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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Feb 19. 2017

샌프란시스코에서 커피를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좋았던 카페 세 곳.

어느 도시에서 단 한 가지만 맛볼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거야? 

이렇게 물었더니, 커피-라고 대답하는 남자와 함께 살고 있다.

익숙한 일상에서도, 낯선 여행지에서도 만날 수 있고, 

뜨겁거나 차갑고, 달콤하고 씁쓸하며, 위안이자 자극이 되는 것. 

어느 곳에나 있지만 모두 다른 맛과 향을 남기는 것. 그게 바로 커피 아닐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각기 나름의 수집품들이 있다. 어느 도시에 가도 꼭 하나씩 가지고 돌아오는 무엇. 

누군가는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엽서, 혹은 머그컵. 아니면 열쇠고리.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는 커피에 대한 기억들을 수집하고 간직한다. 

어느 도시를 여행해도 정성스레 골라 소중히 가지고 돌아오는 것. 

이 것은 우리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간직한 커피에 대한 기록. 



블루보틀. Blue bottle. 


샌프란시스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커피는 단연 블루보틀이 아닐까 싶다. 

뮤지션이었던 창업자가 혼자 파머스 마켓에 손수레를 끌고 나가 한 잔 한 잔 직접 공들여 내리며 처음 선보였으나, 지금은 커피계의 애플이라고 불리는 블루보틀. 우리도 이 도시에서 시작된 바로 그 커피를 가장 먼저 맛보러 갔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 머무는 내내 작고 파란 병의 간판이 보일 때마다 우리는 이 곳에 갔다. 



창업자의 인터뷰를 기사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블루보틀의 메뉴판 맨 위에는 에스프레소가 있다며 이 것이 블루보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메뉴를 단순화하고 품질에 집중해서 느리게 정성껏 만드는 커피. 시작할 당시에는 생소했으나 있는 그대로 사람들이 경험하게 하여 결국 하나의 새로운 문화가 된 브랜드. 이 곳은 블루보틀의 이름으로 팔리는 제품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가맹점이 아닌 모든 매장을 직접 운영한다고 한다. 늘 에스프레소만 고집하는 남편은 블루보틀의 독특한 커피맛에 빠져들었고, 나는 이 커피가 담겨있는 공간과 철학에 매료되었다. 


블루보틀에서 커피를 마시던 어느 오후. 창가에 앉아있던 남편과 얼이를 어느 사진작가분이 담아가셨다. 그러고보니 모두 블루!



카페 트리에스테. Cafe Trieste.


이 곳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남편이 가장 좋아했던 카페인데, 사실 이 카페의 이름은 나중에 찍어둔 사진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좋은 카페들이 많다. 여행 중에는 눈에 띄는 카페에 들어가 잠시 쉬기도 하고, 그곳의 커피를 맛보는 것이 큰 즐거움인데 이 곳도 그렇게 만나게 된 곳 중 하나였다. 리틀 이태리라 불리는 노스비치(North Beach) 지역을 거닐며 매력적인 가게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다 한 카페에 들어갔고, 나는 평소에도 지도를 잘 들여다보지 않고 발길이 닿는 대로 다니는 터라 사실 당시에는 그 동네가 이탈리안들이 많이 사는 동네 인지도 모르고 "와아, 여기는 꼭 이탈리아 같다."고 남편에게 얘기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중에 사진 속 카페의 이름으로 검색해보니 이 곳은 이미 문 연지 반세기가 넘은 전통 있는 곳으로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저명한 카페인 듯했다. 단골이 많고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카페라고 하니, 작은 테이블 곳곳에 앉아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 틈에 어쩌면 화가와 음악가와 시인이 어울려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는 우리 숙소에서 가까운 곳이 아니었는데도 남편이 워낙 좋아해서 여러 번 찾아갔다. 그저 달콤한 걸 좋아하는 나는 사실 깊은 커피맛은 잘 모르지만, 이 곳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자주 들렀던 작은 카페들과 비슷한 분위기가 좋았다. 가난한 여행자였던 그때 주머니 속 1유로, 2유로짜리 동전을 털어 누렸던 작은 사치와 위로가, 카운터에 서서 눈 앞에서 만들어지는 커피를 기다렸다가 그 작은 잔을 들고 마음이 잠시 쉬어가던 기억이 커피잔 위로 떠올랐다가 이내 목을 타고 넘어갔다. 마침 얼이가 잠이 들어 우리는 각자의 커피잔을 들고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길고 긴 대화를 나누었다.  




필즈 커피. Philz coffee


이 곳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시간이었다. 아침에 나오면서 일단 커피를 한 잔 마셨고, 그 후로도 걷고, 먹고, 마시고. 오전에는 마켓과 도서관을 다녀왔고, 트램을 타고 내려서 카스트로 거리를 걸어 드디어 필즈 커피에 도착했다. 여기에서는 그 유명한 민트 모히토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데, 나는 이미 두 잔쯤 커피를 마셨고, 남은 오늘 하루 만나게 될 몇 잔이 될지 모를 커피들을 위해 그냥 한 모금 맛만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주문한 커피가 나온 뒤 컵을 받아 들고 눈길은 그대로 거리와 얼이에게 둔 채 무심코 한 모금을 마셨다가, 정말 딱 한 모금. 그 한 입에 정말 만화처럼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그리고는 바로 다시 매장 안으로 들어가 라지 사이즈를 한잔 더 주문했다. 온전히 한 잔을 내가 다 차지하기 위해서. 무어라 딱 잘라 설명할 수 없지만, 고소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하고 상쾌한 맛이 났다. 오후의 무료를 단번에 깨트리는 맛. 우리가 신혼여행으로 갔던 모로코에서는 달콤하고 신선한 민트 티를 하루 종일 마실 수 있었는데, 이 커피에서는 마치 모로칸 민트 티와 진한 커피를 섞은 듯한 맛이 났다. 

남편과 나는 참 다르다. 성격이며 취향도 다르고, 입맛도 다르다. 내가 한 여름에도 뜨겁고 얼큰한 해장국을 좋아한다면, 남편은 겨울에도 시원하고 심심한 평양냉면을 고르는 식이다. 커피 취향은 또 정 반대여서, 어딜 가든 남편은 항상 뜨겁고 쓴 에스프레소를 주문했고, 나는 늘 휘핑크림이 듬뿍 올라간 프라푸치노나 차가운 캐러멜 마끼아또를 마시곤 했다. 그래서 우리의 커피잔은 늘 한쪽은 작고 한쪽은 크고, 한쪽은 뜨겁고 다른 쪽은 차갑고, 이쪽은 쓰고 저쪽은 달고, 언제나 서로 달랐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우리 둘이 같은 컵을 들고 같은 맛과 향의 커피를 함께 마셨다. 그리고 우리 둘 다 모두 깊이 만족했다.  





여행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 


인스타그램 @jina_as.time.goes.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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