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가 해야 하는 검사들
울음 덩어리를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삼키며 울고 있는 엄마에게 병동을 돌자고 했다. 한 번도 내가 먼저 운동을 하자고 한 적이 없었기에 엄마는 금세 눈물을 멈추고 내가 일어서는 걸 도와줬다. 그렇게 병실 밖을 나서자마자 간호사 선생님이 달려왔다. 골수검사를 하러 가야 하니 병실에서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곧이어 나를 태우고 갈 침대가 왔고, 내가 정말로 암환자라는 걸 소화하기도 전에 골수검사를 받으러 이동됐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무서운 골수검사. 암이 골수에까지 전이됐는지 알아보기 위해 해야 하는 검사였다. 검사 전에 잔뜩 겁에 질린 나를 위해 의사 선생님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마취를 먼저 할 거고, 두꺼운 바늘이 뼈에 들어가는 불편한 기분이 들 거예요. 그리고 무언가 뽑는 불쾌한 기분이 들 거예요. 그리고 다시 한번 뼈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고선 끝이 납니다. 모든 과정 전에 제가 다시 얘기할 거고, 환자분은 절대로 뒤를 돌아보거나 움직이시면 안 돼요. 시작할게요 “
주삿바늘이 뼈를 찔렀다. 그리고선 두꺼운 무언가가 내 뼈로 들어왔고 나는 계속 가파르게 심호흡을 하며 ‘이 고통은 잠시뿐이다. 이 고통은 지나간다’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주 잘 참았다며 이제 좀 불쾌한 기분이 들 거라고 하셨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뭔가 주사기로 세포들이 뽑혀나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라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불쾌한 고통이었다. 그렇게 총 세 번, 내 영혼과 골수는 뽑혀나갔고, 또다시 두꺼운 무언가가 들어오는 느낌과 나가는 느낌이 들고서 검사는 끝이 났다. 의사 선생님이 골수검사는 의식 있는 환자들이 받는 검사 중 제일 아픈 검사 축에 속한다며 너무 고생했다고 해주셨다.
다음 날, 산부인과 협진을 갔다. 선생님은 자세하게 왜 항암을 하면 불임/난임이 되는지 설명해 주셨고, 40대에 폐경이 올 수 있다고 하셨다. 아기를 원하는 분들은 난자를 얼리기도 하는데 이 과정이 시간이 걸려 항암 일정이 미뤄질 텐데 혈액암은 워낙 빨리 진행되기에 추천하진 않는다 하셨다. 대신 많은 분들이 ‘난소보호주사’를 맞는다고 하셨다.
‘난소보호주사’는 항암을 하는 동안 몸 상태를 폐경으로 만들어 난소를 보호해 주는 건데 이게 효과가 확실히 있는지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뭐든 안 하는 것보단 나은 것 같아 주사를 맞겠다고 했고, 몇 시간 후 배에 주사를 맞았다. 그리고선 심장 초음파까지 클리어하고서야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내일은 케모포트를(쇄골 아래 피부 밑에 포트를 심어 주사나 항암제를 팔 대신 맞게 해주는 장치) 심는다 했다. 그리고 내일은 6월 10일, 내 생일이었다.
집에서 아이스크림케이크를 먹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많이 서럽지는 않았다. 친구들이 병원에 찾아와 주었기 때문이다. 병실 내 병문안은 금지이기에 야외정원에서 참 따뜻한 축하들을 받았다.
인생은 세 가지 공을 굴리며 사는 거라 들었다. 건강, 관계, 일. 이 셋 중에 ‘일’만 고무공이고 나머지 두 개는 유리공이라 한번 놓치면 깨져버려서 다시 붙이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떨어져도 다시 튀어 오르는 ‘일’ 공만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나머지 두 유리공을 많이 깨트려버린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날 위해 울어주고 기도해 주는 사람들. 이들을 위해 꼭 항암 잘 버텨서 내가 받은 사랑을 보답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번 생일엔 아이스크림 케이크 대신 케모포트를 받지만, 내년 생일엔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할 것이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