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혈모세포이식 이후 1년간의 기록
작년 12월 19일, 조혈모세포이식을 하며 두 번째 생일을 맞았다. 솔직히 그때는 너무 괴로워서 다시 태어났다는 기쁨보다는 마약성 진통제에 의지해서 계속 잠만 자며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무균실에서 벗어나서 일반 병실에 가서는 간정맥폐쇄증 부작용이 나타났고, 두려움과 불안함 속에 과연 나는 100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 첫 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정말 기적처럼 첫 돌을 맞이했다. 두 번째 생일을 맞아 지난 1년간의 기록을 남겨보려고 한다.
1. 체력
퇴원하고 100일 동안 서울역 근처 오피스텔에서 엄마와 지냈다. 집에는 강아지와 조카가 있어 의사 선생님이 혹시 모를 감염을 걱정하셨기 때문이다. 한 달 정도는 밖에 나가서 잠깐 걷는 것도 힘이 들 정도로 체력이 좋지 않았다. 아마 전처치항암부터 구토를 너무 많이 하고 물조차 먹지 못해 6주간 영양제를 달고 누워있어서 체력이 더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두 달이 지나면서 먹는 양도 늘고 하루에 30분 정도는 걸을 수 있는 체력이 됐다. 운동을 위해 엄마랑 오피스텔에서 서울역 롯데마트까지 왔다 갔다 했다.
몇 달 전, 기차를 타러 서울역에 갔는데 그때 생각이 나서 코 끝이 찡해졌다. 그때는 살기 위해 걸어서 왔던 서울역인데 지금은 놀러 가기 위해 오는 곳이 되었다니...! 정말 기적 속에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지금 내 체력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마라톤 5K 두 번, 3K 한 번을 나갔다. 물론 걷는 속도와 비슷한 속도로 들어왔지만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다. 완주가 목표였기 때문이다. 작년에 투병할 때 마라톤이 유행하면서 아프지 않았으면 결코 도전하지 않았을 마라톤이 너무 하고 싶었다. ’ 치료 끝나면 꼭 마라톤 해야지!‘ 다짐했고, 그 다짐을 실행에 옮겼다. 친구가 추천해 준 런데이 어플을 깔고 일주일에 2-3번 러닝 연습을 했다.
지금은 추워서 잠시 쉬고 있는데, 헬스장에 가서 다시 뛰어야겠다. 2026년에는 더 많은 마라톤에 나가고 싶다. 10K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2. 병원
퇴원 후 2주였던 외래가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고, 지금은 3달 텀이다. 3 달마다 정기검진을 하고 통과될 때마다 생명이 3개월 연장되는 기분이다. 외래 전증후군은 아직도 있고, 외래 전 날 아직도 긴장한다. 한 번은 복통이 너무 심해 사설 119까지 알아본 적도 있었고, 열이 38도를 넘어 동네 내과에 가서 피검사를 한 적도 있다. 공황장애를 겪었던 친구가 누군가 칼 들고 쫓아오는 공포라고 했는데, 조금만 몸이 이상해도 다시 아픈 건 아닐까 하는 공포가 목을 조여 오는 것만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이성적인 사고도 할 수 없다. 이런 불안함은 정기검진 후 교수님이 괜찮다는 말 한마디에 싹 사라진다. 치료가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 이 불안감에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금세 마음을 고쳐먹는다. 평생 불안해도 좋으니 다시 아프지 않고 살아가게만 해달라고.
며칠 전엔 산부인과 협진으로 조기폐경을 최종적으로 진단받았다. 조기폐경으로 인해 골다공증도 이미 진행 중이라고 한다. 30대인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서러웠지만 또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건 내 약점이 아니라 살아낸 흔적이라고.
3. 음식
이식 후 3개월 동안은 익힌 음식만 먹고, 외식, 배달도 안 돼서 요리를 하다 보니 요리가 늘었다. 지금은 날 것 빼고는 모든 것이 가능해 친구들과 뷔페도 다녀왔다. 퇴원 후에 건강에 대한 책을 읽다 보니 좋은 음식을 먹는 것보단 나쁜 음식을 먹지 않는 게 중요한 거 같아서 집에선 최대한 가공식품은 먹지 않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몽셸이었는데 몽셸을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초콜릿이 먹고 싶을 땐 카카오 100퍼센트를 씹어 먹었다. 수박바도 참 좋아했는데 수박바를 먹지 않고 이번 여름을 보냈다.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으면 해 먹으려고 아이스크림 기계를 샀는데, 의외로 많이 당기지 않아 몇 번 해 먹지 않았다.
