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 컵커피
오늘 아침은 어제 편의점에서 산 2+1 컵커피, 커핑로드라 뭐라나 맛있는데 칼로리가 높다.
일어나자마자 푼크툼 생각이 나서 굴러다니는 책을 뒤졌다. 스투디움, 푼크툼 개념.. 어렴풋이 진중권이 했던 말인 줄 알았는데, 롤랑 바르트의 말을 진중권이 인용했던 거였다. 롤랑바르트는 스투디움, 푼크툼 개념을 사진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진중권은 그걸 그림에 적용시켰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는 그걸 또 어딘가에 인용하게 되겠지..
『교수대 위의 까치』, 진중권
p.19 회화의 푼크툼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년)는 사진의 의미에 두 개의 층위가 있음을 지적한다. 하나는 ‘스투디움(studium)’ 으로,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되는 ‘일반적’ 해석의 틀에 따라 읽어내는 의미다.우리는 특정한 사진을 보고 그 사진이 뭘 의미하는지 금방 이해하곤 한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되는 그런 일반적 해석과 관계없이, 때로는 그것을 전복하면서 보는 이의 가슴과 머리를 찌르는 효과이다. 오직 보는 이 혼자만이 느끼는 이 절대적으로 ‘개별적’ 인 효과를 바르트는 ‘푼크툼(punctum)’ 이라 부른다.
"이 자국, 이 상처들은 점이다.스투디움을 방해하러 오는 이 두 번째 요소를 나는 푼크툼이라 부르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찌름,작은 구멍, 작은 반점, 작은 흠, 주시위 던지기이기 때문이다. 사진의 푼크툼은 그 자체가 나를 찌르는(또한 나를 상치 입히고 괴롭히는) 우연이다."
'푼크툼'과 ‘스투디움' 은 물론 사진에 적용되는 개념적 도구일것이나 어느 정도는 회화에서도 이와 비슷힌 구별이 존재하는 듯하다. 고전 회화에는 ‘제재(suje't)' 가 존재한다. 그래서 그림을 보고 대개 그것 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이해한다.첫눈에 이해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도상해석학(iconology)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바르트가 말한사진의 ‘스투디움’ 에 해당할 것이다.하지만 종종 우리는 그런 일반적 해석으로는 도저히 포착이 안 되는 작품의 세세한 디테일, 미묘한 텍스추어에 불현듯 사로잡히곤 한다.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한 이 느낌을 회화의 ‘푼크툼’ 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나에게 와서 꽂히는 듯한 그 촉각적 효과를 다른 이들은 못 느낄 수 도 있다.푼크툼은 사밀한 체험, 때로는 절대적으로 사밀한 체험이기 때문이다.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그저 무시해도 좋을 한 개인의 주관적 감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사밀한 체험이라도,그것이 사회 속에 사는 인간의 것이라면,거기에는 어느 정도 전달 가능성이 있다.가령 내가 그림 속의 한 요소를 손가락으로 가리킬 때, 어떤독자 들은 물론 거기서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독자들은 거기서 나와 비슷한 것을 느낄 것이고, 또 다른 독자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것을 느끼되 거기에 함께 매료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