399조인데요, 아직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으니 예를 들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배상자대위가 발생하는 사례는 채권의 목적이 물건의 인도 또는 권리의 이전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김용덕, 2020), 여기서의 사례도 채권의 목적이 물건의 인도인 것으로 구성하겠습니다. 철수에게는 귀한 볼펜이 하나 있다고 합시다. 영희는 철수의 볼펜을 써보고 싶어서, 철수와 계약을 맺고 10일간 볼펜을 빌려 쓰기로 약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영희가 볼펜을 들고 다니면서 신나게 썼는데, 그만 볼펜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철수와 영희의 볼펜 렌탈(?) 계약에는, 영희가 볼펜을 무사히 잘 쓰고 철수에게 반납하여야 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국 영희는 채무를 불이행하게 된 것입니다. 철수는 영희에게 볼펜 값을 내놓으라고 말했고, 이에 영희는 볼펜 값 전부를 철수에게 배상하였습니다. 여기까지는 무언가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철수는 우연히 옆 동네의 최우연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 볼펜을 주워서 습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철수는 이에 최우연에게 연락해서, 자신이 볼펜의 소유권자이므로 볼펜을 돌려달라고 말합니다. 최우연은 우연히 볼펜을 주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쁜 마음을 먹지 않고 철수에게 볼펜을 돌려줍니다.


여기서 생각해 봅시다. 볼펜이 사라짐으로써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은 누구일까요? 철수입니다. 물론 며칠 볼펜을 못 쓰긴 했습니다만, 볼펜을 원래대로 찾은 데다가 영희에게 받은 볼펜 값까지 받았습니다. 더블로 이득인 겁니다. 이러한 경우에 채권자인 철수에게 (되찾게 된) 볼펜까지 넘겨주는 것이 공평한 것일까요? 그래서 민법 제399조는 손해배상자에게 대위를 인정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399조에 따라 볼펜 값을 이미 전부 배상한 영희는 그 물건(볼펜)의 소유권을 취득하게 됩니다. 물건값을 이미 다 냈으니, 물건이라도 취득하게 해주는 겁니다.


다만, 이와 같은 배상자대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채권의 목적물인 물건이나 권리의 '전부'를 채무자가 배상하였어야 합니다. 볼펜 값을 일부만 갚고, 볼펜 전체의 소유권을 갖겠다는 것은 좀 그렇지요. 그리고 배상자대위로 인하여 채무자가 얻게 되는 것은 '그 물건 또는 권리'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런 예를 들어서 생각해 봅시다.


임차인이 건물을 빌려서 쓰고 있었는데, 화재가 났습니다. 임차인의 과실이 좀 있었다고 해봅시다. 건물주인 임대인은 불행 중 다행으로(?) 화재보험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임차인은 건물의 가액 전부를 임대인에게 배상한다고 하더라도, 제399조에 따라 건물주가 든 화재보험의 보험금청구권을 대위할 수는 없습니다. "건물 탄 값을 내가 다 물어내지 않았느냐. 대신에 네가 받기로 한 보험금이라도 내놔라." 이렇게는 할 수 없다는 건데요. 왜냐하면 제399조에 따라 이전되는 물건 또는 권리는 건물이지, 보험금청구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김용덕 편, 2020: 143면). 애초에 임차인의 과실로 난 화재에서 어떻게든 돈을 메꾸려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긴 합니다. 책임을 지긴 져야지요.


오늘은 손해배상자의 대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내일은 채권자지체에 대해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심화학습]


대위와 관련된 내용을 공부하면서 함께 따라 나오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대상청구권입니다. 그런데 굳이 이 부분을 심화학습 편으로 넣은 것은,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인데도 불구하고 현행 민법에는 대상청구권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조문을 하나씩 진행하는 구조에서는 당연히 공부할 일이 없게 되는 터라, 이렇게 별도로 심화학습으로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심화학습이니까 귀찮은 분들은 그냥 지나가셔도 앞으로의 공부에는 별 지장 없습니다. 특히 이번 심화학습 편에서는 아직 공부하지도 않은 채무자 위험부담주의에 대한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지금 굳이 안 읽으셔도 됩니다.