물론 친구들과 밖에서 맛있는 거 먹을 땐 죄책감 가지지 않고 맛있게 먹는다. 난 원래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거 먹는 게 큰 행복이었기에 외식할 때만큼은 다양하게 맛있는 걸 먹는다.
림프종이 소장으로 와서 거의 3개월을 금식했고, 항암 하면서 오심 때문에 거의 못 먹었기 때문에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식탐은 많아졌다. 그래서 먹는 문제가 이제 나에게 엄청 중요해진 것 같다. 먹는 양도 많이 늘어 가족들이 놀라곤 한다. 앞으로도 이렇게 집에선 건강하고 맛있게, 밖에선 행복하게 맛있게 먹으면서 살아가고 싶다.
4. 일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많이 들은 말이 “무리하지 마”였다. 지금은 예전에 일하던 것의 10분의 1도 하지 않는다. 들어온 의뢰도 많이 거절했고, 스트레스받지 않는 선에서, 체력이 허락하는 내에서만 일을 하려다 보니 정말 조금 일한다. 그러니 너무 빨리 일 다시 하는 거 아닌지 걱정하는 분들에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하다. 어쩔 수 없다. 나는 글 쓰는 게 너무 좋고, 일 하는 게 너무 좋다. 너무 행복하다. 특히 올해는 ‘인터미션’을 쓰면서 작가가 되길 정말 잘해단 생각을 했다. 작년 한 해 ’이 세상에서 나만큼 불행한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올해는 ‘이 세상에서 나만큼 행운인 사람이 있을까 ‘ 생각한다.
지금 공연하고 있는 ‘비하인드 더 문’ 관련해서 너무 좋은 인터뷰를 하게 됐다. https://www.themusical.co.kr/Magazine/Detail?num=5549 원래도 이 일을 좋아했지만, 아프고 나서 더 좋아졌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싶다. 오래오래 글을 쓰고 싶다.
5. 마음
요즘 제일 재밌게 본 드라마가 ‘서울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이었다. 드라마 제목이 하나둘씩 사라지는데 그걸 마지막 회 때 보니 ‘서울자가’ 사라지고 ‘대기업’ 사라지고 ‘김 부장’도 사라진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었던 가치가 다 사라졌을 때 남은 나는 누구일까? 에 대한 물음이었던 것 같다.
중환자실에 누워 이름 없이 ‘환자분’으로 있을 때, 그동안 불려 왔던 ‘작가님‘ ’ 교수님‘이 아닌 나는 아무도 아닌 느낌이 들었다. 그것들이 죽음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지 못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도 나를 수식해 주는 말은 무엇일까 생각을 해봤다. 나는 부모님의 딸이고, 언니의 동생이고, 글자의 언니고, 친구들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건 결코 사라지지 않는 가치였다. 결국 사랑만이 나를 규정해 준다는 걸 이젠 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려고 한다. 물론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분명 있기에 어떻게 하면 잘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하고 실천하려고 한다.
오늘 좋은 글귀를 하나 읽었다. ‘삶이 내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났다’는 말이었다. 투병 내내 수도 없이 했던 질문은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였다. 그 질문의 답은 나중에 많은 시간이 지나고 하늘나라에 가서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더 이상 묻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이제 조금은 알 거 같다.
‘더 자주 행복하라고 ‘ 그 일이 일어난 것 같다.
요즘 나는 ‘더할 나위 없다’란 생각을 자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요가를 하고, 글자 산책을 하면서 피크민으로 꽃 심고, 과일로 아침을 먹고, 넷플릭스를 보고, 맛있는 점심을 요리해서 먹고, 글을 좀 쓰고, 책을 읽고, 맛있는 저녁을 요리해서 먹고, 글자와 산책하고 돌아와 친구들에게 웃긴 릴스를 보내며 잠에 든다. 이 보통의 하루가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이 참 아름답고 찬란하다. 너무 소중하다.
투병하면서 지금까지 거의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브런치를 통해 마음을 풀어내고 또 댓글로 위로를 많이 받았다. 어둠의 밤을 함께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원래 첫 돌을 맞이하면 글을 그만 쓰려고 했는데, 투병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걸 알리고 싶어 글은 계속 쓰려고 한다. 암환자가 아닌 암경험자로 살아가는 순간들을 기록하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오늘 하루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시길 바라본다. 모두 감사합니다!