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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토리아 Jun 15. 2024

#5 세 번째 중환자실에서 6일 (1)

희망이 없다는 건

 혈변을 확인한 아빠와 나는 잠시 침묵했다. 아빠는

 “첫 번째랑 두 번째 출혈지점이 달랐던 게 내내 찜찜했어. 잘됐어. 이번에 가서 첫 번째 출혈지점까지 지혈해서 뿌리를 뽑으면 되는 거야”라고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응급실 침대에 눕혀졌다. 응급실에서 수혈을 받았지만 예전처럼 대량출혈은 아직 오지 않아 우선 일반병실로 가기로 했다.

 일반병실에 가 또다시 지금 일하고 있는 뮤지컬 관계자들과 학교에 연락을 돌렸다. 하지만 이젠 잠시 입원했다는 연락이 아니라 당분간 일을 하지 못할 거 같단 연락을 돌려야만 했다.

 아프기만 했는데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 벌써 5월 초였다. 휴강을 더 이상 할 수 도 없고 언제까지나 줌으로 수업을 할 순 없기에 학교에는 휴직계를 냈고, 5월 중순에 올라가는 뮤지컬은 런쓰루(공연 올리기 전,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처럼 해보는 것)에 갈 수 없다고, 또 7월에 예정되어 있던 일본공연, 런던공연에 참여할 수 없다는 연락을 돌렸다.

 ‘괜찮아. 이번에도 또 출혈지점 찾아서 지혈하면 돼. 그러고 나중에 강의 다시 하면 되고, 해외 공연은 또 있을 테니 그때 가서 보면 돼’ 하지만 아쉬움에 눈물이 흘렀다. 곧 지금 연습하고 있는 뮤지컬 개막이었다. 단 2주밖에 안 하는데 공연을 보러 갈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는데 배가 아팠다. 엄마랑 같이 화장실에 갔고, 엄마가 내 어깨를 꽉 잡았다.

 

 “환자분 눈 떠보세요”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눈을 떠보니 화장실이었다. 엄마가 날 붙잡은 채로 또 의식을 잃었고, 엄마가 화장실에 있는 응급호출로 간호사 선생님들을 불렀던 것이었다.

 “병원이요”라고 대답을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는데 그때부터 대량출혈이 시작되었다. 혈압은 걷잡을 수 없이 떨어졌고 설상가상으로 구토까지 더해졌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엄마 나 좀 살려줘. 엄마 나 좀 살려줘 “

 엄마는 울면서 계속 뭐해줄까라고 물어봤지만 사실 둘 다 알고 있었다. 이 고통은 온전히 나 혼자서만 버텨내야만 한다는 것을.

 당직 의사 선생님은 출혈이 너무 많아 위험하다고 중환자실로 가자고 했다. 그렇게 나는 울고 있는 엄마를 두고 중환자실로 실려갔다.

 벌써 세 번째 중환자실에 온 나를 알아본 간호사 선생님들이 많았다. 당장 목에 링거를 꽂아야 한다고 했고 나는 싫다고 너무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안 그러면 죽을 수도 있단 말에 선택지가 없었다. 결국 또다시 고통은 반복되었다. 목으로 수혈이 들어가는 와중에도 출혈과 구토는 멈추지 않았다. 혈관조영술 언제 하냐는 말에 그 누구도 답을 해줄 수 없었다. 그렇게 출혈과 구토를 몇 시간 동안 하고선 지쳐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주치의 선생님이 계셨다. 12시에 혈관조영술을 한다고 했다. ‘12시만 지나면 나는 또다시 괜찮아진다’라고 되뇌며 시간을 꾸역꾸역 보냈고, 드디어 다시 차가운 혈관조영실 침대에 누웠다. 이번에는 저번보다 더 오래 걸리는 기분이었다. 시술을 정리하는 모습이 보이자 나는 또다시 물어봤다.

 “지혈됐나요?”

 “아뇨. 출혈부위를 못 찾았어요.”

 절망적이었다. 출혈이 있는데 대체 왜 출혈부위를 못 찾는 걸까. 사람이 사망위험이 있을 정도로 피를 쏟는데 대체 왜... 나는 왜 하필이면 소장에 출혈이 있어서 이렇게 고생을 할까. 차라리 출혈이 있을 거면 내시경으로 발견하기 쉽게 위나 대장이면 좋았을 텐데 나는 대체 왜...

 시술실 문이 열리고 희망에 가득 찬 부모님 얼굴을 보니 더욱 가슴이 미어졌다.

 “출혈부위 못 찾았대.”

 내 말에 부모님은 아무 말을 하지 못하셨다. 그렇게 나를 실은 침대는 중환자실로 향했고,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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