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요리를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아깝지 않은 식당. 100년의 세월 동안 엄격한 평가를 통해 세계적인 권위와 영향력을 지닌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3개가 부여되는 가장 뛰어난 식당을 선정하는 기준이라고 한다. 참 근사한 표현이다. 여행을 떠나도 아깝지 않을 요리라니.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면 우리도 우리만의 미슐랭을 헤아려본다. 미슐랭의 선정기준에는 맛뿐 아니라 가격이나 서비스, 분위기까지 포함되어 그 식당의 전반을 고루 살펴 평가한다고 한다. 하나의 경험을 구성하는 것은 비단 한 가지 자극이 아니라 그 순간의 모든 감각일 테니, 공감이 가는 기준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듯 우리의 경험도 온전히 그 순간 그곳에 머물러있던 우리의 지극히 주관적인 모든 기억들로 버무려져 있다.
얼마 전 요즘 SNS에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오는 유명한 쌀국수집에 갔다. 밖에는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머리칼과 옷에 떨어진 빗방울을 털어내며 작은 테이블에 무릎을 맞대고 마주 앉았다. 벽에는 베트남의 풍경 사진들이 걸려있고, 일하는 분들도 베트남분들이신듯 독특한 억양의 언어가 들려왔다. 이국적인 패턴의 식기에 담겨 나온 뜨거운 국물에서는 쌀국수 특유의 진한 육수 냄새와 신선한 고수 향이 났다.
남편이 내게 물었다. "여보는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는 쌀국수가 뭐였어?"
대답을 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볼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같은 대답을 꺼내놓았다. 내 앞에 놓인 한 그릇의 온도와 내음이 우리에게 같은 기억을 불러왔다.
얼이와의 세 번째 여름, 우리 셋은 베트남 호치민으로 떠났다. 나는 십 년 만에 가는 두 번째 베트남이었다.
베트남 음식은 매력이 넘친다. 일 년에 이모작, 삼모작을 할 정도로 쌀이 풍요로워서 국수나 빵도 쌀가루로 만들어 소화하기에 부담이 없고, 고수처럼 호불호가 갈리는 향신료를 제외하면 한국사람들의 입맛에도 대체로 잘 맞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베트남의 다양한 음식들을 정말 좋아해서, 음식만을 맛보기 위해서 여행하기에도 충분한 나라가 베트남이 아닌가 싶다. 어딜 가서 무엇을 먹어도 맛있고, 특히 쌀국수는 어디에서 먹어도 그 풍미에 반하게 된다. 덕분에 우리는 도착 첫날부터 저녁만 두 끼를 먹었다. 그중 첫끼. 호치민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먹었던 쌀국수가 우리가 그때까지 평생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는 쌀국수였다.
호텔에 막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오던 길이었다. 우리는 적당한 식당을 찾아 걷고 있었고, 길가에 놓인 작은 손수레에서는 쌀국수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 간혹 오토바이들이 멈춰서 쌀국수를 한 그릇씩 포장해가거나 몇몇은 그 주위에 서서 작은 그릇을 손에 들고 훌훌 먹고 있었는데, 무심코 그 곁을 지나쳐가다가 구수한 냄새에 이끌려 우리는 뒷걸음으로 걸어서 그곳으로 되돌아갔다. 호기심이 일어서 간단히 맛만 볼까 싶어 한 그릇을 주문한 뒤, 능숙한 손놀림으로 말아주는 쌀국수를 받아 들고는 한 모금 맛을 봤는데, 우와.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진하고 깊은 맛이 났다. 그렇게 우리는 유모차에 앉은 얼이와 함께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그 쌀국수를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싹 비웠고, 얼이도 처음 먹어보는 고수가 듬뿍 들어간 쌀국수를 호로록호로록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또 걷다가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이번에는 길가에 있는 작은 테이블과 그보다 더 작은 의자에 셋이 모여 앉아 두 번째 쌀국수로 두 번째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베트남에서의 여행은 차곡차곡 맛있는 기억으로 채워졌다. 동네 사람들이 길게 줄 서있는 가게 앞을 지나가다 우리도 함께 어울려 줄을 서서 반미를 사고, 더위에 지치면 연유가 듬뿍 들어간 생과일주스나 진하고 달콤한 베트남 커피를 마시고 기운을 냈다. 프랑스 식민통치의 역사는 베트남의 곳곳에 많은 영향을 주어서, 프렌치 파인 다이닝도 맛볼 수가 있고, 온화한 기후와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한 풍부한 식재료의 영향으로 베트남 고유의 음식 문화도 다채로워서 다양한 미식을 경험할 수 있었다.
여행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음식이고, 식도락은 우리 여행의 큰 즐거움이기도 하다.
