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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Feb 17. 2017

샌프란시스코에서 바다를

가을,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는 바다 옆에 위치하고 있다. 마치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처럼 느껴질 만큼 가파른 경사의 오르막 내리막 길을 따라 케이블카를 타고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의 끝, 저 너머에 반짝이는 바다가 보이곤 한다. 





페리 빌딩. Ferry Building. 


우리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찾아간 곳은 페리 빌딩이었다. 한국은 늦여름에서 막 초가을로 넘어갈 무렵이었는데,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는 완연한 가을이었다. 더없이 맑고 쾌청했다. 바람이 아주 많이 불었고, 아침저녁으로는 옷을 덧입어야 할 만큼 쌀쌀해졌지만 한낮의 날씨는 눈이 시릴 만큼 쨍한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반짝이고 선명했다. 아, 이것이 캘리포니아의 햇살이구나. 

트램을 타고 도착한 페리 빌딩은 말 그대로 페리를 탈 수 있는 터미널이자 선착장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가게와 식당이 위치한 하나의 쇼핑센터이기도 했다. 건물 안쪽에는 마트와 편집숍, 레스토랑과 카페, 서점 등 다양한 매장들이 들어서있고, 바닷가 쪽 야외 공간에서는 과일과 채소들을 팔고 푸드트럭이 늘어선 파머스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기분 좋은 시끌벅적함에 맛있는 냄새가 곳곳에서 풍겨오고, 풍성한 볼거리와 먹을거리에,  밝고 유쾌한 분위기까지. 그저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들뜨고 즐거워지는 공간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식사도 하고, 커피와 디저트도 즐기며 가게들을 둘러보고, 바닷가를 따라 산책하며 가득 찬 오후를 보냈다. 



페리빌딩에서 바라보는 바다. 정면에 보이는 다리는 오클랜드 베이 브릿지.


동물을 정말 좋아하는 얼이. 거리에서 개나 고양이, 비둘기 한마리라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말을 건넨다.


페리 빌딩 앞쪽으로는 파머스 마켓이 한창이었다. 우리도 푸드트럭에서 갓 만든 음식을 사서 바닷가를 바라보며 나눠먹었다.


페리빌딩에서 바닷가를 따라 계속 걸으면 저 멀리 Pier39와 피셔맨스워프까지 이어진다.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성한 페리 빌딩. 우리는 여기서 페리를 타고 소살리토로 갔다.



소살리토. Sausalito.


페리를 타고 도착한 아름다운 예술 마을. 소살리토.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였던 이 곳. 소살리토는 '작은 버드나무'라는 뜻으로 부촌이자 리조트 지역이면서, 그 아름다움으로 유명해 영화의 배경으로도 많이 등장한 곳이라고 했다. 영화 ‘소살리토’에서 이상향처럼 그려져 궁금했던 곳인데, 실제로 가보니 고급 주택가 곁으로 수많은 요트들이 햇살을 받으며 해안가에 정박되어 있어 부유하면서도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예술가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바닷가를 따라 늘어선 집들이 단 한 채도 비슷한 디자인이 없고 모두 제각각 개성 있고 아름다워 마치 하나의 작품들처럼 보이는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아기자기한 상점과 식당들도 많고, 많은 관광객들이 거리와 가게들을 채우고 있었는데도, 소란스럽거나 시끌벅적하지 않고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있었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우리도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고 느긋하게 산책하며 천천히 동네를 둘러보았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 나라와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책이나 영화들을 찾아보곤 한다.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봤던 몇 편의 영화들 중 기억에 남는 것 하나는 여명과 장만옥 주연의 ‘소살리토’였다. 개봉한 지 십 년도 훌쩍 넘은 영화라 전체적으로 조금은 촌스럽고 진부한 흐름이 없진 않지만, 샌프란시스코의 면면과 특징들을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 영화 속 가난한 화가인 여자 주인공은 언제나 소살리토를 그리며 그곳에 살기를 꿈꾸는데, 이 작은 마을이 왜 누군가가 그토록 바라고 가서 닿기를 원하던 꿈이 되었는지. 잠시지만 조금은 가늠해볼 수 있었던 산책이었다. 


여기서도 강아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아빠와 아들. 



시계도 들여다보지 않고, 길을 잃는 줄도 몰랐던 소살리토에서의 산책은 결국 돌아오는 페리가 모두 끊겨서 배 대신 버스를 타고 금문교를 건너 다시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피어 39. Pier 39.


