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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Mar 22. 2017

지루한 여행을 떠났으면 해.

제가 그동안 연재하고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수상했던 '사랑해 얼만큼'이 

책 '지루한 여행을 떠났으면 해'(북하우스)로 출간되었습니다. 

책의 제목은 바로 이 글에서 가져왔어요. 하지만, 해당 글은 책에는 실려있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 






얼이가 태어난 후로 두 돌 무렵까지 장난감을 사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금도 또래 친구들에 비해서는 장난감이 많지 않은 편이지만 이 때는 더 적어서, 건너 건너 물려받은 장난감 몇 개에 선물 받은 장난감 조금이 전부였다. 그 흔한 모빌이나 아기체육관 하나 없이 얼이는 컸다. 책도 거의 사주지 않았다. 대신 주말마다 도서관에 갔고,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해서 함께 자주 들렀다. 집에 있는 책들은 간혹 선물 받거나 물려받았고, 가끔 셋이 헌책방에 가서 고르고 골라 한 꾸러미씩 사가지고 온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여행을 다닐 때 장난감은 거의 챙겨가지 않는다. 예전에는 아예 아무것도 가지고 다니지 않았는데, 조금씩 크면서 자기 물건에 대한 소유 개념도 생기고 고집도 자라서 언제부터인가 얼이가 밖에 나갈 때면 하나둘 자기 물건들을 가지고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져간다 해도 한두 개가 전부이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얼이가 직접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의 작은 것을 가지고 간다. 사실 밖에서 들고나간 장난감들을 가지고 노는 시간은 길지 않은데, 집에 있는 '내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는 듯하다. 자기 소유의 익숙하고 편안한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아서, 그때는 또 그렇게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게 했다. 장난감을 가지고 나가지 않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도 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우리가 함께 머무는 순간을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하지만 여전히 여행을 갈 때는 가능한 가방을 비우려고 한다. 

언젠가 누군가 내게 굳이 그렇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얼이가 언제든 꺼내어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보다는 우리가 함께 있는 그 장소와 그 순간을 함께 보고 느끼고, 온전히 누렸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도 그와 같다. 가끔 나도 휴대폰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끄면, 순간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건가 현실감이 사라질 때가 있으니.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이 곳에 존재하기란 어른인 내게도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연유로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과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여주는 것은 내게 있어 전혀 다른 영역의 고민이다. 나는 디자인과 함께 영상을 전공했다. 영상이 아이들에게 주는 위해성뿐 아니라 유익성도 충분히 알고 있다. 양육하는 부모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실제적인 이유뿐 아니라, 영상 매체가 영아기 이후의 아이들에게 유의미한 교육효과가 있다는 연구사례도 여러 건 읽어보았다. 얼이도 지금은 집에서 텔레비전을 본다. 혼자서 혹은 나와 함께 여러 프로그램들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안에서 평소에는 가까이서 보기 힘든 동물들도 만나고, 가보지 못한 나라들에도 다녀오고, 우주와 몸속을 탐험하고, 노래도 배운다. 하지만 ‘현재’를 사는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이런 나의 바람으로, 내가 얼이와 그 순간을 함께 보내고 싶기 때문에, 얼이도 그곳에 나와 함께 있었으면 해서. 외출하거나 특히 여행을 떠날 때는 장난감을 많이 챙긴다거나 휴대폰은 보여주지 않는다. 내가 이 것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임을 강조하는 것은 행여나 이 짧은 글로 마음이 상하거나 미안함을 느끼는 부모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나는 육아의 방식은 삶의 모습처럼, 세상의 모든 부모의 숫자만큼 다양하고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다양함이 세상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이 것은 내가 나의 아이를 기르는 방법일 뿐이다. 나의 모든 감사와 만족은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때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톨스토이는 말했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얼이가 매 순간 손에 들린 반짝이는 ‘지금’의 아름다움을 살필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또 다른 이유는,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장난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모든 아이들에게는 무엇이든 놀잇감으로 만들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여도 아이들은 온 세상과 우주를 만들어 그 안에서 뛰어논다. 얼이는 날마다 집에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장난감과 살림살이를 꺼내서 내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매일 다른 놀이를 하며 놀았다. 밥을 지을 때마다 쌀을 냄비에 소복이 담아주면 모래 놀이하듯 만지며 놀았고, 화장실에서 대야에 물만 받아주어도 신이 나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뭐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낙엽이나 솔방울을 주으러 가고 싶다고 대답하고, 길을 걷다가 줍는 작은 돌멩이와 나뭇잎, 부러진 나뭇가지 하나면 세상을 다 얻은 듯 뿌듯하게 행복해했다. 말을 곧잘 하는 지금은 손에 그러모은 부서진 나무껍질과 자갈들을 살며시 내게 보여주면서, "이거 형아가 소중히 아끼는 거야~"하고 얘기해준다.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영수증에 그림을 그리거나 종이접기를 하거나 휴지를 두어 장 뭉쳐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만들어서 노는데, 한 번은 테이블 위에 구겨진 휴지가 있길래 버리려고 했더니 자기가 만든 변신 로봇이라면서 내내 가지고 놀다가 집까지 고이 들고 왔다. 

