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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별 Mar 30. 2022

마음에도 노화가 온다

가지고 있을 땐 너무나 당연해서 그것이 오래 지속될 것만 같고, 소중한 줄도 모르는 게 많다. 우리 모두가 가졌었고 가지고 있었던 젊음. '젊음의 시절'을 보내면서 가지고 오게 되는 '노화'에 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대개 20대의 여자들은 노화에 큰 관심이 없을 것이다. 왜냐, 그 젊음이 영원할 줄 알거든. 뭐, 30대가 돼도 크게 걱정이 되진 않는다. 왜냐, 난 아직 젊다고 믿으니까.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육체적인 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건 30대 후반이었다. 어느 날, 검은 머리카락 속에서 흰 머리카락이 삐죽 솟아나면서부터 였는데, 거울을 보다가 '아니 이게 왜 생겼지?'라고 생각은 했지만,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마흔을 넘기고부터는 흰머리의 존재감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새치 염색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정도가 되고 말았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많은 이들이 4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차츰 노화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신체적으로 드러나는 노화 외에 우리가 더 집중해야 할 건, 어쩌면 '마음의 노화'가 아닐까 싶다. 


마음은 늙지 않는다고?
마음만은 이팔청춘이다?!

이런 말들의 기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어떤 바람'에서 나온 말이거나 몸보다 마음의 노화 속도가 확연히 더디기에 착각하는 건 아닐까 싶다. 눈에 보이는 신체적인 증상은 노화를 가리키지만, 마음속 노화까진 인정하기 싫고, 여전히 '나는 젊다.' 믿고 싶기에.  하지만, 나는 마음만은 늙지 않는다는 말을 이젠 믿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마음도 신체만큼이나 세월을 지나며 노화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가 두렵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데 쏟는 에너지가 피곤하다. 

무엇을 해보기도 전에, 다 알 것만 같아서 관두기도 한다. 

특히 사랑을 하는 데엔 나이가 들수록 주저함이 생긴다.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이론들을 통해 현상을 파악하고 사람을 판단하기도 한다. 


이런, 주춤대는 마음들. 

해보기도 전에 알 것만 같고, 포기하고야 마는 심정. 더 이상 젊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도전하지 않고, 뛰어들지 않는 뜨거움이 사라진 심장. 이런 것들이야 말로 '마음이 늙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음만은 이팔청춘 그대로라면, 그때의 마음으로 똑같이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는 건, 마음에도 노화가 찾아왔고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의 반증일 테니 말이다. 


마음의 노화든 몸의 노화든 사실 반갑지야 않았다. 나는 예전과 비슷하게 젊고 도전적이며 의욕적으로 살아가고 싶기에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늙는다는 것에 슬퍼하고 주저앉아있지만은 않겠다. 신체적인 노화가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그동안 많이 써버려서 낡고 다친 마음에도 노화가 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 그 마음이 더 이상 다치지 않게 잘 돌보고, 위험에 빠지지 않게 좀 더 신중하게 돌보는 일이 참 중요하겠다 싶다. 뜨거운 심장 대신 늘 적당한 온도의 심장으로, 주어진 일상을 잘 일궈 나갈 수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고 슬퍼하기보단 나는 이번에도 인정함으로써 찾아오는 마음의 평화를 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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