대상청구권(代償請求權)이란, 건물 소실에 따른 화재보험금과 같이, 이행불능을 발생시킨 원인에 기하여 채무자가 이익을 얻게 되는 경우, 채권자가 이행불능으로 인해 입은 손해를 한도로 해서 채무자에게 목적물의 '대상'으로 볼 수 있는 이익을 돌려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김용덕, 2020: 145면). 여기서 말하는 '대상'이란, 큰 상이라는 뜻이 아니라, 대신하여 존재하는 어떤 것, 이 정도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박진수(2012)에 의하면 대상청구권의 법리는 1992년 선고된 대법원 판결에서 최초로 등장합니다. 여기서 대법원은 "우리 민법에는 이행불능의 효과로서 채권자의 전보배상청구권과 계약해제권 외에 별도로 대상청구권을 규정하고 있지 않으나 해석상 대상청구권을 부정할 이유가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1992. 5. 12. 선고 92다4581, 92다4598 판결). 그러니까 결국 민법에 명시적인 규정은 없지만 인정하겠다, 이런 건데요.


대상청구권 파트에서 여러 교과서에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사례가 토지수용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이렇습니다. 국가에서 댐을 만든다거나, 철도를 만든다거나 하는 공익적인 사업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철도를 만드려면 땅이 필요하겠죠? 그런데 그 공사에 딱 필요한 땅이 철수의 소유라고 합시다. 철수가 "아이구, 공익을 위해서 제 땅을 쓰십시오." 이러면 간단하겠지만 누가 자기 땅 그냥 내놓겠습니까. 국가와 철수가 협의를 하게 되는데, 협의가 불발되게 되면 나라에서는 절차를 거쳐 강제로 철수의 토지를 취득해 버립니다. 이것을 토지수용이라고 합니다.


"나라에서 개인의 땅을 빼앗는다고요? 이거 완전 깡패 아닙니까?"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일단 당연히 공짜로 뺏는 것은 아니고요, 땅 소유자인 철수에게는 토지수용에 따른 보상금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나라에서 마음대로 토지수용을 막 하지 못하도록, 법률을 정해서 엄격한 절차와 심사, 이의신청 등을 거치도록 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토지수용 자체를 놓고서도 많은 소송전이 벌어지곤 하긴 합니다. 토지수용에 대해 자세히 다 설명드리기는 어려우니, 상세한 내용은 교과서를 참조하기를 추천드리겠습니다.


자, 이제 대상청구권으로 돌아가서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오늘의 예시는 위 대상청구권의 판례를 조금 변형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서울특별시(오늘의 주인공은 무려 지자체입니다)는 도로공사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알맞은 땅을 찾았는데, 그 땅의 소유자는 나부자였습니다. 서울시에서 보니까, 나부자가 가진 땅 500평 중에 한 100평 정도 사들이면 될 거 같아서 나부자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나부자는 100평에 1억원을 달라고 합니다. 서울시는 오케이 했죠. 다만, 실제 도로공사를 할 때에는 정확하게 필요한 땅의 면적이 100평에서 + 또는 -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도로공사가 끝나고 실측을 해서 증감이 있는 부분은 다시 정산하자고 약정하였습니다. 계약체결 후 서울시는 나부자에게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해서 9천만원을 지급하였습니다. 그리고 잔금 지급 전에도 서울시가 대상 토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약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서울시가 도로 조성공사를 마치고 실측을 해보니까, 실제로 나부자의 땅 중 사용한 땅이 무려 180평이나 되는 겁니다. 뭐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냐, 사업계획이 이게 뭐냐 싶으시겠지만 실제 판례에서도 거의 1.8배 가까이 실측에서 차이가 났었던 사건입니다.


