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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Nov 26. 2024

민법 제442조, "수탁보증인의 사전구상권"

제442조(수탁보증인의 사전구상권) ①주채무자의 부탁으로 보증인이 된 자는 다음 각호의 경우에 주채무자에 대하여 미리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1. 보증인이 과실없이 채권자에게 변제할 재판을 받은 때
2. 주채무자가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에 채권자가 파산재단에 가입하지 아니한 때
3. 채무의 이행기가 확정되지 아니하고 그 최장기도 확정할 수 없는 경우에 보증계약후 5년을 경과한 때
4. 채무의 이행기가 도래한 때
②전항제4호의 경우에는 보증계약후에 채권자가 주채무자에게 허여한 기한으로 보증인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오늘은 사전구상권을 알아보겠습니다. 구상권은 구상권인데, '사전'구상권입니다. 어제 공부한 구상권은 보증인이 출재를 하고 난 후에 갚으라고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민법은 일정한 사유가 있으면 수탁보증인에게는 '미리'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전구상권이라고 하며, 어제 공부한 구상권은 이것과 대비하여 '사후구상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제1항을 봅시다. 수탁보증인은 제1호부터 제4호까지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주채무자에게 미리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유를 하나씩 알아볼까요?


제1호는 보증인이 과실도 없는데 채권자에게 빚을 갚으라는 재판을 받은 경우입니다. 여기서 재판을 받았다는 것은 그냥 소송이 제기되기만 하면 된다는 뜻은 아니고요, 채권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그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이 확정된 때를 의미한다고 합니다(그 외에도 미확정이더라도 가집행선고가 붙은 판결도 포함한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집행가능성이 현실로 구체화되었을 때, 그 순간 사전구상권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지요(손철우, 2020). 물론, 여기서는 과실이 없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수탁보증인에게 과실이 있었다면 제1호에 따른 사전구상권은 인정되지 않을 것입니다(과실의 의미에 대해서는 어제 살펴본 제441조 부분 참조).




제2호를 봅시다. 주채무자가 파산선고를 받았는데 채권자가 파산재단에 가입을 안 한 경우입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 아직 우리가 파산 관련 법제를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이해하기는 난감하실 수도 있습니다. 간단하게만 살펴봅시다.


철수는 나부자에게 1억원의 빚을 지고 있고, 영희가 그 보증인입니다. 그런데 철수가 나부자의 빚을 갚지 못하고 그만 파산을 해버렸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망하면(?) 흔히 파산했다고 표현을 하는데, 사실 법학에서의 파산은 보다 엄격한 절차에 따라 행해지는 것입니다. 파산을 하면 그냥 당사자만 망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들(특히 파산한 사람의 채권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법제에서는 파산 절차에 대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을 따로 만들어 두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채무자의 그나마 남은 재산을 어떻게든 분배하여 채권자들에게 최소한의 피해가 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파산 제도입니다.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도 있지만, 지금은 생략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런 내용을 알았다면, 대략 파산이라는 것이 어떤 절차로 이루어지게 되는지 유추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채무자가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면, 법원에서 이것을 잘 검토한 후 파산선고를 합니다. 파산선고를 할 때에는 파산하는 사람의 재산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고, 그 재산을 함부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묶어 두어야겠지요. 그리고 얼마나 많은 채권자가 어떤 채권들을 갖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그다음에는 파산한 사람의 재산을 채권자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파산하는 시점(법원이 파산선고를 하는 시점)에 고정되는 채무자의 재산을 '파산재단'이라고 합니다. 파산재단으로 묶이는 재산은 파산관재인이라는 중립적인, 공정한 제3자가 관리하고(보통은 법원에서 선임한 변호사가 됩니다), 원래 주인이었던 채무자조차 맘대로 처분할 수 없습니다. 빼돌리면 안 되니까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382조(파산재단) ①채무자가 파산선고 당시에 가진 모든 재산은 파산재단에 속한다.
②채무자가 파산선고 전에 생긴 원인으로 장래에 행사할 청구권은 파산재단에 속한다.