음식에는 각 나라의 삶과 문화가 녹아있기에 음식을 맛보는 것은 그 나라를 경험하는 데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없는 부분이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여행할 때 따로 음식을 전혀 가져가지 않고 현지 음식만 먹는다. 얼이도 완료기 이유식을 먹고 있던 샌프란시스코 여행 이후로는- 물론 그 여행에서도 후반에는 반강제로 현지에서 조달한 유아식을 먹었지만- 얼이가 먹을 음식을 준비해 가지 않고 항상 우리와 함께 현지 음식으로 식사를 했다.
다행히 얼이는 뭐든 잘 먹는 편이고, 먹는 걸 좋아해서 아직까지는 탈이 나거나 음식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도 성장이 중요한 시기이니까 날마다 육류나 해산물로 단백질과 철분을 충분히 공급해주고, 여행 중에는 피로해지기 쉬우니 비타민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도록 현지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풍성한 제철과일들을 간식으로 주었다. 동남아나 미국, 유럽 등 다른 나라들은 아무래도 간을 좀 세게 하는 경향이 있어서 아이가 먹는 음식은 저염이나 무염으로 조리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늘 우리와 같은 재료와 조리법으로 만들어진 같은 음식을 먹었다. 영양제나 보양식 같은 다른 특별한 것 없이 그 시기에 그곳에서 나는 건강하고 신선한 식재료를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것. 이것이 우리 가족의 면역력과 건강을 지키는 단순한 방법이다. 실제로도 그 지역에서 많이 먹는 향신료는 그 지역의 모기나 해충이 싫어하는 향이 나기도 하고, 많이 먹는 식재료에는 필요한 영양소가 함유되어 있어서, 현지 음식을 먹는 것이 그곳에서 생활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음식을 먹는 것에 있어서는, 얼이에게 평소에는 크게 제한을 두지 않고 뭐든 자유롭게 해볼 수 있게 해주는 편이지만 식사예절은 엄격하게 지키도록 하고 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자리에 앉은 뒤 함께 기도한 후에 식사를 하고 식사 중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가르쳐주었고, 음식을 먹을 때는 텔레비전이나 동영상을 보거나 장난감을 만지지 않고 자기 자리에 앉아서 앞에 놓인 음식과 함께 앉은 사람들과 그 자리에만 집중하게 했다. 언제나 내게 중요한 건 현재에 사는 것이라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을 살아가면서 잊지 않고, 놓치지 않으려 늘 노력하곤 한다. 하여 내가 얼이에게 가르치고 알려주는 것들 중 많은 것이 이 기준에 따른 것이었다. 그래서 음식을 먹는 것도 그 시간을 견디는 게 아니라, 온전히 그 순간과 맛을 음미하고 즐기며 누릴 수 있었으면 했다. 무언가를 진정 즐기려면,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면 된다. 다행히 얼이도 식사시간을 즐거워해서 혼자 아기의자에 앉게 된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두 시간이 넘는 코스요리를 먹으러 가더라도 내내 우리와 함께 음식을 맛보고 즐기며 끝까지 자기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마친다.
다만 나는 편식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계속 달라지고 바뀌어서 얼이도 어제까지는 생당근을 과자처럼 먹다가 오늘은 당근을 다 골라내기도 하고, 지난번에는 질색하던 양파를 오늘은 자기 그릇에 전부 담아달라고 조르기도 하기에. 무엇보다 나는 뭔가를 강요하는 게 싫었다. 무언가를 억지로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얼이가 우리를 닮아 고집도 센 데다, 나쁜 기억을 만드는 건 그 음식에 대해 더 부정적으로 만들게 될까 싶어 굳이 강하게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강요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 더욱이 아이들의 혀에 있는 미각세포는 성인보다 2-3배 많아서, 매운맛의 통각이나 채소의 쓴맛 등을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잘 먹지 않더라도 좀 더 기다려줘야 한다고. 대신 엄마로서 불균형한 식단을 그대로 둘 수는 없으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다른 방법으로 음식을 맛보게 해주었다. 콩 대신 두부를, 당근 대신 당근케이크를 주었고, 재료들을 볼 수 있는 시장에 함께 가고, 가끔은 체험해볼 수 있는 농장이나 작은 텃밭에도 가고, 무엇보다 재료를 함께 손질해서 요리를 했다. 경험에는 마법처럼 놀라운 힘이 있어서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는다. 얼이는 자기가 직접 토핑을 올린 버섯 피자나 작은 손으로 채소를 듬뿍 다져 넣어 조물조물 빚은 주먹밥이나 함께 반죽을 휘저은 부침개는 늘 말끔히 비우곤 했다. 비지나 시래기, 우거지 같은 토속적인 음식들을 좋아하고, 여행을 다니며 자연스레 다양한 식자재들을 맛보면서 더 많은 음식들을 즐기게 되었다.