어쨌거나 서울시에서는 "미안하다. 우리가 80평 정도 땅을 더 썼는데, 그 부분만큼은 우리가 약정한 대로 추가로 돈을 좀 더 줄게. 평당 단가는 처음에 100평 살 때랑 똑같이 쳐서. 대략 계산해보니까 추가로 우리가 1억원 정도 더 주면 되겠네(기 지급한 9천만원 합해서 총 1억 9천만원). 콜?" 

이렇게 했습니다. 하지마 나부자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나는 100평 팔기로 했었지 180평이나 팔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180평이나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줄 수는 없어." 

서울시와 나부자는 서로 싸웠고, 서울시는 1억원을 변제공탁(채권자가 돈을 안 받으려고 할 때 채무자가 그 돈을 법원에 맡겨버리는 것)해버렸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더 생깁니다. 서울시와 나부자가 서로 땅을 주네 못 주네하고 싸우는 사이에, 나부자의 그 땅(180평)이 다른 공익사업의 대상이 되어서 토지수용이 되어버린 겁니다. 심지어 이번 토지수용에서는 단가를 아주 잘 쳐줬는지(?) 토지보상금으로 무려 3억 6천만원을 나부자에게 지급하였습니다. 서울시와 나부자가 싸우는 사이에, 그 땅의 소유자는 국가로 바뀌고 나부자는 3억 6천만원이 생긴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부자는 우리에게 땅의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주어야 할 채무가 있었는데 불이행했다. 따라서 나부자는 민법 제390조에 따라 토지의 시가를 기준으로 해서 우리에게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 전보배상을 해라.

(2) 나부자는 토지가 수용되어 토지보상금을 받았다. 그리고 채무는 이행불능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나부자의 토지보상금에 대해서 대상청구권을 행사하겠다. 나는 원래 약속대로 잔금 1억원을 줄테니까, 너는 토지보상금 3억 6천만원 내놔라.

(3) 민법 제537조에 따르면 채무자 위험부담주의에 따라 채무자(나부자)는 상대방(서울시)의 이행을 청구하지 못한다. 너 보상금 받은건 축하하는데, 우리는 이제 이행을 더 할 수 없다. 다 없던 걸로 해줄 테니까 미리 받아간 9천만원이나 내놔라.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이번 사례에서는 서울시가 (1)번과 (2)번을 선택했다고 해봅시다. 간략하게만 말씀드리면, 소송에서는 먼저 제시하는 주장을 주위적 청구라고 하고, 다음으로 혹시 몰라서(?) 예비적으로 제시하는 주장을 예비적 청구라고 합니다. 법원에서는 주위적 청구를 심사해서 그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되면 판결을 하고, 만약 주위적 청구가 틀린 말이라고 생각되면 다음으로 예비적 청구까지 심사해서 맞는 말인지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서울시의 경우 (1)번을 주위적 청구로, (2)번을 예비적 청구로 해서 나부자에게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나부자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나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4)오히려 서울시가 무단으로 자신의 토지를 점유, 사용하여 본인이 피해를 입었으므로 서울시가 손해배상금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판례에서는 원래 서울시가 예비적 청구로 대상청구권의 주장을 추가한 것은 항소심에서였습니다만, 여기서는 그냥 단순화해서 처음부터 2개의 주장을 같이 했다고 보겠습니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요? 학설의 견해가 갈리지만, 일단 대법원의 논리를 근거로 판단해 보겠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양측의 주장이 100% 다 맞지는 않고, 일부는 옳고 일부는 옳지 않습니다.


먼저, (1)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왜냐, 아무리 그래도 원래 약정했던 토지 면적보다 1.8배나 되는 토지가 실측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부자가 아무리 그래도 180평의 땅까지 모두 팔겠다고 예상하고 계약서에 그렇게 쓴 것은 아닐 거라는 겁니다. 그런 내용까지 진정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자세한 근거는 위 판결의 원심 판결, 서울고등법원 1991.12.10. 선고 91나26555(본소),91나26562(반소) 판결 참조: 2심 판결문의 경우 아래 참고문헌에 출처 기재).


