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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Jul 01. 2024

민법 제431조, "보증인의 조건"

제431조(보증인의 조건) ①채무자가 보증인을 세울 의무가 있는 경우에는 그 보증인은 행위능력 및 변제자력이 있는 자로 하여야 한다.
②보증인이 변제자력이 없게 된 때에는 채권자는 보증인의 변경을 청구할 수 있다.
③채권자가 보증인을 지명한 경우에는 전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보증인도 아무나 막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까다로운 조건은 아니지만 약간의 제한이 있기는 합니다. 제1항을 봅시다. '채무자가 보증인을 세울 의무가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는 최소한 행위능력이나 변제자력은 있는 사람으로 보증인을 골라야 합니다. 따로 제1항에서 언급은 없지만 의사능력은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갓난아기를 보증인으로 세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민법총칙 기억하시지요? 행위능력은 단독으로 유효하게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특정한 경우에는 왜 보증인에게 행위능력을 요구하는 걸까요? 예를 들어 철수가 나부자에게 1억원의 채무를 지는데, 철수가 영희를 데려가서 나부자에게 소개시켜 주고, 보증을 세웠다고 합시다. 나부자는 철수가 영 탐탁지 않았지만, 영희가 왠지 비싸 보이는 옷을 입고 있어서 승낙했습니다. 그런데 나부자와 영희가 보증계약을 체결할 당시 영희는 미성년자였습니다.


민법총칙에서 배웠던 내용을 떠올려 봅시다. 계약이 체결된 후에 영희의 부모는 딸이 허락도 없이 남의 보증을 서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미성년자의 법률행위라는 이유로 보증계약을 취소해 버립니다. 

제5조(미성년자의 능력) ①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함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권리만을 얻거나 의무만을 면하는 행위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전항의 규정에 위반한 행위는 취소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제일 당황할 사람은 바로 나부자입니다. 기껏 보증계약을 체결했더니 취소되어 버렸으니까요. 인적 담보를 상실해 버린 셈입니다. 이제 철수에게 빌려준 1억원을 철수가 갚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에게 대신 받아낼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1항에서는 보증인에게 행위능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변제자력이란,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면 돈을 갚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영희가 성인이기는 한데 계좌에 돈이 0원인 가난한 사람이라면, 철수의 채무를 제아무리 보증해 줘 봤자 나부자 입장에서 도움 될 것이 없습니다. 없으니만 못하죠.


그럼 행위능력이 없거나 변제자력이 없는 사람이 보증인이 되어 버린 케이스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걸까요? 그 보증계약은 제431조제1항에 위반해서 무효인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설령 그런 사람이 보증인이 되었다고 해도 보증계약은 일단 유효하게 발생합니다. 그럼 나부자는 뭘 할 수 있을까요? 전에 공부한 제388조를 떠올려 봅시다. 제388조제2호는 채무자가 담보제공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기한의 이익을 상실하게 된다고 봅니다. 즉, 나부자는 철수가 인적 담보를 제공할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을 들어 철수가 기한의 이익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송덕수, 2022). 또는 제432조에 따라 채무자가 다른 상당한 담보를 제공하여 보증인을 세울 의무를 면할 수도 있는데, 이 부분은 내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388조(기한의 이익의 상실) 채무자는 다음 각호의 경우에는 기한의 이익을 주장하지 못한다.
1. 채무자가 담보를 손상, 감소 또는 멸실하게 한 때
2. 채무자가 담보제공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때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제1항은 어디까지나 '채무자가 보증인을 세울 의무가 있는 경우'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의무는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먼저 주채무의 계약(기본계약)을 할 때, 채무자가 보증인을 데려오기로 약정한 경우라면 가능하겠죠. 즉 나부자가 "철수 당신의 무엇을 믿고 내가 큰돈을 빌려주겠나? 보증인을 데려와라. 그래야만 돈을 빌려 줄 것이다." 이렇게 얘기해서 철수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다음으로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의무가 발생하는 수도 있습니다. 이런 법률의 규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가 이미 공부하였던 조문을 위주로 살펴보겠습니다. 점유자가 그 점유의 방해를 받을 것 같을 때, 손해배상의 담보를 청구하거나(제206조제1항), 유치권의 소멸을 청구하는 채무자가 상당한 담보를 제공하는 것(제327조) 등이 있습니다.

제206조(점유의 보전) ①점유자가 점유의 방해를 받을 염려가 있는 때에는 그 방해의 예방 또는 손해배상의 담보를 청구할 수 있다.

제327조(타담보제공과 유치권소멸) 채무자는 상당한 담보를 제공하고 유치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법원의 명령에 의해서 채무자가 보증인을 세울 의무를 부담하는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법원이 부재자의 재산관리인을 선임하는 경우, 법원은 그 관리인에게 담보를 제공할 것을 명령할 수 있습니다(제26조제1항).

제26조(관리인의 담보제공, 보수) ①법원은 그 선임한 재산관리인으로 하여금 재산의 관리 및 반환에 관하여 상당한 담보를 제공하게 할 수 있다.




제2항을 봅시다. 위의 사례에서 보증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는 영희가 행위능력도 있고 변제자력도 있고 다 갖췄다고 해봅시다. 채무자는 보증인을 내세울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한 셈입니다. 그런데 보증계약의 체결 이후에 변제자력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보증계약 체결 이후 영희가 빈털터리가 되는 것입니다.


행위능력이야, 뭐 실제로 돈 갚는 능력과는 별개인 것이니까 나부자 입장에서 크게 신경 쓰이지 않지만(계약체결 이후 행위능력을 잃어버렸다고 보증계약이 취소되는 것은 아니므로) 변제자력은 다릅니다. 영희가 가난해진다는 것은 나부자의 채권 담보력이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제2항에서는, 보증계약 체결 후 보증인의 변제자력이 없어지는 경우에는 채권자가 '보증인을 바꿔 줄 것'을 채무자에게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채권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제3항을 보겠습니다. 채권자가 보증인을 지명한 경우인데요, 설령 채무자에게 보증인을 세울 의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채권자가 보증인을 데려오는 것도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보증인을 세울 의무가 있었지만, 나부자가 나서서 "내가 아는 믿을 만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너의 보증을 서준다면 나도 그때는 당신을 믿고 돈을 빌려주지." 이렇게 하는 거죠. 


이처럼 채무자가 아니라 채권자가 나서서 보증인을 세우는 경우에는 제1항과 제2항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일단 채무자가 데려온 보증인도 아니어서 그 변제자력이나 행위능력에 대해 채무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 부적절하지요. 그리고 보증계약이 체결된 이후에 그 보증인의 변제자력이 없어진다고 해도 채권자는 보증인을 바꿀 것을 청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보증인의 조건에 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내일은 다른 담보의 제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참고문헌

송덕수, 「신민법강의(제15판)」(전자책), 박영사, 2022, 9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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