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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토리아 Jun 14. 2024

#3 첫 번째 중환자실과 첫 번째 퇴원

10퍼센트

 중환자실은 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드라마에서 보면 작은 병실에 환자가 혼자 의식 없이 누워있고 보호자들이 유리창문으로 환자를 바라봤던 거 같은데, 막상 마주한 중환자실은 엄청 컸고, 그곳엔 참 많은 환자들이 있었다. 대부분 의식이 없는 환자들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은데도 고요했다.

 여기 중환자실에선 환자가 침대 밖으로 나올 수가 없기에 소변줄을 꼽고 기저귀에 혈변을 보면 말해달라고 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핸드폰도 쓸 수 없다 하곤 응급실에서 전달받은 내 소지품을 어딘가에 넣어두셨다.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뮤지컬 연습은? 초연이라 작가가 연습실에 상주하면서 대본 수정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일주일 뒤 결혼식은 어떻게 해야 하나?’ ‘결혼을 하지 말란 뜻일까?’ ‘출혈을 잡지 못했다면 앞으로도 이런 일을 겪어야 한단 뜻일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새벽까지 잠에 들지 못할 때 갑자기 어떤 아저씨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은 이 병원을 믿지 못하겠다며 퇴원하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이를 시작으로 섬망증세를 가진 분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나도 복통이 시작됐다. 배 안이 우르르 무너지는 기분이 들며 혈변이 또다시 나왔다. 그 복통은 참을 수 없는 수준이어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고, 그렇게 나는 중환자실의 소리 중 하나의 소리를 더하다 지쳐 잠에 들었다.

 눈을 뜨니 의사 선생님이 와계셨다. 의사 선생님은 소장은 원래 출혈원인을 찾을 확률이 10퍼센트라고 하시며 금식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출혈이 멈추는 사람도 있다며 우선 일반 병실로 옮겨 이런저런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일반 병실로 옮겨 엄마를 보니 눈물이 났다. 화장실에 쓰러진 나를 발견하곤 얼마나 놀랐을까.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응급실에 있을 때 부모님은 내가 출혈이 너무 많아 사망할 수도 있단 얘기를 들으셨다고 했다. 너무 죄송했다. 엄마에게 아파서 미안하다고 하니 엄마는 괜찮다고 다 나으면 된다고 하셨다.

 핸드폰을 받자마자 지금 연습하고 있는 뮤지컬 피디님, 연출님, 작곡가님에게 연락을 돌려 상황을 설명했고, 대학 조교에게 연락해 휴강공지를 부탁했다. 아빠에겐 집에서 노트북을 가져와달라고 말하고 나서야 남자친구에게 이 상황을 알렸다. 시부모님에게도 말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원인을 모르는 소장출혈로 중환자실까지 다녀왔단 말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검사를 통해 원인만 찾으면 깨끗하게 치료하고 무리 없이 결혼식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숨 쉴 틈도 없이 검사가 시작됐다. 위, 대장 내시경부터 시작해 소장을 볼 수 있는 캡슐내시경까지 하고선 게실검사를 위해 한 시간 동안 복사기 같은 검사기계 아래에 누워있었고, 이런저런 검사를 한다며 간호사 선생님들은 내 피를 계속 뽑아갔다. 원래 혈관이 약하고 잘 안 보이기에 기본적으로 2-3번은 찔린 뒤 피를 뽑을 수 있어 누군가 병실에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무서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검사실을 오가며 많은 검사를 했지만 모든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오며 왜 피가 나고 소장 어디서 출혈이 났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기특하게도 소장이 스스로 출혈을 멈췄고 39도가 넘던 열도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스트레스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2,3월은 스트레스가 최고치를 찍은 달이었다. 초고 데드라인과 수정 데드라인이 몰려있었고, 이사와 짐정리에 몸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거기에 남자친구와 참 많이도 싸웠다. 연애할 때는 어디서 밥 먹을까? 오늘은 뭐 할까만 결정하면 됐는데, 신혼집이 생기고 나선 침대프레임은 뭐로 살 것이며 소파는 얼마큼 큰걸 살건지와 같은 결정을 내리면서 의견 충돌이 많았다. 둘 중에 한 명이 책임지고 하면 되는 일인데, 둘 다 혼자 오래 살아서 그런지 작은 걸 결정할 때도 서로 의견을 내고 싶어 했고 그 의견이 일치하는 일은 드물었다. 싸우면서 서로 더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졌고, 매일 친구 한 명도 없는 낯선 동탄에서 글자 산책을 시키며 ‘이 결혼, 해도 되는 걸까’ 고민하며 눈물을 흘렸었다. 결국 나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결론짓고, 일을 줄이고 남자친구와 부부상담이라도 받으며 좀 덜 싸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혼식 전 날인 금요일 날, 내 몸은 정상이 되어 퇴원을 하게 되었다. 퇴원하고서도 무리하지 않게 침대에만 누워있었고 흰 죽을 아주 조금 저녁으로 먹고 잠들었다. 화장실엔 언제나 엄마와 함께 갔다. 쓰러진 나를 발견한 게 엄마에겐 큰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이었다.

 결혼식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나의 목표는 쓰러지지 않는 것이었고, 목표 달성을 한 채 부모님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은 엄마의 간호가 필요했기에 신혼집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피곤해 세수만 하고 잠에 들었고,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갔는데 또 혈변이 나왔다. 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아빠를 깨우러 간 사이 나는 또다시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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