"그렇다고 해도 나부자가 100평은 매매하기로 했던 것이 사실이니까, 100평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 말대로 100평에 대해서는 나부자가 소유권을 이전할 채무를 지고 있었던 게 맞습니다. 하지만 나부자의 땅이 토지수용된 것은 나부자의 고의나 과실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채무자의 고의와 과실을 요건으로 하는 제390조의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참고로, 2심 법원은 이렇게 봤습니다. 나부자의 소유권이전등기의무는, 기술적으로 서울시가 먼저 도로공사를 한 후, 거기에 편입된 땅을 갈라서 지적 분할(분할의 개념에 대해서는 물권 편 참조)을 해야 비로소 이행청구가 가능한 채무라는 겁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측량기술상 통상 발생할 수 있는 오차의 한계범위를 초과해서 매매의 목적물이 아닌 땅까지 도로로 조성한 다음, 그 땅 전부(위의 사례에서는 180평 전부)를 분할한 다음 피고에게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라고 최고하였습니다. 결국 피고 나부자 입장에서는 본래의 채무에 따른 이행의 최고를 받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므로, 나부자에게도 이행지체가 성립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이후에 나온 서울시의 변제공탁도 서울시의 채무를 소멸시킬 수 없게 되는 거죠.


여기까지 보면 나부자가 완전히 이긴 것 같지만, 아직 남았습니다. 바로 (2)의 주장은 타당합니다. 나부자는 본인의 과실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100평에 대해서는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줄 채무가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가 수용됨으로써 이행불능이 되었습니다. (위의 대상청구권의 개념 정의 부분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행불능을 발생시킨 원인(토지수용)으로 인하여 채무자(나부자)는 이익(토지보상금)을 얻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대상청구권을 인정하는 전제 하에서는, 서울시에게 대상청구권이 성립합니다.


대상청구권의 개념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부자의 재무 상황(?)을 봅시다. 먼저 나부자는 서울시로부터 중도금 9천만원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자신의 땅이 토지수용되면서 3억 6천만원을 국가로부터 받았습니다. 결국 나부자는 4억 5천만원을 얻은 셈입니다. 반면 서울시는 어떨까요? 서울시는 이미 9천만원을 지급한 것 외에 얻은 것이 없습니다. 땅은 서울시의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것으로 되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민법 제537조에 따른 채무자 위험부담주의에 따라, 채무자(나부자)가 상대방(서울시)의 이행을 구하지 못하는 것으로 마무리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서울시는 이행을 안 해도 되는 입장이 되는 거니까, 더 이상 잔금을 안 치러도 되고, 이미 준 9천만원을 돌려받기만 하면 끝일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3)의 경우가 되는 것이지요.

제537조(채무자위험부담주의)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의 채무가 당사자쌍방의 책임없는 사유로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채무자는 상대방의 이행을 청구하지 못한다.


대상청구권은 바로 이런 상황이 그다지 공평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서울시가 측량을 처음에 좀 제대로 못하긴 했는데, 최소한 100평에 대해서는 계약이 적법하게 성립한 게 맞고,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었다면 서울시도 100평에 해당하는 소유권은 얻었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대상청구권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서울시는 결국 준 돈 9천만원을 돌려받는 것 외에 얻은 게 없는 결론이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점을 보정하고자 대상청구권의 이론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물론, 대상청구권이 성립한다고 해서 나부자가 3억 6천만원을 모두 서울시에게 돌려줄 필요는 없습니다. 나부자가 받은 토지보상금은 180평에 대해서 받은 것이며, 아까 (1)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했고, 나부자가 소유권이전채무를 지는 땅은 100평에 불과하니까, 토지보상금 중에서도 100평에 해당하는 부분만 산정하면 됩니다. 대충 단가를 계산해보니 100평에 해당되는 보상금이 2억원이라고 해봅시다. 서울시가 원래 계약대로라면 (100평에 대해서) 1천만원을 잔금을 치렀어야 하니까, 2억원에서 1천만원을 깝니다(2억원-1천만원=1억 9천만원). 2심 법원은 계산상 여기서 9천만원을 상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결국 나부자가 서울시에 줄 돈은 1억원입니다.


