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안팎으로 들리는 소리가 죄다 흉흉하고 무서운 얘기 뿐이다. 남자나 여자 모두에게 그러하지만, 특히나 어떤 면에선 분명한 사회적 약자인, 여자들에게 이런 사회에서 혼자 사는 일은, 꽤나 도전적이고 때론 큰 용기도 필요한 일이다. 결혼 전, 오래 혼자 살면서 이미 온갖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었는데, 다시 혼자가 된 지금은 그 어려움들을 너무 잘 알기에 두려운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그렇게 웅크리고 또 웅크리고 있었나....?)
어찌됐든 나는, 기나긴 숨의 시간을 지나 다시 일상을 시작했다. 불안과 우울의 장막이 걷혀진 세상에서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혼자서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그리고 혼자서 뭐든 해내왔던 내가, 새로운 집에서 맞은 직격탄은 이제부터 나는 다시 홀로서기를 해야만 하고, 나를 잘 일으켜 데리고 살아가야 한다는 처절한 현실감이었다.
나는 여전히 내가 혼자선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해나갈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쉽지 않은 길임을 알고 있기에 그 어느때보다 망설여지고 두려운 마음도 컸던 것 같다.
나의 취향대로 꾸민 새 오피스텔은 안락했고, 비록 2년 짜리 계약이라고 할지라도, 당분간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나는 이번에도 새로운 환경에 잘 스밀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보기로 겨우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현관문을 닫아놓으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는 나만의 공간에서 음악을 듣고 책을 보는 일상이 다시 나애게 시작되는 듯 했다. 어쩌다 그런 평화를 깨는 건,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인터넷이나 정수기 설치를 하러 남자 기사님들이 방문하거나 하는 식의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외부인을 집에 들일 때였다.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좋은 분들이 더 많았지만, 외부인이라는 사실 하나로도 위축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여자 혼자서 이사를 할 때 대놓고 무시하거나 돈을 더 요구하는 분들이 많았고, 여자 혼자 살아가는 일이 녹록치 않음에 개탄한 적이 많았다.
아무튼 나는 가까스로 다시 일상에 스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어젯밤 '공포의 비밀번호' 사건이 일어났다. 무더운 날씨에 나는 아주 간편한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집엔 낮은 조명만 켜둔 상태였다. 바로 그때! 현관문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삐삐삐삐... (실패)
삐삐삐삐... (실패)
첫 번째 비밀번호가 눌릴 때 나는 침대에서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거실 현관문만 쳐다보면서, 스마트폰만 꼭 쥐고 있었다. 뭘 어쩌지도 못했다.... 저 문이 열리고, 누가 들어오면 어쩌지? 그게 남자나 괴한이면? 으아아.... 상상만으로도 피가 식는 기분. 그 짧은 순간, 112를 눌러야 하나 언니한테 전화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심장 박동수가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삐삐삐삐... (실패) 후 조용 -
누군지는 모르나, 3번 실패 후 조용하다. 비디오폰을 켜봐도 시커먼 화면 뿐이고, 밖에서 혹시 무슨 소리가 들릴까봐 그게 더 무서워서 손이 덜덜 떨렸다. 술 먹고 집을 착각한 사람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걸 알면서도 놀란 가슴은 진정이 안 됐다.
다행히, 범인(?)은 돌아간 것 같았고, '나는 누굴까? 에서부터 꼬리를 물고 쏟아지는 온갖 나쁜 상상 때문에 쓰러져갔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이라고 누가 몰카를 설치했다가 비번을 알아내 들어오려다 실패했나? 술취한 취객인가? 별의 별 상상이 다 됐다. ㅠㅠ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언니와 전화통화를 끝낸 후 별일 아닌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112에 신고는 하지 않고, 아침에 경비실에서 CCTV를 확인하고 나서 노선을 정하자고 생각했지만,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이사 온 집에는 도어락 외에, 이중 안전고리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나는 밤새 도어락이 열리는 상상을 하다 겨우 잠이 들었다. ㅠㅠㅠㅠ
아침에 경비실로 가서 CCTV를 돌려본 결과, 범인은 집을 잘못 찾아온 '여성' 이었고,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됐다. 집주인에게 이중 안전장금장치를 달겠다고 말하고 나서야 조금 안심이 됐다.
내가 본래 지나치게 걱정이 많은 성격이나 불안이 많은 타입은 아니다. 그런데, 살면 살 수록 대담해지는 게 아니라 새가슴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면, 미리 조심하고 안전장치를 마련하자. 좋은 일이 오는 길목을 나쁜 일이 막지 못하도록.
혼자 단단히 맘을 먹어 보는 밤은 어쩐지 좀 외롭다.
하지만, 앞으로의 혼삶이 외롭지만은 않다는 걸 또 잘 알고 있기에, 나는 다시 나의 삶을 응원해 보기로 한다.
야, 너 진짜, 대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