어릴 적 편식이 심했던 나를 자연스레 바꾸어 놓은 것도 경험, 바로 여행이었다. 아프리카에 있었던 두 달간의 시간이나 혼자였던 유럽 여행에서는 정말 먹을 것이 충분치가 않아서 주어진 모든 것을 감사하며 소중하게 먹었다. 또한 이집트나 다른 몇몇 나라들을 여행하며, 많은 문화권에서는 손님을 환영하고 극진히 접대하는 의미로 그들의 전통적인 음식들을 대접하고, 그것을 깨끗하게 비우는 것이 그 환대에 대한 예의임을 배웠다. 탄자니아 초원에서는 들판에 앉아 마사이 부족 사람들이 잡아주는 염소고기와 끓인 젖을 마셨고, 이집트 사막에서는 베두윈족 아주머니 곁에서 따끈하게 화덕에서 갓 구워낸 빵을 먹기도 했다. 음식을 먹는 것은 그 문화를 존중하고 관계를 맺는 방법이었다.
물론 주의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인도로 떠나기 전에는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고, 잘못 먹고 탈이 나서 남은 일정을 모두 망쳤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공중위생이 아직 잘 자리 잡지 않은 나라들의 경우에는 생수 같은 것도 식당에서 제공하는 것은 마시지 말고 개인적으로 직접 구입해서 휴대한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즐겁게 골고루 먹고 푹 쉬고 잘 자는 것은 편안하고 건강하게 여행을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자꾸만 만나면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처럼, 음식도 여러 번 맛보면 좋아하게 된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아이들이 다양한 식재료와 조리법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균형 있게 맛볼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모여 정부 차원에서 보육기관과 학교의 식단을 결정한다고 한다. 다른 모든 감각처럼 미각도 발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극이 필요하고, 세계적인 미식가들의 나라의 문화도 어린 시절부터의 경험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어릴 적 나는 요거트와 치즈를 싫어했다. 얼마나 싫었는지, 스무 살이 넘도록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러다 스위스에 가게 되었다. 처음 퐁듀를 맛보고는 그 강렬한 향와 꼬릿한 맛에 얼마나 놀랐는지. 그 후로는 그야말로 질색하며 멀리했다. 그런데 스위스에는 어디를 가도 치즈가 있었다. 마트에 가면 요거트가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빼곡하게 수십에서 수백 가지가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었고, 거의 모든 식사마다 요리에 포함된, 혹은 곁들인 치즈가 테이블에 올라왔다. 그렇게 스위스에서 일 년간 사는 동안 치즈와 요거트는 어느새 내게도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어떤 사람이 사랑하는 이에게 매일 편지를 보냈더니, 결국 그 사람이 우체부와 사랑에 빠졌다고 했던가. 나도 끝내 사랑에 빠졌다. 치즈와 요거트가 없다고 해서 그동안의 내 삶이 볼품없다거나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다만 이제는 내가 삶에서 즐기게 된 것이 더 늘어났다. 그리고 그것은 내 삶에 조금 더 풍부한 맛을 더해주었다.
이러한 경험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렇게 나는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좋아하게 되었고, 내 삶에서는 더 다양한 맛이 났다. 어느 날은 친구가 파리에 다녀오면서 사 왔다며 먹어보라고 과자를 주었는데, 작고 예쁜 그 과자는 너무 달아서 한조각도 다 먹을 수가 없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쉽게 부스러지는 이 동그랗고 조그만 과자가 왜 그렇게 비싸고 유명한 걸까 궁금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혼자서 세 번째 파리에 갔을 때, 왜 그랬는지 지금도 또렷이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 나는 가진 남은 동전을 모두 털어 샹젤리제 거리의 한 가게에서 마카롱을 샀다. 아마도 그 고운 빛깔의 섬세한 과자가 그 밤과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밤에 맛 본 마카롱 이후로 내게 모든 마카롱은 사랑스레 달콤하고, 파리의 밤하늘 맛이 난다. 미각은 때로 이렇게 기억도 가둔다. 그러니 우리는 여행에서 더 많은 것을 맛보아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편식을 고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음식에 대한 즐거운 경험을 많이 만드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나만의 취향과 고유한 기억들, 추억의 맛을 많이 만들어두는 것은 우리의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경험하는 것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감동하게 된다는 것은 요리에도 유효하다. 그러니 나는 세상의 다양한 맛과 아름다움을 맛보고, 느끼고, 음미하며 살고 싶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더 많은 세상을 맛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