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상의 시작
2024년 3월 27일, 오늘은 창작 뮤지컬 ‘천개의 파랑’ 상견례(처음으로 모든 창작진, 감독, 스태프, 배우들이 모이는 자리) 날이다. 연습 들어가면 꾸밀 시간도, 이유도 없기에 상견례날만큼은 예쁘게 보이고 싶어 일찍 일어나 열심히 다이슨으로 긴 머리를 말고 차에 시동을 켰다. 평소보다 일찍 나왔는데도 예술의 전당까지 차는 막혔고, 결국 10분이나 지각을 해버렸다. 1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에 더 일찍 출발하지 않은 나를 자책하며 상견례 장소 문을 열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피디님은 진행을 시작했다. 모두 돌아가며 인사를 했고, 나도 “대본과 가사를 쓴 작가입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원작소설을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이기에 어떤 방향으로 각색을 했는지 설명을 했고, 뒤이어 작곡가님도 음악 콘셉트에 대해 말을 한 뒤 리딩(노래를 부르지 않고 대본과 가사를 쭉 읽는 것)이 시작됐다.
그동안 글을 쓰면서 수도 없이 읽었던 대사들과 가사들을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듣게 되면, 마치 대본 속에만 존재했던 캐릭터들과 현실에서 마주하는 묘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 리딩은 끝이 나고 배우들이 연습실을 나가고선 바로 창작진과 스태프들의 회의가 이어졌다. 피디님이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와 주스를 사왔고, 나는 연어샌드위치를 골라 먹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나는 피디님에게 청첩장을 건넸다. 10일 후면 결혼식이었기 때문이었다. 피디님은 놀라며 왜 여태 말 안 했냐고 했고, 나는 연습 전까진 괜히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청첩장을 건넨 뒤 신혼집으로 향했다.
결혼을 결심하기 전, 서대문에서 반려견 ‘글자’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오산에서 일하는 남자친구를 배려해 동탄에 신혼집을 얻었다. 부모님과 친구들은 너무 배려한 거 아니냐며 그렇게 멀어서 어떻게 일하러 다니냐고 걱정했다. 내 주요 활동지는 혜화였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출근하는 게 아니기에 괜찮을 거라고 하며 부동산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 후 생각보다 서대문 집이 너무 빨리 나가버려서 결혼식 한 달 전에 혼자 동탄에 살게 됐고, 원래는 20분 걸리던 대학로가 이젠 1시간 40분이 걸리게 되니 몸이 너무 지쳐 동탄으로 오기로 한 결정이 후회되기도 했다. ‘그래도 결혼 생활은 양보라는데 프리랜서가 직장인을 배려해 줘야지!’ 란 생각으로 올라오는 후회들을 꾹 참았다.
막히는 길을 오래 운전한 탓일까 피곤이 몰려왔고 나는 글자를 안고 잠시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 저녁으론 다이어트를 위해 그릭요거트에 바나나를 넣어 먹고선 쉬고 있는데 배가 이상했다.
이건 느낌이 장염이었다! 바로 화장실에 가서 토를 했다. 그릭요거트가 잘못됐나? 아님 점심에 먹은 연어 샌드위치?한번 시작된 토는 멈추지 않았고 곧이어 설사까지 시작됐다. 오늘이 생리 시작일이어서 그런지 새빨간 피가 함께 나왔다. 생리와 장염의 콜라보라니... 최악이다란 생각을 하며 근처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장염 때문에 응급실 가야 하니까 수영 끝나고 집에 와달라고 카톡을 남긴 후 계속 토와 설사를 반복했다. 남자친구가 집에 도착했고, 나는 화장실에 있다고 얘기하곤 그 상태로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