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과 고열
눈을 뜨니 화장실에 쓰러진 나를 아빠가 일으켜 세우고 있었고 엄마는 또 하염없이 내 이름만 부르며 울고 있었다. 그렇게 또다시 119를 타고 병원에 갔고 응급실에서 수혈을 받았다.
일주일 만에 모든 것이 반복이었다. 일주일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엔 출혈이 더 많았다. 순간 너무 어지러웠고, 그때 나를 연결하고 있는 기계에서 소리가 났다. 의사 선생님은 팔로 들어가는 수혈을 기다릴 시간이 없어 심장과 가까운 곳에서 수헐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며 목에 링거를 꽂아야 한다고 했다.
순식간에 내 침대 주위에 커튼이 쳐지고 의사 선생님이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그 모습 자체에서 오는 공포감에 온몸이 떨렸고, 마취가 아플 거란 말과 함께 주삿바늘이 목을 찔렀다. 악! 소리가 났고, 뒤이어 목에 주삿바늘을 꽂는데 그건 더 아파서 소리를 지르며 엉엉 울고야 말았다.
눈물이 고통 때문에만 난 건 아니었다. 또다시 이곳에 있다는 것이 서러웠다. 내 몸이 왜 그럴까. 나 수영도 할 만큼 건강했는데 왜 자꾸 이곳에 있는 걸까.
그렇게 한참을 울고선 잠들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주치의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을 보자마자 서러움은 더욱 커졌다.
“선생님 저 또 왜 이래요?”
“원인을 못 찾고 퇴원했으니까 그렇지. 다시 CT 찍고 혈관조영술 할 거야 “
혈관조영술이라... 이번에는 출혈지점을 찾을 수 있을까? 이미 수많은 검사를 했지만 그 어떤 검사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했기에 회의적이었다. 그렇게 CT를 찍고 또다시 추운 혈관조영실로 실려갔다.
한 30분쯤 지났을까. 시술을 정리하는 분위기여서 나는 힘없이 질문을 했다.
“이번에는 출혈부위 찾았나요?”
“네. 이미 찾아서 지혈했어요. “
그 말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출혈부위를 찾았다니! 그럼 이제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시술이 끝나고 잠시 대기하는 곳에 있으니 다른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자신은 주치의 선생님 밑에 있고, CT를 찍었는데 저번과는 출혈 부위가 달랐지만 지혈이 잘됐고 상태를 계속 체크해야 하기에 중환자실로 갈 거라고 설명해 주셨다.
시술실 문이 열리니 이미 의사 선생님에게 설명을 들은 부모님도 울고 계셨다. 부모님은 연신 “됐다. 이제 됐다”라고 말하며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했고, 나는 중환자실 침대가 폭신하다며 잘 쉬고 오겠다는 농담까지 하고선 중환자실로 향했다.
혈관조영술에 성공했기 때문일까? 희망이 있는 중환자실은 처음만큼 두렵지 않았다. 혈압을 계속 확인해야 하기에 동맥에 주사를 꽂아야 하는데 많이 아프다고 괜찮냐고 묻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 괜찮다고 다 참을 수 있다고 했다. 왜냐면 이게 내 마지막 중환자실 생활일 테니까!
그렇게 목으로는 수혈을 받고, 손목에도 주삿바늘이 꽂힌 채 가지 않는 시간을 겨우겨우 보내고 다음 날 드디어 일반 병실로 내려갔다.
다시 만난 엄마와 나는 거의 파티 분위기였다.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말을 했다. 그렇게 10일간 물도 마시지 않는 금식이 이어졌고 그동안 지금 연습하고 있는 뮤지컬 대본이랑 가사도 수정하고, 줌으로 대학 강의도 했다. 그 후 미음을 먹고 죽까지 먹고서도 혈변이 없는 걸 확인한 주치의 선생님은 내일 퇴원을 하라고 했다. 엄마는 짐을 싸기 시작했고, 나는 나가면 뭘 먹고 싶은지 검색했다.
그때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와 열을 재더니 38도가 넘는다고 했다. 지혈을 하고선 열이 없었는데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결국 열 때문에 퇴원은 미뤄졌다. 하지만 그 후에 한 모든 검사가 정상이었고, 의사 선생님은 우선 퇴원을 하고 외래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집에 돌아가 글자를 만났다. 내 예쁜 강아지는 오랜만에 보는 건데도 언니를 잊지 않고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내 품을 파고들었다. 나는 글자를 꼭 안으며 “언니가 미안해. 너 평생 책임지겠다고 입양해 놓고선 이렇게 오래 사라져서 미안해. 다신 안 사라질게”라고 말하며 운동도 열심히 하고, 건강한 밥 먹으면서 건강관리 잘해서 다시는 아프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집에 와서도 고열은 계속 됐다. 39.9까지 찍는 날도 많았다. 하루에 해열제를 3번씩 먹으며 버텼고, 열이 내려가면서 어찌나 땀이 많이 나는지 자고 일어나면 침대시트와 잠옷이 흠뻑 젖을 정도였다. 외래에 가서도 열이 나는 이유는 찾지 못했다. 게다가 구토증세까지 더해졌다. 음식을 먹지도 못했다. 그리고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았지만 또다시 혈변이 나왔다. 퇴원한 지 2주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