아직 고려할 것이 하나 더 남았습니다. 바로 (4)의 주장입니다. 나부자의 주장인데요, 이것 역시 타당하다고 보았습니다.

100평 외에 80평에 대해서는 나부자가 팔기로 한 것도 아닌데도 서울시가 임의로 점유하면서 도로를 개설하여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부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왜냐, 일단 나부자가 자기 땅 중 일부를 원하는 대로 쓰지 못했으니까 임차료에 해당하는 만큼의 손해가 있을 거고요. 그리고 국가에서 토지수용할 때 보상가를 산정해야 하는데, 서울시에서 이미 그 땅에 도로를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평당 보상가가 낮게 산정되어 버렸던 것도 큰 손해입니다. 따라서 이런 부분들도 계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잡한 계산은 대충 다 됐다고 전제하고, 대략 계산해보니 위에서 말한 이런저런 손해액이 1억 5천만원 정도라고 합시다. 2심 법원에서는 계산상 역시 9천만원을 상계하도록 하여, 서울시가 나부자에게 배상할 돈을 6천만원이라고 보았습니다.

결국 나부자는 서울시에 1억원을 주고, 서울시는 나부자에게 6천만원을 주면서 소송이 마무리됩니다. 복잡한 지연배상, 이자 같은 것은 단순화를 위하여 모두 생략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모두 알고 싶은 분들은 판결문 원본을 보셔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보시면 알겠지만, 대상청구권은 민법에 명시적인 근거 없이 판례와 학설이 인정하는 것이다보니 대상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이 맞느냐 하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위 (3)의 주장이 오히려 타당하다는 견해도 있는데요, 우리 민법은 이미 제537조를 두고 있으므로, 나부자가 이미 받은 계약금 및 중도금 9천만원은 부당이득으로 보아 서울시에 돌려주면 충분하다는 견해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대상청구권의 적용을 부정하는 것이죠. 비슷한 취지에서 이충훈(2012) 등 논문이 있으니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결국 판례의 판단을 놓고서도 견해가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입장이 타당한지는 스스로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할 겸 해서, 오늘 본문에서 공부한 손해배상자 대위와 대상청구권을 비교해 보면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손해배상자 대위는 "채권자가 그 채권의 목적(물)인 물건 또는 권리의 가액전부를 손해배상으로 받은 때" 적용되는 것입니다. 즉 채권자가 얻은 이익을 채무자에게로 이전하는 기능을 합니다. 반면, 대상청구권은 "이행불능으로 채무자가 채권의 목적(물)인 물건 또는 권리에 갈음하는 이익을 얻은 때" 적용됩니다. 따라서 채무자가 얻은 이익을 채권자에게 이전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손해배상자 대위는 제399조에 따라 '당연히' 그 권리를 취득하게 되는 것인데 비하여(등기나 물건의 인도 등 요건 불필요), 대상청구권은 채권적 청구권으로서 물건이나 권리를 직접 취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상청구권자는 채무자에게 대상물의 반환이나 양도 등을 청구할 수 있을 뿐입니다(김용덕, 2020: 146면).


*참고문헌

김형석, "대상청구권 - 민법개정안을 계기로 한 해석론과 입법론 -", 「서울대학교 법학」 제55권 제4호, 2014, 106면.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채권총칙2(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20, 141면(남성민).

박진수, "대상청구권의 입법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 「토지법학」 제28권 제2호, 2012, 309면.

이충훈, "대상청구권에 관한 판례의 비판적 검토", 「법학연구」 제15집 제1호, 2012, 331-332면.

대법원 1992. 5. 12. 선고 92다4581, 92다4598 판결의 2심 판결인 서울고등법원 1991.12.10. 선고 91나26555(본소),91나26562(반소) 판결의 판결문은 다음 출처에서 참조: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계약법」, 2020, 612-6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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