마치 유원지에 온 것처럼 시끌벅적했던 피어 39. 우리도 관광객답게 한껏 기분을 냈다. 바닷가니까 해산물을 먹어줘야지. 모두 목에 작은 앞치마를 하나씩 걸고 적극적으로 임했던 맛있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회전목마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제법 서늘해진 바람결에 바다 냄새가 났다. 



그리고 음악소리를 넘어 어디선가 들어본 적 없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컹컹-" "옹옹-"뭐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수없이 많은 어떤 동물들이 내는 시끄러운 화음 소리. 그 소리를 따라 더듬더듬 걸어가 보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밤이라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바로 뒤편이 바닷가였고, 그 위에는 수 십 마리의 바다사자들이 누워있었던 것이다. 캄캄한 하늘과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바다 위로 매끈하게 빛나는 묵직한 생명들. 

그 경이로운 풍경이 아무래도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아서 우리는 낮에 다시 오기로 하고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찾아간, 오후의 피어 39. 


낮에 보니 더 신기하고 귀여운 광경. 



피셔맨스워프. Fisherman's Wharf.


해안가에 위치한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 피어 39도 피셔맨스워프에 위치하고 있고, 기념품 가게와 유명한 식당 등을 이 곳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 다양한 해산물 요리들이 걸음마다 발길을 붙잡는 곳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는 그 유명한 클램 차우더를 먹어보기로 했다. 



사워도우로 만든 브레드볼에 담긴 뜨거운 클램차우더. 



금문교. Golden Gate Bridge. 


아마도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일 금문교.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이 다리를 우리는 마지막 날에야 가까스로 보러 갈 수 있었다. 특별한 계획 없이 마음과 걸음이 닿는 대로 다니다 보니, 시 외곽에 있는 금문교는 따로 보러 갈 새도 없이 그저 이 도시에 푹 빠져 머물던 모든 날들이 흘러갔다. 소살리토에 다녀오면서 버스로 금문교 위를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 가까이서 또렷이 그 거대하고 유명한 다리만을 위해 내어줄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날 오후에야 우리는 금문교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금문교로 가는 버스 정류장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도를 아무리 들여다보고, 길가는 사람들에게 물으며 돌아다녀도, 그 자리에는 정류장이 없거나 아니면 우리가 타려는 버스가 없었다. 그렇게 버스를 찾아 몇 개의 블록을 돌고 또 돌고, 걷고 또 걸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한참 흘렀다. 평소 같으면 걸으면 걷는 대로 그 순간과 거리를 즐겼겠지만, 점점 다리가 아파 더 이상 걷기도 힘들어졌고, 무엇보다 금문교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우리를 누르기 시작했다. 무거운 다리와 마음을 끌고 다시 버스정류장을 찾아 다른 거리로 향하는데, 그 순간 갑자기 우리가 찾던 바로 그 버스가 저 멀리서 나타났다. 그 뒤로는 하늘 끝을 물들이며 해가 지려고 하고 있었다. 순간 남편이 외쳤다. “여보, 뛰어!” 남편은 얼이가 탄 유모차를 밀고, 나는 카메라와 가방을 움켜쥐고, 우리는 정말 그 먼 거리를 나는 듯이 달려갔다. 얼마나 빨리 뛰었는지 나는 순간 영화 'E.T'에서 자전거가 날아오르던 순간처럼 유모차 바퀴가 땅에서 떠오른다고 생각했다. 맙소사. 그리고 숨이 턱에 닿아 마침내 그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타고 나서야 우리는 마주 보고 깔깔 대며 웃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렇게 우스꽝스럽게 열심히 달렸는지. 무엇보다 여행 오기 직전에 구입한 5만원도 안 하는 휴대용 유모차가 남편 손에 밀려 엄청난 스피드로 비행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생각이 나서 그 후에도 혼자서도 쿡쿡대며 어깨를 들썩이곤 했다. 사실 나는 그때 그 유모차가 그대로 부서져 버리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그 대견한 유모차는 그 후로 우리와 함께 비행기를 열 번도 더 탔다. 

그렇게 도착한 금문교에서는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시시각각 다른 빛으로 물들며 어두워졌다. 아, 보러 오길 잘 했다. 보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야. 오히려 그 시간에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샌프란시스코는 바람이 많이 불기로 유명하지만, 단연 바람이 세차게 불었던 곳은 이 곳이었다. 우리는 이내 볼이 얼얼해져서 한껏 옷을 여미고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몸을 녹일 수 있는 뜨거운 저녁을 먹으러 갔다.  






샌프란시스코 여행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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