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미모사를 키웠다

by 졸참

나는 진짜로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는 산골짜기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봄에는 강아지와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온갖 새싹과 꽃을 따 먹었고, 여름에는 집 앞에서 물장구를 치며 다슬기를 잡았다. 가을에는 머루랑 다래를 따먹고, 겨울에는 비료 포대로 눈썰매를 타다 밤 가시가 박히는 일이 허다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도시에서 하숙생활을 시작했으니 이제 내가 시골에서 자란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도시에서 살았다. 그럼에도 나의 정체성은 여전히 시골사람이다.


시간의 흐름을 식물들의 달라짐으로 체감하는 삶이 좋았다. 도시에 살아보기도 전부터 도시 생활을 거부했고 딱 60살이 되면 시골에서 남편과 움막을 짓고 살 거라고. 꼬마인 시절부터 노래 부를 정도로 나는 그 초록이 가득한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이 좋았다.


이게 책에서 보던 문화충격인가

유치원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10년간 같은 사람들과 학교를 다녔다. 얘는 누구 동생, 걔는 누구 형, 쟤는 초등학교 때 전학 갔다가 돌아온 애처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새 학년이 되어도,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학교가 달라져도 1반밖에 없는 관계로 같은 반 친구들도, 한 학년 위 사람들도, 한 학년 아랫사람들도 모두 똑같았다.


그 시골 동네에는 인문계 고등학교가 없었다. 당연히 공부를 좀 하는 아이들은 도시로 갔다. 빠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아무리 늦어도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그 동네를 떠났다.


나도 고입시험을 치르고 동네를 떠났다. 도시 이름을 가진,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역사와 전통이 가득한 여자고등학교를 1 지망으로 선택했다.


하얀색 큰 카라가 있는 여성스러운 라인의 검은색 재킷, 무릎까지 오는 길이의 폭이 넓은 까만색 치마. 귀 밑 3cm 단발, 하얀색 양말, 검정 단화.

70년 동안 교복 디자인을 바꾸지 않은 것이 학교의 자랑이라고 했다. 역사책에 나오는 일제강점기 여자교복이라고 소개되던 그 모습이다. 시작부터 고루했다.


학교 강당에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 1200명이 우글우글 모였다. 입학식은 살면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순간이었다. 키가 많이 작은 나는 키 큰 사람들 속에서 그저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고등학교에서도 1반이었다. 1학년은 총 440명. 반이 11개나 됐다. 교실에는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40명이나 됐고, 심지어 전부 처음 본 사람들이었다. 선생님들은 내 이름을 기억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처음부터 나는 그냥 17번이었다.


처음 하는 도시 생활은 신기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게 교과서에서 배운 문화충격인가라는 생각을 수시로 하는 일들이 많았다. 처음 먹어본 햄버거와 감자튀김, 처음 가본 영화관과 카페, 처음 사본 옷과 신발, 처음 해본 학교 땡땡이 등등. 거의 모든 것이 살면서 처음이었다.


남의 집에서 밥을 먹고 잠자는 것, 두 명이서 방을 같이 쓰는 것, 아침에 깨워주는 사람이 없는 것도 처음이었다. 소독약이 섞인 상수도 물 때문에 씻고 나면 온몸이 울긋불긋했고, 모르는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친구관계에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타 학교와 연합동아리 활동도 해보고, 38등이란 성적표를 받고 너무 놀라 성적표 위조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바바리맨 아저씨를 만나기도 했다. 수많은 버스 노선에 헷갈려하다 버스를 잘못 타 하숙집에 오는 길이 천리길이 된 적도 있었고, 안 그래도 길치에 방향치인 나는 비슷비슷하게 생긴 도시 골목에서 길을 잃을까 봐 혼자서는 외출도 무서웠다. 도시에가면 눈뜨고 코 베인다고 정신 바짝 차리라고 헸는데 매 순간이 긴장이라 더 바짝 차릴 정신도ㅜ없었던 시간이었다.


미모사(신경초) 출처: 포르투나샵


도시 생활에도, 낯선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어찌어찌 적응하며 고3이 되었다. 모든 수험생이 그러하듯 인생 가장 큰 과업인 수능을 앞두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던 시기에 책에서만 보던 그 식물을 만났다.


