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커서 뭐가 될래?

27년째 장래희망 <꽃집 사장님>

by 졸참

머릿속에 오래된 기억 한 장면이 있다.


아마도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숙제였던 것 같은데 장래 희망과 그 이유를 적어서 내는 거였다. 예쁘게 꾸미라고 했는지 이유를 길게 적으라고 했는지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좋아해서 아껴둔 예쁜 꽃무늬 편지지로 표지를 만들고 송곳으로 상단에 구멍 2개를 뚫어서 실로 예쁘게 리본을 묶었던 기억이 난다. 그림도 그리고 색칠도 했던 것 같다. 꾸미기를 잘 못하던 나에겐 꽤 긴 시간과 정성을 담았은 과제물이었다.


엄마는 방학마다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세트로 사줬다. 매번 직원이 추천하는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는 책으로 사다가 그해 여름방학에는 중학생이 되었다며 처음으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사기로 했다. 나는 고민하다 추리소설 세트를 선택했다.


여름방학 내내 눈 뜨면 추리소설을 읽었다. 집 밖에서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셜록홈스처럼 눈에 보이는 특징들을 단서로 그 사람의 숨겨진 모습을 추측하는 추리연습을 했다. 신발에 흙이 묻어 있는 것을 보며 어디서 흙을 묻혔을지 상상하기도 하고, 가방이나 옷 색을 보고 그 사람의 취향을 추측해보기도 했다. 그 상상은 대부분 틀렸지만 연습하다 보면 언젠간 나도 홈즈처럼 기가 막힌 추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32권의 책들을 거의 다 읽어갈 즈음 방학이 끝나고 있었고 그때서야 부랴부랴 방학숙제를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 꿈을 '괴도'라고 적었다. 경찰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탐정 정도는 생각해 봤던 것 같은 어차피 둘 다 한국에서 번듯한 직업으로 존재하는 일은 아니니 더 간지 나는 괴도로 적었던 것 같다. 루팡이 더 내 취향이기도 했고.


그 외에도 2가지를 더 적었다. 두 번째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선생님께 혼나지 않는 무난한 직업이었던 것 같고, 마지막 하나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꽃을 주며 희망을 선물하는 꽃집 사장님이었다. 각각의 꿈마다 이유를 거창하고 길게 적었던 것 같다. 마지막 단락에는 어떤 직업을 선택해도 사람들을 돕는 멋진 일을 하는 거니 역사에 기록될 거라고 마무리를 했던 것 같다.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왜 날 낳아서 이렇게 힘들게 하냐며 악을 쓰던 청소년기였다. 장래희망을 묻는 방학숙제가 마음에 들었을 리 없다.


삐딱했던 청소년기의 나는 도둑이라는 장래희망을 첫 번째로 적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쫄보여서 선생님께 혼날까 봐 없는 솜씨로 예쁘게 꾸몄던 건 아닐까? 이 셋 중에 진짜로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이 있었을까?



실행할 수 있는 용기


그때로부터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장래희망은 꽃집 사장님이다.


'어차피 라면냄비 받침이 될걸 얼마나 훌륭한 연구자를 만들겠다고 논문 심사를 3번이나 하고 그러냐'라고 절규하며 몸을 갈아 넣어 석사 논문을 썼다. 마음까지 부서지려 하던 시기에 내 마음이 부서지지 않게 잡아줬던 것은 실험실에서 키우던 식물들이었다.


우리 실험실은 쥐를 키우고 뇌파를 연구하는 창문도 없는 북향 실험실이라 식물을 키우기에 모든 것이 부적합했다. 논문 진도가 안 나가거나, 교수님한테 심하게 지적을 받았았을 때, 미래가 불안할 때 나는 실험실에서 화분을 뒤엎었다. 흙을 만지며 다육식물과 관엽식물을 예쁜 화분에 옮겨심으면 불안이 가라앉았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식물들을 관찰하고 물을 주는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온전한 마음으로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졸업 후에 내 이런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꽃집 사장님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호도 생각했다. '심리학 석사 꽃집'.

화분 포장은 연구실에 수북이 쌓여있는 영어 논문을 출력한 A4를 재활용해서 사용하고, 판매한 식물이 죽어간다고 데려오면 다시 살려서 돌려보내주고, 긴 여행을 갈 때는 식물을 맡아서 죽지 않게 관리해 주는 꽃집. 힘든 마음에 맞는 식물을 추천하고, 식물을 키우며 마음이 단단해지도록 도움을 주는 꽃집.


어떤 식물을 팔 지, 얼마에 팔아야 할지를 고민했지만 결국 이 모든 건 상상에 그쳤다.

기숙사에 살았던 나는 졸업식이 끝나면 방을 빼야 했다. 창업을 오래 고민하기엔 당장 생존이 급했다. 일정에 맞춰서 가장 빨리 올라온 취업자리를 선택했다.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도시에서 익숙한 일을 선택하는 것이 익숙한 동네에서 새로운 일을 선택하는 것보다 덜 어려운 선택이었다.


그 후로도 나는 계속 꽃집 사장님을 꿈꿨다.

본격적으로 사장님이 되겠다며 내일 배움 카드로 플라워 비즈니스 창업 수업을 듣기도 했고, 온갖 클래스를 듣고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5월 꽃집 성수기 시즌도 경험하고, 집에서, 회사에서 꽃을 사입하고, 포장하고, 클래스를 열어보고, 사내 동아리로 정기구독 형태의 모임을 1년가량 진행하기도 했다.


지식과 경험이 쌓였지만 여전히 돈과 용기가 생기지는 않았다.

잘 되던 꽃집들도 망해나가던 코로나 시기였다.

꽃집의 현실을 알면 알수록, 내가 잘하는 것, 못 하는 것,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명확해질수록 겁이 났다.


남편은 내게 꽃집 사장님은 귀농하겠다는 꿈과 마찬가지로 사람 관계에 지친 내가 상상하는 도피처 같은 거라 말한다. 서비스직을 하기에는 고집이 세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팔기에는 나의 미적센스가 부족하며, 산수도 잘 못하고 장사 센스가 없으니 사장님이 되면 망하기 딱이라고 직장 생활하면서 지금처럼 시간 될 때 잠깐씩 취미로 하라고 한다.


이제는 싫어하는 것을 피하는 삶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삶이면 좋겠다. 나는 내 삶에 흙과 초록이 함께하길 바란다. 지금 삶을 정리할 용기가 조만간 생기길 바라며 힘을 내 본다.


내가 초록에게 받았던 위로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어떻게 망하지 않는 사업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본다.


나는 언젠가는 사장님이 될 거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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