다음으로 파산한 사람의 재산을 팔아 치워서 파산채권자에게 나눠 주는 것, 그것을 '배당'이라고 합니다. 배당을 받기 위해서 파산채권자들은 법원에 채권 신고를 합니다. 이 채권 신고를 통하여 채권자들은 파산재단에 가입하게 됩니다.  여기서 가입이란 것이 홈페이지 회원가입처럼 계정 만들고 비밀번호 만들고 이메일 인증하고 그런 것은 아니고요, 파산한 사람의 채권자가 정해진 기간 내에 법원에 "저는 이번에 파산한 누구누구 씨의 채권자입니다. 제 채권액은 1억원이고요..." 이런 식으로 신고하는 것을 말합니다. 법원이 파산한 사람이 얼마나 빚을 지고 있는지 정확하기 알기 어려우니, 채권자들이 먼저 알리는 것입니다. 채권신고를 하면 배당을 못 받습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447조(채권신고방법) ①파산채권자는 법원이 정하는 기간(이하 이 장에서 “신고기간”이라 한다)안에 다음 각호의 사항을 법원에 신고하고 증거서류 또는 그 등본이나 초본을 제출하여야 한다.
1. 그 채권액 및 원인
2. 일반의 우선권이 있는 때에는 그 권리
3. 제446조제1항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청구권을 포함하는 때에는 그 구분

*엄밀히는 모든 채권자가 파산채권자인 것은 아닙니다만, 여기서는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더 깊게 알아보고 싶은 분들은 도산법 교과서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이런 케이스에 사전구상권을 인정해 주는 이유는 뭘까요? 일단 채무자가 파산했다는 것은, 채권자 입장에서는 돈을 받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이겠죠. 파산절차가 있긴 하지만, 채무자의 재산이 얼마 안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채권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렇죠, 옆에 있는(?) 보증인에게 눈을 돌리겠지요. 아마 거의 대부분의 채권자가 그럴 겁니다.


그런데 만약 보증인에게 사전구상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사후구상권만을 가진 보증인이 채무자에게 돈을 받을 수 있는 시점이 늦춰질 것이고, 그 사이에 파산절차가 종료되게 되면 보증인은 배당도 못 받고 돈만 날리게 됩니다. 말하자면 보증인이 주채무자에게 조금이라도 뭔가를 받아낼 기회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제442조제1항제2호는 주채무자가 파산한 경우에 보증인에게 사전구상권을 인정해 줌으로써, 보증인도 파산재단에 가입하여 조금이라도 배당을 받을 있도록 하려는 취지인 것입니다(김대정·최창렬, 2020).


그래도 아직 한 가지 의문이 남았죠. 주채무자가 파산한 경우 보증인에게 사전구상권이 필요한 것은 알겠는데, 왜 채권자가 '파산재단에 가입하지 않은 때'에만 가능한 걸까요? 그 이유는, 채권자가 이미 파산재단에 가입한 경우라면 채권자는 파산재단에서 배당을 받게 될 것인데, 여기까지 보증인의 사전구상권을 인정하게 되면 이른바 '이중배당'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동일한 채권에 대해서 중복으로 배당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김준호, 2017).

*지금은 우리가 도산 관련 법률을 공부하는 것은 아니어서 자세히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을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동법 제430조제1항은 민법 제442조제1항제2호의 취지를 반영하여 관련 내용을 규정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해당 조문을 한번 읽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430조(장래의 구상권자) ①여럿의 채무자가 각각 전부의 채무를 이행하여야 하는 경우 그 채무자의 전원 또는 일부가 파산선고를 받은 때에는 그 채무자에 대하여 장래의 구상권을 가진 자는 그 전액에 관하여 각 파산재단에 대하여 파산채권자로서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채권자가 그 채권의 전액에 관하여 파산채권자로서 그 권리를 행사한 때에는 예외로 한다.


