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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예측 불가한 삶이라면

제주의 겨울을 즐기는 중입니다.

by 잔별

제주에서 두 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 작년 제주의 겨울은 많이 춥진 않았지만, 12월에 몇 번 폭설이 다녀갔고, 덕분에 탁 트인 설원을 볼 수 있었다. (작년에 제일 크게 기억에 남았던 장면) 올해는 12월에 접어들고도 해안가 지역엔 아직 큰 눈은 없다. 날씨도 많이 춥지 않다. 날이 좋을 땐 꼭 초봄이다 싶을 정도로 포근하기도 하고. 해가 쨍하게 뜨는 날이면, 햇빛을 받은 바다가 일렁이는 파도의 리듬에 맞게 반짝인다. 하늘은 더없이 맑다. 그런 날이면 혼자 해안가를 산책하곤 한다. 동네 고양이들은 잘 있는지, 늘 걷던 산책길에 마주하는 풍경에 변한 것은 없는지, 음악을 들어도 좋고, 안 들으면 자연의 소리를 가까이 들을 수 있어서 이 또한 좋다.


제주에 살기 전엔, 제주도 여행 계획을 세우고 나면 날씨 어플만 들여다보곤 했었는데, 이곳에 살아보니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는지 잘 알게 됐다. 제주의 날씨는 그야말로 예측불가다. 내리 비만 온다고 예보가 되어 있다가도 일순간 먹구름이 걷히고 반짝하고 맑은 하늘이 나오는 경우도 많고, 따뜻할 줄 알았더니 바람이 심하게 불어 춥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한마디로 그냥 날씨가 제멋대로다. 그런데, 나는 이게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된다. 우선, 날씨에 얽매이는 직업을 가지지 않았기에 변덕스러운 날씨가 생업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 제주도는 바닷바람이 매서워 바람이 많이 불면 집에 꼭 붙어서 바깥 상황만 내다보는 날도 며칠 있는데, 그래도 이내 긍정적인 생각이 든다. 내일은 쨍하고 해가 뜨겠지... 일주일 내내 날씨가 별로 안 좋다고 예보가 나와도 '여기는 제주돈데.... 3일 흐리다가 말겠지.' 하고 생각한다. 그냥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다음의 좋은 상황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더군다나 비바람이 친 후의 날씨는 또 얼마나 경쾌한지. 절대 좋아질 것 같지 않았던 희뿌연 하늘에 맑은 하늘이 드리워지고 바다가 제 빛깔을 찾아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전의 나빴던 날씨는 금세 잊을 수 있다. 굉장히 큰 보상이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랄까.


제주도에 와서 깨닫는 것들이 많은데, 그것들은 모두 아주 소소한 것들에서부터 온다.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배운다. 어차피 예측 불가하고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었는 일이라면, 차라리 빨리 인정하고 금방 긍정적인 기운을 쏟아내어 다음의 좋을 날을 기다리는 편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운이 좋으면, 또 기가 막힌 설원이나 눈꽃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고, 3일 내리 비바람이 치다가 다음 3일은 눈부시게 기똥찬 제주의 날씨를 만날 수도 있을 테니.


순응의 지혜는 포기가 아니라 인정이고 배움인 것 같다. 소소한 것들에 감사하고, 잘 받아들이는 자세는 앞으로도 계속해나가야 하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겠지만, 어쩌면 그냥 자연스럽게 될 것도 같다. 여기 내가 살고 있는 섬나라, 제주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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