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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토리아 Jun 22. 2024

#9 소장절제수술 (2)

부정

 마취에서 깨어보니 수술 전에 왔었던 수술대기실이었다. 배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마치 장첸한테 칼을 맞은 듯이.

 내가 너무 아파하자 간호사 선생님이 링거에 달려있던 무통주사를 눌러주셨다. 그러자 갑자기 뱃멀미를 하는 것처럼 어지럽고 구역질이 났다. 배가 아픈 상태로 복근이 필요한 헛구역질을 하니 더 죽을  것 같았다. 누가 제발 다시 수면마취를 해줘서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좋을 것 같았다.

 고통으로 계속 소리 내는 나를 병실로 옮겼고,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하지만 오래 울지도 못했다. 울 때도 복근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너무 아프면 여기 달려있는 무통주사를 누르라고 했지만, 헛구역질이 더 괴로웠기에 누르지 않겠다 했다. 그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누군가 24시간 내내 배를 칼로 찌르고 있던 느낌과 무통주사가 아닌 다른 진통제를 놔달라고 중얼거리던 내 힘없는 목소리만 기억날 뿐이다.

 다음 날, 고통은 아주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대장항문외과 교수님이 회진 때 소장을 침범한 림프종의 크기가 너무 커 꺼내기 위해 7-8센티 개복을 했고, 소장 세 군데를 잘라내 남아있는 소장의 길이는 2m 50cm 정도라고 하셨다. 이제 이 림프종으로 조직검사를 할 거고, 남아있는 림프종은 항암으로 없애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배가 아픈 걸 잘 알지만 누워있으면 장유착이 올 수도 있으니 무통주사를 누르고서라도 걸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앉지도 못하는데 걸으라니... 하지만 장유착이 와서 또다시 수술을 해야 하는 건 더 끔찍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나와서 몸무게를 재라고 했다. 그렇게 침대에 앉고, 다리를 내리고, 일어서기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그 한 시간 동안 식은땀은 비 오듯이 흐르고 누워있을 때보다 고통은 더 크게 느껴졌지만 울 수도 없었다. 울면 배가 더 아플 테니까.

 한 걸음, 한 걸음 체중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일반 사람이라면 10초가 걸릴 그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겨우겨우 몸무게를 재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병동을 걸으면서 운동하는 건 나에게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이게 그래도 치료의 끝이라면 어떻게든 온 힘을 끌어모아 시도라도 해볼 텐데,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 절망적이었고 서러웠다.

 

 다음 날, 전날보다 고통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걷는 건 무리였다. 그때 배를 누군가가 칼로 샥 베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가스통이었다. 가스가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장에 쌓여 느껴지는 통증이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움직여야지만 가스가 나온다고 무통주사를 누르고 걸으라 했지만 나는 무통주사를 떼 달라고 말하곤 엉덩이에 맞는 진통제를 맞고 걷겠다 했다. 그때부터 내 엉덩이는 벌집처럼 주사 자국이 늘어났고, 나는 배가 너무 아파 복대를 하고 허리를 90도는 접은 채 병동을 돌기 시작했다. 개복수술의 고통만큼 가스통의

고통도 컸기에 걸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바퀴씩 늘려가는 게 목표였지만 계획대로 되진 않았다. 그래도 가스도 나오고 피만 나오던 배액관의 색깔이 점점 연해지기 시작했다. 금식도 풀렸다. 저잔사식(대장에 많이 남지 않는 식이) 식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뭘 먹으면 가스통이 왔기에 잘 먹지 못했다.

 그래도 수술 후에 달라진 게 있다면 고열이 나는 주기가 길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하루에 해열진통제를 세 번이나 맞아야 했다면 수술 후에는 하루에 한 번씩 맞았다. 어떤 날은 해열제를 맞지 않고 지나가기도 했었다. 그러자 ‘조직검사 결과 상 암이 아니라고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림프종 관련 카페에서도 PET-CT상 림프종으로 보인다 했지만 조직검사 결과 악성이 아닌 양성이 나왔다는 글도 올라왔다. 왠지 나도 그럴 것만 같았다. 소장을 침범한 종양이 양성이기에 혈액암의 특징인 고열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식욕도 올라와 죽 한 숟가락 먹던 내가 종이컵 반컵 정도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선 구토도 하지 않았다. 기분도 계속 좋았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수술 후 일주일이 지나고, 혈액내과 교수님이 오셨다.

 “조직검사 결과상 림프종이었고, 이에 다시 혈액내과로 옮길 거예요. B세포 림프종이 아니기에 NK/T 세포 중에 어떤 아형(림프종의 종류 중 어떤 종류인지)인지 알아보기 위해 추가 염색이 들어갔고, 다음 주 화요일 결과가 나올 거예요. 그럼 그거에 맞춰 항암 스케줄 짜고 치료 들어갈 겁니다. 이제 림프종이라고 진단되었기에 골수 검사 및 산부인과 협진, 심장 초음파 등 검사가 진행될 겁니다. 힘내세요 “

 멍했다. 정말 이것이 현실인 건가? 나 진짜로 암환자가 되어 항암이란 걸 해야 하는 것인가? 엄마는 소리 내어 울었지만 오히려 나는 울음을 속으로 삼켰다. 분한 감정이 올라왔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림프종을 진단받은 많은 사람들이 B세포로 진단받아 항암을 시작한다. 하지만 NK/T세포는 B세포에 비해 케이스도 적고, 치료가 까다롭고, 예후가 좋지 않다는 걸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기왕 걸릴 거면 B세포이길 바랐는데... 왜...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이 모든 것이 한 여름밤의 꿈이면 참 좋을 텐데. 눈을 뜨면 글자와 아주 긴 낮잠을 잔 거면 참 좋을 텐데... 불행히도 이건 내 앞에 놓인 여정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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