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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aD Apr 21. 2016

2016 상반기 취준생 일기

도서관 편

#2016-1_취준생_일기


도서관 편




나는 지금 도서관에 와있다.

안락하고 쾌적하기로는 카페겠지만

매일 출근도장 찍기에는 분위기 값이 비싸다.

밥 먹으러 갔다 오면 커피 또 사야하잖아!


아무튼 동네 도서관도 깔끔하다


사람이 가장 붐비는 곳은 3층 열람실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열람실 가득 이산화탄소를 불어넣는 열정에 자극을 많이 받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들 열심이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교복의 비중이 높아졌는데, 퇴근 후 자기계발에 몰두하시는 분들도 종종 보였다. 금요일 밤에는 교복이 없다ㅋ 오손도손 같이 공부하는 교복 커플이 보기 좋았다. 고3 동생에게 요즘 내가 가장 자주 하는 잔소리는 `딴생각 말고 연애해라` 다.


내가 고등학교 때 일단 공부를 결심한 이유는 주변의 잔소리 때문이었다. 좋은 대학 가면 잔소리가 1/30로 줄겠군. 그다음 잔소리가 기다리고 있는 걸 몰랐다.

콘크리트 닭장 속에 가만히 앉아 이거 왜 하는지도 모르겠는 걸 계속하는 것도 짜증 났다. 명문대 가면 안 해도 되는 줄 알았다. 인적성에 소금물 문제 나왔다. 아


넘치는 학구열에 감동하면서도, 왜 이렇게 다들 책상에 앉아서만 공부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2층 책 읽는 곳은 텅텅 비어있는것도 아쉽다.


사실 난 좋다 난 지금 2층 독서용 쇼파에 앉아(창밖을 바라보고 있어서 송도 팡세느낌 난다) 페북중이다. 여기 소설책 다읽어야지 난 희대의 백수니까


그 흔하디 흔한 불륜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레프 톨스토이는 8000페이지짜리 소설을 썼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1층은 연속간행물실이다. 노년 인구 비율이 높았는데, 특히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영자잡지를 보고계셔서 신기했다. 시사잡지를 하나 집어 그 할아버지 앞에 앉았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다리를 내리라고 하셨다. 앞 탁자에 닿아서 그런가보다 하고 당겨 앉았다. 할아버지가 또 다리를 내리라고 하셨다. 왜냐고 물어봤다. 믿거나 말거나 (세 번째 까지는) 진짜로 궁금해서 왜냐고 물어봤다.악동뮤지션의 `다리꼬지마`가 생각났는데 그런 애정어린 이유일까? 할아버지가 다시 다리를 내리라고 하셨다. 왜냐고 다시 물어봤다. 이걸 몇 번 반복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실컷 물었다.

내 앞에서 다리 꼬지 말라고 하셨다. 뭔가 색다른 이유를 기대하던 나는 맥이 빠졌다. 내게는 네 가지 옵션이 있었다.


1. 할아버지 눈에 보이지 않도록 바로 옆에 가서 앉는다

2. 난 여기가 좋으니 불편하시면 할아버지가 움직이시라고 한다

3. 저만치 가서 앉는다

4. 골반의 안녕을 위해 똑바로 고쳐 앉는다


장유유서는 내가 좋아하는 가치이고(내게는 협의의 의미인가보다. 다리 꼬지 않기는 양보의 대상이 아니다), 정정해 보이시긴 했지만 고혈압과 류마티스 관절염 등이 우려되어 나는 3번을 택했다. 옮겨앉으며 개인적으로 억울한 기분도 들었고, 이게 전 사회적으로는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서로를 이해해야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건가? 이해할 수는 있을까? 내가 보기엔 화딱지 나 죽겠는 것에 아무 말 안하는 게 똘레랑스인가? 애초에 화딱지가 안날 수는 없나? 꼭 나이 때문에 건널 수 없는 강을 마주하는 것은 아닐 텐데

그 할아버지도 왜 다리 꼬는 것을 좌시할 수 없는지에 대한 8000페이지 짜리 소설이 있을 것이라 나를 위로했다.


아재 개그가 인기던데, 희망을 걸어 본다.


아무튼 동네 도서관 좋다. 우리 시골 할머니 동네에도 하나쯤 있으면 좋을텐데. 학교도 많으니 이미 할머니는 신문을 읽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다리 내리유~ 하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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