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별 Dec 18. 2022

영원한 로맨스 추앙자

나는 멜로드라마를 즐겨본다. 또 요즘 핫한 '돌싱글즈''나는 솔로' 같은 일반인 대상 만남 프로그램이나, '솔로 지옥'같은 선남선녀들이 나와서 묘한 신경전을 벌이며 사랑을 쟁취하는 리얼 데이팅 프로그램도 좋아한다. 현실에선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는 게 드라마지만, 멋짐 폭발하는 남주와 예쁜 여주를 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안구가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남의 사랑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한마디로 멜로드라마에 진심인 편. 요즘엔 드라마 장르가 참 다양해졌지만, 아직까지 제일 좋아하는 장르가 멜로인걸 보면, 나는 역시 대놓고 로맨스 선호 주의자다. 


무인도 같은 극한의 환경과 짧은 일정 속에 매력 넘치는 젊은 남자와 여자를 한꺼번에 몰아넣고 사랑을 쟁취해내야만 하는 데이팅 프로그램이 처음엔 너무 남 얘기 같아서 관심이 없었는데, 한번 시작한 후론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끊임없는 신경전과 감정의 교감 속에 남녀가 벌이는 팽팽한 긴장감이 계속 다음 회를 보게 만든다. 탄탄한 남자들의 몸매만큼이나 핫한 데이팅 프로그램 '솔로 지옥'을 뒤늦게 정주행하고 시즌2까지 챙겨보자니 역시나 남의 연애 이야기는 베리베리 익사이팅하다.


요즘 데이팅 프로그램이 핫한 이유는 그들의 썸이 궁금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전혀 모르는 남녀가 처음 만나 감정을 나누고 썸을 타는 과정 속에서 터져 나오는 개개인의 매력, 누군가의 내면을 관찰하는 재미와 거기에 자신의 경험들을 대입해 보고 쉽게 동화 수 있기 때문이. 마치 죽어있던 연애세포를 깨워주는 자극제 같달까.


이렇게 각종 멜로드라마데이팅 프로그램 자주 챙겨보는 덕후의 취미를 즐기다가, 불현듯, 결혼 이후 더 이상 멜로드라마는 보지 않는다던 한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선남선녀 두 주인공이 상대를 바라보는 열렬한 눈빛, 듣기만 해도 몽글몽글 가슴이 말랑해지는 대사나 서로의 마음을 모르고 자꾸 비껴가기만 하는 안타까운 장면, 심장 쫄깃해지는 긴장감 넘치는 삼각관계. 이 모든 것들이 더 이상 자신의 인생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너무 서글퍼졌고 눈물이 날 말 큼 속상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부턴, 멜로드라마와는 아예 절연했다는 것이다.


선배가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한창 연애를 많이 하는 시기였고, 결혼은 먼 일처럼 느껴졌던 나이였는데, 선배가 결혼을 한 후 사랑은 포기한 것처럼 보여서 안타까웠다. 마치 선배의 그 말은 '결혼을 하면 인생에서 멜로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는 말'처럼 들렸다. 진짜 그런 걸까? 당시 30대의 선배는 여전히 예뻤고 참 멋진 사람이었는데, 그 말을 할 때는 뭔가 하나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가능하다면, 평생 멜로를 품고 사는 여자이고 싶다.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멜로는 시기마다 다른 컬러로 빚어진다. 언제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어떤 사랑을 하느냐가 더 의미 있지 않을까. 결혼 이후나 중년의 사랑은 아마도 그 어떤 사랑보다 안정적이며 동시에 농염한 사랑이 가능한  것일 게다. 애송이들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그래서 나는 때론 뻔하고 뻔한 통속적인 멜로드라마를 꿈꾼다. 남들 다 하는 사랑처럼, 유치한 멜로가 내 인생 드라마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혼 이후나 중년 이후, 노년의  삶에도 사랑은 존재한다.'는 명제에 방점을 찍고 싶다, 그들이 어떻게 사랑을 유지하며 인생을 살아내고 결국엔 어떤 엔딩으로 끝날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겠지. 그때까지 나는 애정하는 멜로드라마를 꾸준히 본방 사수하고, 남의 연애 이야기도 즐겁게 훔쳐보고, 젊은이들의 사랑 속에서 가끔은 지난날의 나의 연애를 들춰보며 시시껄렁하게 살아가야지.



로맨스 추앙자의 시시껄렁한 멜로 이야기, 이 글을 예전에 쓴 글을 다시 각색하여 재발행하는 이야기입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노력' 한 스푼에 '운' 한 스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