식물은 신경이 없는데 신경이 있는 것처럼 반응한다는 미모사.

진짜로 움직이나 싶어서 손가락으로 잎을 살짝 건드려봤다. 잎 아래쪽부터 순서대로 샤샤샤샥 잎이 접혔다. 간지럼 타는 사람 같았다. 너무 신기했다.


다른 잎도 손가락으로 건드린다. 샤샤샤샥.

잎이 순서대로 접히는 것뿐인데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생명체 같다. 너무 재밌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주인이 나와서 그렇게 계속 만지면 스트레스받아 죽는다고 한소리 한다.

덜컥 화분을 사 버렸다.


집에 데려오긴 했는데 나는 화분에 심어진 식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화분은 겨울에 밭에 두면 얼어버리는 대파를 심어두는 용도로만 사용했을 뿐 지천에 널린 흙바닥을 두고 굳이 집 안에서까지 화초를 키울 일은 없었다.


해가 지니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미모사가 잎을 오므린다. 잠을 자는 것 같았다. 건드려도 반응이 없다.


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화초 키우는 법을 한참 찾았다.


오래 보고 싶어서 학교로 가져갔다. 책상 왼쪽 상단 모서리에 화분을 조심히 내려뒀다. 책상이 작으니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실수로라도 책으로 밀어 떨어트릴 수 있으니 책상에 쌓아둔 책을 치웠다. 엎드려 잘 때도 혹시 건드릴까 조심조심 화분과 먼 책상 귀퉁이 한쪽 팔을 베고 누웠다.


화분을 중심에 두니 학교 생활이 조금 달라졌다.

시간과 계절에 따라 교실과 복도 어디에 해가 잘 들어오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화분을 올려뒀다. 바람이 잘 통하도록 교실 환기도 자주 시켰다. 화분의 안전을 위해 해가 지면 사물함에 넣어둬야 하니 사물함도 깨끗이 관리해야 했다. 주말에도, 방학에도 화분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나갔다. 어차피 고3이라 자율학습이란 이름으로 학교에 가야 했지만 나는 다른 목적으로 학교에 갔다. 사물함에 넣어둔 미모사에게 햇볕을 쬐여줘야 했다.


신기하고 재밌는 미모사는 어느새 내 머리와 마음, 행동을 모두 점령했다.

모의고사 틀린 문제를 정리하다가 잎 하나를 건드린다. 샤샤샤샥. 오므라드는 모습을 보는 게 재밌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수학 시간에도 잎 하나를 건드린다. 또 바로 샤샤샤샥 오므라든다.

성적이 잘 안 나와서 우울할 때도 잎 하나를 건드린다. 샤샤샤샥. 오므라드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미모사가 잘 자랄수록 나도 생기가 돌았다.


온전히 내 영향력 하에 있는 이 생명을 키우는 일은 꽤 즐거웠다.

내가 목숨줄을 쥐고 있는 이 식물을 잘 키워서 꽃도 보고 열매도 보고 싶었다. 최소한 수능 시험을 치를 때까지는 함께하길 바랐다. 얘가 죽으면 수능을 망칠 것 같다는 상상도 해봤다. 더 잘 키우려 노력했다.

다행히도 미모사는 죽지 않고 무럭무럭 자랐다. 꽃도 한 개 폈다.


미모사를 키운 6개월 남짓한 그 시간 동안 나는 참 행복했다.

꽃을 피운 이후 추워진 기온과 응애의 공격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들어갔지만 나의 첫 화분 기르기는 이만하면 성공적이었다.


미모사를 관찰하며 그 순간에 집중하고 몰입했다.

미모사를 보고 만지면 우울한 기분이 나아졌다.

내 통제하에 있는 식물을 돌보며 성취감과 책임감을 경험했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책상 위 화분에 관심을 가졌고 나는 내 자식처럼 미모사를 자랑하고 지식을 뽐냈다.

화분을 놓을 햇볕이 잘 드는 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교실과 학교를 새롭게 알아차렸다.


돌아보니 새삼 그 시절 나를 살렸던 여러 요인 중에 미모사 화분의 지분이 꽤 컸다.

나는 그때 기억으로 힘들 때 화분을 사는 버릇이 생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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