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꽤 오래 일지 않았다. 지난여름부터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도 일이 많았고, 처리하고 살아내느라 다소 몸살을 치렀다. 그동안 써둔 '상실과 우울, 불안한 삶'에 관한 이야기들을 엮어 출간을 해보겠다는 의욕 혹은 목적성도 어느샌가 상실해 버렸다. 지금, 현재는.
지난 상처들을 꺼내 글을 고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하기 싫으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든 것 같다. 그냥 흐름대로 살아보자고, 하고 싶은 대로, 원하는 대로 살아보자고도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하면 되는 일인데 굳이 스스로를 설득시켰고, 나는 스스로의 설득에 충분히 응답할 수 있을 만큼 현재의 삶을 주도하며 살아가고 있다.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별일 아닌 일, 쉬운 일, 평범한 일들을 하면서 2024년을 보냈다. 하지만 조금 가까이에서 신경을 써서 바라보면 온통 어려운 일, 고민스러운 일, 아직도 많이 버겁고 힘든 일들 투성이었다. 그래도 나는 현재를 살아간다.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지금의 나를 어루만지면서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회복한 일상에 감사하면서.
지난 몇 년간의 시간 속에서 확실히,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고 느낀다. 다행히 '다름'의 모습은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다. 일테면, 감사와 긍정의 아이콘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것, 지금을 진심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그러니까 한마디로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가 변했다는 게 포인트다. 그래서인지 반복되는 부정적인 말과 불평, 함부로 남을 판단하는 말이나 시선을 못 견디게 싫어하게 되었고, 가능하면 나는 그러지 않고 싶다고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불행'을 아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행복'은 늘 가까이에 있다고 말한다. 소확행을 실천해서라도 가까운 곳에 있는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대부분 놓쳐버린 행복을 아쉬워하고, 먼 행복을 좇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행복도, 돈도, 그것을 좇으며 사는 순간 그 속에 갇혀 버리게 된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잘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어야 한다. 몇 년 후의 행복이나 어떤 목표가 아닌 현재에 충실하면서 살다 보니 '나, 잘 살고 있구나' '행복한 순간도 가끔 있구나'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현실적으로 지금 행복해지기 위해선, 행복이 가까이에 있다는 명제 대신, 불행은 가까이에 있다.라는 명제를 인식하고 살아가는 게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정작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불행에 빠지지 않는 게 먼저이며, 일상에서 불행의 요소가 없을 때 비로소 모든 평화와 행복을 느낄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무수한 불행들이 사실은 조금만 방심하면 내게 올 수도 있는 일이고, 때로는 조심하면서 성실히 살아가더라도 기어코 내게 올 수도 있는 일이며, 천재지변처럼 막을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는 걸 평소에도 가끔 떠올려야 한다. '불행'이 남 일이 아닌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설사 불행에 빠지더라도, 사람들이 행복이 가까이에 있다고 믿는 것처럼, 불행도 가까이에 있는 것이어서 지금 잠시 그 순간이 온 것뿐이라는 걸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불행에서 오는 자기 연민에 오래 갇혀있지 않을 수 있다. 큰 불행은 드라마나 영화에 주로 나오고 내 주변, 먼 지인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어쩌다 나한테, 내가 원하지 않는 순간에 닥칠 수도 있다. 그 대상이 왜 하필 나냐고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불행을 안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며, 행복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음. 남들은 모르는 또 다른 영역의 깊이를 아주 조금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또 다른 눈이 생겼으니 조금 더 다르게도 볼 수 있게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