제3호를 보겠습니다. "채무의 이행기가 확정되지 아니하고 그 최장기도 확정할 수 없는 경우에 보증계약후 5년을 경과한 때"라고 합니다. 5년이면 꽤 긴 시간인데, 보증계약을 맺은 지도 시간이 오래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채무의 이행기도 애매하고, 최장기(最長期)도 애매하다면 좀 문제가 있습니다. 보증인 입장에서는 자기 보증채무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모르고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미래에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데 불확실성만 커지게 됩니다. 갑자기 벼락이 떨어져서 주채무자의 집이 불타고 가난하게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3호에서는 이와 같은 경우에는 보증인을 좀 더 보호하기 위하여 사전구상권을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보증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은 보증기간의 약정이 없는 때에는 그 기간을 3년으로 보도록 하고 있어 동법의 적용을 받는 경우에는 대부분이 아마 3년으로 보증이 끝나긴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442조제1항제3호에 해당되는 사례는 특별법의 적용을 받는 등 조금 특수한 케이스에 해당될 겁니다.

보증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7조(보증기간 등) ① 보증기간의 약정이 없는 때에는 그 기간을 3년으로 본다.


제4호를 보겠습니다. "채무의 이행기가 도래한 때"에는 채권자가 역시 보증인에게 채무 이행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행기가 도래할 때 주채무자가 바로 자신의 채무를 이행, 변제해 버리면 보증인에게도 참 다행이겠습니다만 그런 좋은 일만 일어난다면 법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또한, 주채무의 이행기가 도래하게 되면 주채무자는 이행지체에 빠지게 되지요. 우리가 공부한 제429조에 따라 보증채무의 범위에 주채무의 이자, 위약금, 손해배상 기타 주채무에 종속한 채무가 포함되게 되는데 주채무자의 이행지체에 따라 위약금이나 손해배상이 점차 늘어나게 된다면 보증인 입장에서는 피를 볼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수탁보증인의 입장에서는 서둘러 보증채무를 이행할 필요가 있으며, 그러한 취지에서 제4호는 사전구상권을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손철우, 2020: 241면).



제2항을 보겠습니다. 제1항제4호, 그러니까 채무의 이행기가 도래한 경우, 보증계약후에 채권자가 주채무자에게 '허여'한 기한으로 보증인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허여'는 우리가 총칙에서도 살펴본 단어였고요, 허락해 준다는 뜻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보증계약을 체결하고 나서 이후에 채권자가 주채무자에게 연락을 해가지고 "이행기를 늘려 주겠다." 이렇게 했다고 칩시다. 원래는 주채무의 이행기가 예를 들어 1월 30일이었는데, 보증계약 이후에 채권자가 이걸 3월 30일로 늘려 준 겁니다. 그러면 1월 30일이 되었을 때, 주채무자는 채권자가 3월 30일로 이행기를 늘려 줬다는 이유로 보증인의 사전구상권을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보증인은 원래의 이행기(1월 30일)이 도래하면 사전구상권을 쓸 수 있습니다.


오늘은 사전구상권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만 강조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제442조는 어디까지나 '수탁보증인'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탁을 받지 않은 보증인은 사전구상권이 없다는 점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둘째, 제442조제1항 각 호의 사유들은 대체로 채권자가 보증인에게 이행을 청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는 상황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보증인에게 사전구상권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타이밍이라는 것이죠.


그렇게 사전구상권을 행사한 보증인은 미리 돈을 땡겨서(?) 받을 수 있을 거고요, 대신 받은 돈은 보증인이 이상한 데 펑펑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주채무자의 채무를 갚는 것에 써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안 하면 사실 사전구상권 제도가 의미가 없겠죠. 주채무자에게만 너무 가혹한 제도가 될 것입니다.


조금 내용이 길어졌습니다. 채권법의 조문은 워낙 복잡다단한 것이 많기 때문에, 하나씩 살펴보다 보면 이렇게 길어지는 상황이 왕왕 발생하게 되네요. 내일은 주채무자의 면책청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대정·최창렬, 「채권총론」(전자책), 박영사, 2020, 889면.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채권총칙3(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20, 239면(손철우).

김준호, 「민법강의(제23판)」, 법문사, 2017, 1305-13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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