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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별 Aug 02. 2023

숨의 시간 2

열흘 전, 그동안 전혀 살아보지 않은 동네.

새로운 곳으로 호기롭게 이사를 왔고, 이사와 함께 어이없는 우울이 찾아왔다.


사실 이사를 준비하면서부터도 알 수 없는 불안과 약간의 우울이 있었는데, 워낙 이사가 힘들고 챙길 게 많은 일이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가 보다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사를 무사히 마치고서도,

내 일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나는 점점 더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사를 하면, 더 좋아질 줄 알았는데?

어이가 없었고, 이유를 알 수 없어서 황당하기까지 했다.


다시 혼자가 됐다는 사실,

이제는 진짜 혼자라는 자각,

그 무시무시한 이사를 혼자서 또 다 해냈다는 현실감이 무겁고, 무섭게 다가왔다.


매번 이사를 할 때마다 '다신 이사하기 싫다' 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이번 이사는 정말 역대급이었다. ㅜㅜ

(어쩔 수 없이 무한 정리가 동반되는 이사는 생각하기 싫은 것들을 생으로 끄집어내게 만든다.)


잘 쉬어지지 않는 숨을 가다듬으며,

그래도 평정을 되찾으려 애를 썼다.


'숨'을 쉬기 위해 다시 노력을 해야만 했다.

아는 고통이라서 더 힘들고, 더 짜증이 났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내 삶은 왜 이렇게 힘이 든 건지, 모든 게 다 원망스러웠다.


그러다가 내가 '불안'해 하는 이유를 알았다.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일상이, 또다시 깨어질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무 일도 없다가, 갑자기..? 무슨 일이 또 생기는 건 아니겠지?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예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불안이었고, 나는 이제  이런 종류의 불안을 아는 인간이 되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우울이나 불안을 아는 인간이고 싶지 않다.


누가 이런 내 맘을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을까?

갑자기 내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외로움마저 어이없게 피어났다.


나는, 내 삶에 더 이상 아무런 이벤트도 일어나질 않길 바라는 소심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한때는 나름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삶에 적극적인 인간'이었는데.)


'인생에 변화가 있는 건 싫어!'

'이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로 머물고 싶어!'


인생의 기대 따윈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그저 하루치의 인생을 버텨내는 내가,

다시 좋아질까?


'후 후'

숨을 고르며, 생각한다.


이건 일시적인 우울이나 불안일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인가.


지금의 '숨의 시간'을 나는 어떻게 버텨낼 것인지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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