얼이가 세 돌을 앞둔 봄. 나와 함께 LA에 갔다. 10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비행기를 탈 때는,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어야 하니까 얇은 스티커북이나 얼이가 좋아하는 퍼즐을 챙겨가지고 타곤 하는데, 우리가 탔던 비행기는 출발하기 전부터 뭔가 부산스럽다 싶더니 이륙 직전에 기내의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고장이 나서 사용이 불가능하다며 양해를 바란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비행기 안의 모니터가 전부 작동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내심 비행시간도 길고, 아빠도 없이 떠나는 여행이니 내가 힘들 때는 얼이에게 기내에서 틀어주는 영화를 보여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믿는 구석이 사라진 것이었다. 휴대폰에 동영상 넣는 법도 모르고 가져온 장난감도 없으니, 이제는 정말 꼼짝없이 우리가 가진 것만으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비행기는 이륙했고, 다행히 몇 시간은 스티커와 퍼즐에 푹 빠져서 지나갔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나중에는 조명마저 고장이 나서 기내가 부분 부분 어두워졌다. 곳곳에 불이 꺼지니 책을 보거나 퍼즐을 하는 것도 더 이상은 어려워졌다. 그때 얼이가 내게 조그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엄마 우리 이야기하자!" 그렇게 우리는 남은 비행시간 내내 손가락으로 토끼와 악어를 만들어 그림자놀이를 하고, 종알종알 끝도 없는 이야기를 만들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비행기는 토끼와 악어, 그리고 온갖 동물과 물고기들, 빠방이와 로봇을 태우고 상상 속을 날아 우리를 LA에 데려다주었다. 얼이는 11시간을 꼬박 놀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에야 잠이 들었다. 


여행을 떠날 때 장난감을 가지고 가지 않는 마지막 이유는, 때로는 우리에게 지루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디자인을 공부했다. 관념을 실재(實在)로 만드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에 담아내는 것이 나의 직업이니, 공상이 얼마나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은 정적 속에서 자라날 때가 많다. 나는 내 아이가 고요를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행만큼 고요를 누리기에 좋은 것도 없다. 무료함은 때로 유익하다. 지루함은 상상력을 풀어놓는다. 그 시간 동안 생각은 쑥쑥 자라 쭉쭉 뻗어나가고, 거기에서 창의성이 자라난다. 심심함과 창의력의 상관관계에 관한 과학적인 증명은 얼마든지 있다. 더욱이 요즘에는 멍 때리는 것이 뇌 운동과 건강에 좋다며 일부러 권하기도 하는 복잡하고 시끄럽고 분주한 세상에서 모두가 살고 있으니 우리는 애써 고독을 찾아가야 한다. 나는 대학시절 통학하느라, 매일 여행처럼 지하철에서 한 시간씩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을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으로 정해두곤 했다. 그렇게 하루에 두 번씩 마음껏 상상할 시간을 얻고, 머릿속에서 자유롭게 찬찬히 디자인 구상을 끝낸 후에 집이나 학교에 도착하면 펼쳐둔 생각들을 책상이나 컴퓨터에 풀어놓곤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회사를 다니다가 모두 정리하고, 일 년간 스위스에 있었다. 디자인과 전혀 상관없는 일들을 하고, 혼자 여행을 다녔다. 적막한 날들이었다. 그 시간은 나의 커리어에 빈칸이고 공백이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나의 브랜드 '시간이지나'를 시작했다. 고요의 끝에 사유는 영감이 되어 세상에 태어났다. 꿈은 현실이 되었다.

아이들은 세상 모든 것을 장난감으로 만들어 노는 지루할 줄 모르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무료함을 잘 누리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얼이와의 세 번째 가을, 단 둘이 제주로 여행을 떠났다. 내가 평소에 아이와 다니면서 대중교통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이동하는 동안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관심을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주는 아이와 함께 대중교통으로 여행하기에는 너무 고될 것 같았고, 렌터카를 이용하는 편이 시간이나 비용으로나 합리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둘이서 차를 타고 제주를 둥글게 한 바퀴 돌며 며칠 동안 제주의 구석구석을 다녔다. 나는 앞자리에서 운전을 하고, 얼이는 평소처럼 뒷자리 카시트에 앉았다. 굽이굽이 산길을 달리고, 야트막한 돌담과 감귤밭 사이를 지나고, 바다 옆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노래도 불렀지만, 많은 시간 침묵과 풍경 속을 달렸다. 나는 룸미러로 창 밖을 바라보는 얼이의 옆모습을 보며 얼이가 그 고요를, 그 심심하고 무료한 시간을 그대로 견디게 두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잠을 많이 잔다. 신생아 때는 잠시 외출만 하고 돌아와도 품 안에서 그대로 곯아떨어지곤 한다. 그 무렵에는 눈으로 무언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모두 새로운 정보이고 자극이라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고, 그만큼 많이 자야 수면시간 동안 비로소 뇌의 연결망들이 이어지면서 해마에 있던 기억이 정리되어 대뇌에 저장된다고 한다. 잠이 들지 않더라도 우리 삶에 주어지는 조용하고 고요한 시간들은 우리 주위에 부유하고 있던 것들이 가라앉아 흡수될 수 있는 시간을 우리에게 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시간들을 통해 뻗어 나고 단단해진다. 게다가 여행만큼 고요를 연습하고 배우기에 적절한 시간이 또 어디 있을까.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지루함의 즐거움과 유익을 얼이에게도 마음껏 누리게 해주고 싶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도토리와 나뭇잎을 주으며 너무 즐거워하던 얼이. 도토리들은 모두 인사하고 풀밭에 두고 왔다.
제주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새들을 따라 다니는 중.
나와 단둘이 제주. 어디든 흙 한줌만 있어도 하루종일 노는데, 바닷가 드넓은 모래사장에 데려가니 하루종일 신이 났다.
얼이가 좋아하는 솔방울. 무언가 만들 수도, 굴릴 수도 있고, 들고만 다녀도 행복하다. 친환경 가습기로도 사용 가능!
제주 녹차밭. 흙과 풀만 있다면 어디든지 갈 수 있어.
그랜드캐년. 미국까지 와서도 장난감없이 돌멩이만 가지고 잘 논다. 다만 클로즈업하면 우리동네 뒷산 같다는게 약간의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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